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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Sep 22. 2022

20. 신체 강탈자의 침입 (1956)

그 마지막 표정을 감히 누가 위로할 수 있으랴

감독. 돈 시겔

출연. 케빈 맥카시, 다나 윈터, 래리 게이츠, 킹 도노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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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감상하기 전 줄거리를 읽어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서 장르가 공포라는 점과, 동명의 유명한 소설의 영화화 작품이라는 사실만 인지하고 감상했다. <싸이코>, <엑소시스트>, <악마의 씨> 같은 유명한 고전 공포영화를 즐겨 보는 편인데 이 영화도 처음 들어봤지만 굉장히 재미있고 여러 방면에서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엔딩 장면부터 얘기를 하고 싶다. 영화를 중반쯤 보았을까, 1시간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신체 강탈자, 특 외계 생물들의 침입 원인을 밝혀내고 그들을 소탕하여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그런 완결성 있는 내용을 다 담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다른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역경을 헤쳐나가며 마침내 맞는 광명의 순간이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마무리가 아닌가. 하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 베넬 박사가 겨우 다른 도시의 사람들에게 구조되어 안도하는듯, 슬퍼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끝난다. 살아남았지만 직전에 사랑하는 여인 베키를 잃고 남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그의 모습에서 관객 중 그 누구도 기쁨과 환희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감정이 동화되어 여운을 주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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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진행은 박진감이 넘친다. 영화의 시작부터 큰 소리를 내며 등장하는 베넬 박사와 차를 타다가 뛰어나가는 아이를 칠 뻔한 장면 등 시각적, 청각적으로 주의를 끌며 앞으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기대를 품고 보았던 것 같다. 8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빠른 장면 전환과 쉴새 없이 몰아치는 대사들에 눈을 뗄 수 없었고, 그 덕분에 인간성을 상실한 생물의 특성과 영화 자체의 느낌이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의 주제는 감정을 가진 인간 세상에 감사하며 살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반에 윌마와 지미는 각각 자신의 어머니와 삼촌이 평소 알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다.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행동, 눈빛, 표정 등에서 무언가 이질감을 느낀 이유는 매일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까운 사이에서만 알아볼 수 있는 감정적인 부분이 큰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사례는 우리의 삶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 날 달라진 것 같은 연인의 표정을 보며 불안함을 느끼거나 부모님의 미묘한 표정 변화에 눈치를 보았던 어린 날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인간과 외계 생물의 차이를 감정의 유무에 두었던 점이 신선했다.


베넬 박사가 외계 생물이 된 지인들에게 붙잡혀 대화를 나누던 장면이 이 영화가 전하고픈 핵심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사랑, 욕망, 야망, 진실같은 것들이 없어야 삶이 단순해지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외계 생물의 말에 희로애락을 상실한 채 생존 본능만 남겨진 존재로는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받아치는 박사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이 말에 백번 공감한다. 나는 인간에게 감정이 없다면 그전 빈 껍데기만 남은 생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질투와 시기까지도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감정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 해프닝이 없는 편안한 삶 보다는 인간미 넘치는 복잡 다양한 삶을 더 가치있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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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추격전이 의미있었던 것은 ‘상실’ 때문이다. 힘겹게 자신의 사무실에서 탈출한 베넬 박사와 베키는 쫓아오는 외계 생물들을 피해 힘겹게 도망친다. 끝없는 계단을 올라가고 언덕을 넘으며 광산에 도착하여 그들을 겨우 따돌린다. 시간이 지나고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인간이 있을까 희망을 품지만 확인을 위해 밖으로 나간 박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씨 종자를 옮기는 외계 생물들의 모습 뿐. 크게 실망하여 다시 광산으로 돌아온 그에게 닥쳐온 것은 탈진한 상태의 베키이다. 그녀에게 힘을 주고자 키스를 하지만 그 순간 잠이 든 베키는 결국 외계 생물이 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출이었던 장면으로, 서서히 눈을 뜨는 베키의 얼굴과 겁에 질려가는 박사의 표정이 교차 편집되어 끝없는 절망이 느껴졌다. 특히 박사의 얼굴은 검은 배경에 아래에서 비춰져서 그 절망감이 더욱 돋보인 굉장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내내 베키에게 사랑을 약속했던 장면이 많았기에 감정 이입이 더 잘 되었다.


공포 영화지만 추격전에서는 스릴러 영화의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했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던 대사에서는 낭만적인 분위기마저 느꼈다. 고전 영화가 재미없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에 너무 좋은 강렬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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