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1. 생물에서 지위를 매기는 방법이 단 하나뿐이라는 것은 그만큼 독단적이고 주관적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우리가 모르는 생명의 신비가 있는데 어떻게 그 방법이 하나뿐일까. 애당초 생물이란 지위를 매길 수 있는 존재인 것일까. 생명에는 각자의 고유성과 특성이 있는데 어떻게 지위를 매길 것인가. 이 명제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제를 잘 드러내는 한 줄이기도 하다.
2. 이 책은 실존했던 과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과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진리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 지은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와 성장기, 인생과 자연에 대한 질문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놓았다. 도입 부분을 읽을 때면 이 책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평전인가 싶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예상치 못했던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마주하게 된다. 우생학이라는 신 학문(?)이 출연하게 된 배경과 그것을 추앙하고 광신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 그들이 만들어낸 광기 어린 세계에 적잖이 놀라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지금도 어디선가 분명 ‘인종청소’ ‘열성인자 제거’라는 행태들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청년 시절부터 어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표본을 채취하며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였다. 때론 그것을 발견한 지명을 따기도 하고 동료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 등 그 고유의 이름을 붙여준다. 하지만 그 표본을 넣은 유리병들이 지진으로 인해 와르르 무너졌을 때, 그는 알았어야 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명의 고유함에 하나의 개성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때로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통제하고 컨트롤하기 위한 방법도 될 수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일단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더 이상 그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게 된다는 사실에 대한 연민이었다’
이 책은 ‘범주’에 관한 책이다. 결국 우리가 어떤 것에 속한다고 믿고, 어떤 종류는 이러하다고 믿고, 어떤 것들은 이런 것에 포함된다고 믿는 것들. 범주는 효율적이지 몰라도 진실은 아니다. 그 진실조차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범주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물고기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또는 내가 알게 모르게 사로잡혀있는 범주 너머의 것을 봐야 한다는 웅변에 가깝다.
생명을 생명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생명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가. 언제 그 생명으로서의 의미가 깊어지는가. 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