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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Jul 28. 2022

19. 이창 (1954)

정의와 도덕 사이의 아이러니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웬델 코리, 델마 리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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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하나이다. 대표작인 <싸이코> 에서 살해당하는 여인을 표현한 연출 기법이 널리 알려져 있는 등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오명> <레베카> <새> 등 워낙 출중한 작품이 많기도 하고 영화마다 특색있는 장면들이 쏟아져서 못 본 작품을 감상할 때면 늘 떨림을 주는 감독이다. <이창>은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3년 전 처음 관람했을 때,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구나 하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의 벅차오름을 기억하며 재감상한 <이창>도 그 때 만큼이나 좋았다. 작품의 원제는 ‘Rear Window’ 이다. 집 뒤쪽 방향의 창이란 뜻인데, 일본 제목인 ‘이창' 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영화를 다시 보고 자세히 조사를 하면서 이창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타이틀 시퀀스가 끝난 후 영화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혹은 창문 높이에서 전경을 둘러보는 샷으로 시작된다. 중앙의 작은 정원을 둘러싸고있는 여러 채의 아파트가 가깝게 붙어있는 배경이다. 집집마다 큰 창문이 있어서 집 안에서 이웃들이 무엇을 하는지 훤히 보여 궁금증을 자아낸다. 주인공 제프는 사진작가이다. 영화 초반에 그의 방을 비추면서 여러 사진과 잡지를 훑는 장면이 나오고 곧바로 전화가 걸려와 대화를 하는데, 이 때 그의 다리가 부러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사가 나온다. 짧은 대화 장면이지만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열심이었던 그의 직업 정신과 능구렁이같은 농담을 통해 그의 성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던 효과적인 대사였다. 한 주만 있으면 깁스를 푸는 제프를 도와주는 간병인이 곧이어 등장한다. 간병인은 심심할 때마다 창 밖으로 사람들을 구경하는 제프의 취미를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는 듯 보인다. 제프의 여자친구의 리사는 패션 업계 종사자로 뛰어난 미인이다. 제프의 눈에는 그녀가 너무 완벽해보였기 때문에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느껴 그녀와의 결혼을 고민하는 중이다.


초반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물의 캐릭터가 짧은 대사를 통해서 완벽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여러 리뷰를 살펴보니 처음에는 지루하다라는 평이 많았는데 나는 오고가는 대사들을 보고 듣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흘러가는 줄 몰랐을 정도로 재밌었다. 또한 간결한 표현만으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배경 상황을 쉽게 설명했다는 점도 굉장히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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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는 제프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지만, 앞서 언급한 문제로 심란해진 제프는 리사에게 퉁명스러운 말을 뱉게 된다. 대화 도중에 저녁의 이웃들을 둘러보는데, 항상 발레를 연습하는 여자의 집에 초대된 남자들과 피아노를 치는 작곡가, 혼자 쓸쓸히 술을 마시는 여자와 건너편의 부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제프의   없는 눈빛과  이웃의 행동이 창을 통해 교차되는 장면을 보는 묘미가 있었고, 알게 모를 서스펜스를 느낄  있었다. 다시 시작된 리사와의 대화에서 그는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겪은 고충을 생생하게 들려주며 이런 생활을 리사가 감내하기 힘들  같다고 주장하지만 리사는 단지 제프를 너무 사랑할 뿐이라고 답하고 그를 떠난다. 그날 , 의자에서 잠들다가 빗소리에  제프는 건너편 부부  외판원 남편이 검은 옷을 입고  서류가방을   황급히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를 수상쩍게 생각하면서 제프는 잠결에 다시 눈을 감는다.   새벽의 다른 집들도 비추는데, 그곳의 거주 분위기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아침이 되자 간병인에게 지난 밤에 보았던 외판원 이야기를 하며 새벽 3시에 무엇을 팔러 나갔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던  외판원이  밖을 둘러보자 황급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며 그를 관찰한다. 여기서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관음의 고조를 알맞게 표현했다고 느꼈다. 제프는 쌍안경에 이어 그의 카메라까지 사용하여 그를 자세히 훔쳐  지경에 이르는데, 보석이 있는 케이스를 여는 모습과  칼을 꺼내는 모습을 포착하여 점점 의심을 하게 된다. 저녁에 그를 보러  리사에게 낮의 일을 이야기하며 없어진 외판원의 아내가 외판원에의해서 살해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리사는 무섭고 비겁한 행동이라며 제프에게 동의하지 않다가 그가 엄청나게  상자를 밧줄로 묶은 것을 목격하고는 제프의 추궁을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다음 ,  상자를 사람을 시켜 집에서 어디론가 이동시킨 외판원을 보고 간병인마저 그의 추궁에 동참하게 된다. 제프는 급히 지인 경찰 도일을 불러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지만 도일은 여러가지 근거를 대며 살인은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저녁에 제프는 카메라로 혼자 사는 여자를 지켜보다가 갑자기 나타난 외판원을 보고 황급히 그의 집을 비춘다. 마침 방문한 리사에게 외판원이 떠날  같다고 전하자 리사도 여자는 보통 어디를 가든 소지품을 챙겨서 가는데 아내의 악어가죽 가방이 아직 집에 남아있는 것과, 보석을 가방에 보관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계속해서 의심한다. 급히 도일을 다시 부른 제프는 다시 그를 설득하지만 도일은 외판원은 살인자가 아니라고 완강히 부인하면서 사람들을 훔쳐보는 제프를 몰아세우기도 한다.  때의 퀀스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소위 말하는 히치콕식 화면 전환이 일어났던 부분인데, 도일이 오자마자 화면 위쪽에 비치는 리사의 그림자를 비추고 피아노곡 배경이 깔린다. 어두운 조명이 은은하게 깔린 방에서 태연한  담배를 피우는 도일과 제프의 눈빛이 짧게 교차되면서 흩어진 리사의 옷가지들을 보여주고  밖의 배경도 보여준다. 특별한 대사 없이 보여지는  짧은 시퀀스에서 굉장한 서스펜스를 느낄  있었다. 특히 앞서 도일과 제프의 신경전이 있었기 때문에  사이의 어색한 공기마저 긴장감 조성에  역할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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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이 가고난 후 잠옷으로 갈아입은 리사와 시간을 보내던 중 한 이웃이 자신의 강아지가 목이 졸려 죽었다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서 이곳의 사람들은 이웃이란 단어의 뜻을 모른다며 어떻게 유일하게 모든 이웃을 좋아하던 강아지마저 죽일 수 있냐고 비판을 하지만 파티를 하던 작곡가의 집에 있던 사람들은 그저 강아지가 죽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만다. 이 때 상황을 유심히 보던 제프는 이 소동에 유일하게 외판원만 얼굴을 보이지 않아서 그가 강아지를 죽인 범인이라고 지목한다. 얼마 지나서 간병인마저 제프의 집에 와서 외판원의 수상한 행동을 관찰하다가 정원의 꽃을 수상하게 여긴 그들은 그 밑에 아내를 뭍었을 거라며 내려가서 땅을 파보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자 리사가 직접 외부계단을 타고 올라가 외판원의 집으로 들어가고 만다. 제프는 당황하지만 움직일 수 없어 창 밖에서 놀란 모습을 보일 뿐이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 외판원에게 걸린 리사는 제프가 부른 경찰의 도움으로 그의 집을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경찰에 끌려가고, 외판원은 그를 염탐하던 제프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를 찾으로 다가온다.

