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의 성찰과 안도
감독. 잉마르 베리만
출연. 빅토르 시에스트룀, 비비 앤더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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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페르소나>로 처음 접했다가 생각보다 난해했던 내용 때문에 다른 작품은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이번에 좋은 기회로 관심있었던 <산딸기>를 보게 되어서 후련하다. 또한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했다. 21세기 들어서 특히 유행했던 well-being 은 이미 트렌드라기 보다는 당연시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고, 이제는 well-dying 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죽음에 대비하는, 잘 죽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에게 있어서 태어날 때부터 피할 수 없는 단 한가지의 공통된 운명은 죽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누구에게나 존재 할 것이고, 어차피 죽을 것 잘 죽자는 의도가 트렌드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노인 이삭 보리 박사가 여정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50 년이나 의사생활을 하여 공로상을 받기 위해 룬드라는 곳으로 자신의 며느리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는데, 그 과정에서 젊은이들을 만나고 자신의 나이든 어머니를 만나기도 한다. 영화 초반부터 초현실적인 꿈을 꾸게 되는 노인은 관속에 있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깬다. 여행 과정에서도 몇 번이나 잠에 들어 꿈을 꾸는 노인은 그 때마다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거나 초현실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꿈에서 노인은 관찰자의 시점으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과오를 깨닫는다. 또한 그 과오를 심판하는 듯 한 (사후세계에서 판사가 죄목에 대한 심판을 하는 과정으로 해석하였음) 장면에서는 절규하며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글로만 보면 그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 그는 이기적이고 고지식한 냉철한 인물로 묘사되고, 이런 성격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자신이 어릴 적 사랑했던 사라라는 여인의 독백과, 결혼한 후 아내가 부정을 저지르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은 노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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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의 자동차 여행 중 크게 3 가지의 사건을 겪는다. 먼저 노인은 어릴 적 자신이 뛰놀던 저택에서 사라라는 젊은 여성을 만난다.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이탈리아로 가던 그들과 같이 차를 타고 여행을 계속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때 만난 사라와 노인이 어릴 적 사랑하던 사라의 모습과 이름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노인은 젊은 사라에게 이와 같은 말을 전하며 옛 기억 속 사라와 닮은 점이 많다고 말한다. 두 번째 사건은 한 부부가 타고 있는 자동차와 충돌 사고가 난 것이다. 부부의 차가 부숴져서 어쩔 수 없이 한 차를 타고 가게 된다. 차 안에서 부부, 특히 남편의 언행은 특히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내에게 폭압적이고 막말을 하는 그는 아내가 아픈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도 아내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며 헐뜯는데, 이를 참다 못한 며느리가 도로 중간에 차를 세우고 부부를 하차시킨다. 남편은 끝까지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아내는 사과를 하며 차에서 내린다. 마지막 사건은 노인의 노모를 만나러 간 것이다. 앞서 저택 회상 부분에서 노인의 어머니가 먼저 등장했는데, 식사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엄격하고 자신이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같은 성격은 나이가 들어서도 그대로 보여진다. 방에 들어온 며느리에게 서스럼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언행을 하며, 심지어 어머니와 대화하는 노인의 모습도 경직되어 보인다. 대화에서 자신이 10 명의 자식을 낳았고, 여러 증손주들이 있지만 자신을 찾는 일은 드물다고 말한다. 앞서 장면에서 추론해 봤을 때, 가족들이 자신을 찾지 않는 것은 남에게 쉽게 상처를 주는 괴팍한 성격이 확실한 원인으로 느껴진다.
여행을 이어나가다 꿈에서 깬 노인은 쉬고 있는 며느리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는 놀라며 남편인 에발트가 최근 같은 말을 했다면서 그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부부는 결혼 후 아이를 갖는 것에 회의적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며느리가 아이를 갖게 되자 화를 내며 냉담해진다. 에발트는 며느리에게 자신은 고독과 외로움에 살고 있다며 남은 것은 죽음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부부 싸움을 하게 되어 시아버지의 집으로 도망쳐 온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충격을 받은 듯 생각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고통의 대물림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느꼈던 갑갑함이 아들인 에발트가 자신을 보며 느끼는 감정과 동일한 것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룬드에 도착하여 아들과 만나는 노인은 상을 받고 숙소에서 쉬는데, 밤에 노랫소리가 들려 창 밖을 보니 사라와 친구들이 이제 교통편을 찾았다며 떠난다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다. 과거에서부터 불러온 사라라는 애틋한 존재가 노인에게 남기고 간 일종의 삶에 대한 깨달음에 감사하며 그는 담담하게 마지막 안녕을 전한다. 또한 이어지는 가정부와의 대화 장면에서 항상 티격태격했지만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인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에발트가 들어와 잠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조심스럽게 며느리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에발트는 오히려 자신은 혼자 살 수는 없다며 며느리를 선택하기로 결심한 후였고 노인은 아들의 대답에 담담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 들어온 며느리에게 진심 어린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부부가 나간 후 눈을 감은 노인은 다시 과거 회상장면으로 넘어간다. 그 곳에서 사라를 다시 만나게 되고 유년 시절 보았던 부모님을 멀리서 지켜보며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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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일종의 로드 무비이다. 고지식한 노인이 꿈과 환상을 통해 반성을 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연민이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요소인 것 같다. 담담하게 진행되는 연출 사이사이 유년 장면이 아름답고 생기 있게 묘사되어 더욱 감동을 주었다. 끝까지 무표정을 잃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 노인이었지만, 여행을 통하여 얻은 깨달음과 그 동안의 빚을 어느 정도는 갚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잘 느껴졌다. 특히 흑백 연출이 그의 감정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처음 꿈 장면에서 환상적인 느낌을 받는 데 효과적이었고, 마지막 장면도 비네팅 효과를 준 듯 하여 죽음 앞에 놓여진 노인의 모습이 잘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4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많이 생각났다. 누군가의 임종을 옆에서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병원 침대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분명 기쁜 표정은 아니었지만, 슬퍼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면 주마등이라는 단어가 곧장 떠오른다. 죽기 직전 살아온 흔적이 한 순간에 흘러가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죽음을 앞둔 그 상황에서 누군가는 안도와 함께 숨을 거둘 것이고, 누군가는 그 때까지도 후회로 남을 기억을 볼지도 모른다. 노인의 안도하는 마지막 표정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편안한 표정으로 죽음을 맞을 수 있기를. 또한 항상 성찰의 자세를 지니며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