맞은 편에 살고 있던 제프에게 오는 동안에 깔려있던 배경음악이 사라지고 오로지 제프가 움직이는 소리에만 집중한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복도의 불이 꺼지고 서서히 외판원이 서서히 제프를 옥죄어오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마주한 외판원에게 불이 꺼진 방에서 카메라 후레쉬를 비추며 그의 눈을 멀게 하며 저항했지만 크게 힘을 쓸 수 없었던 제프는 그에게 붙잡혀 창문의 난간에 매달리는 상황까지 온다. 하지만 때맞춰 온 도일과 그의 부하들이 외판원을 체포하고 제프를 받아주어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영화는 두 다리 모두 깁스를 한 제프가 의자에서 쉬는 모습 후로 침대에 평화롭게 앉아있는 리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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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탐정이 된 것 처럼 정말 외판원이 아내를 죽였을지 그 결말을 지켜보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이 재미에 깊이를 더해주는 것은 단연 인물의 입체성이다. 제프는 처음부터 창 밖으로 이웃들을 염탐하는 관음자의 역할로 그려진다. 일반적으로 도덕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행위를 하지만 결국 그가 예상했던 대로 결말이 난 것과, 그가 주변인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대로 리사와 간병인은 제프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느샌가 서서히 설득되어 결국에는 제프보다 더 적극적으로 의심을 풀어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등장인물의 모든 행위는 결국 정의를 위해서 이뤄진 것이지만, 해결 과정의 모든 순간이 그다지 정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아이러니함을 자아낸다. 또한 창문과 렌즈 등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닌 가려진 사물을 통해서 보게 되는 어떤 것은 함부로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도일의 역할도 적절했다고 느낀다. 제프가 리사에게 지금처럼만 관계를 유지하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 리사는 제프에게 미래도 없냐고 반문했던 것이 기억난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잡지를 보며 느긋한 미소를 짓던 리사는 결국 그녀가 그리던 미래를 만들었을지, 아니면 제프의 뜻대로 관계를 이어갔을지 궁금해졌다.


글을 쓰며 자세히 언급하지 못했던 이웃들에 관한 이야기 또한 이 영화의 구성을 탄탄하게 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웃들은 영화라는 점에서 제각각 독특한 캐릭터성을 부여받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짧게 보이던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은 결국 누구나 비슷한 모습을 하고있다고 그려진 듯 했다. 초반에 창작으로 힘들어하던 피아노를 치던 작곡가는 결국 마음에 드는 곳을 써서 파티를 연다. 리사가 외판원의 집에 들어갔을 때 항상 혼자 지내던 여자가 남자를 쫒아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약을 삼키려고 하는데, 그것을 보고 신고하려던 제프는 때마침 들어온 외판원을 보고 황급히 리사를 구출해달라고 말한다. 자신의 위험한 행동으로 제프의 재빠른 대처를 가능하게 했지만, 여자는 그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감격하여 창문을 내다본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작곡가의 집에서 행복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여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 외에도 평범한 일상을 비추는 평화로운 장면이 많았는데, 영화의 어두운 장면과 정반대의 느낌을 주어서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수 많은 창은 마치 액자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스튜디오에 실제로 건물을 공사했다고 하는데, 그 공간이 무대라고 하면  우리가 제프의 입장이 되어 진행되는 독특한 형식의 뮤지컬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이렇게 강렬한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던 점이고, 개인적으로 제임스 스튜어트와 그레이스 켈리라는 두 명배우를 한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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