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도 희망도 찾을 수 없는 무질서와 혼란의 도시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출연. 안나 마냐니, 알도 파브리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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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방비 도시는 정부적, 군사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어 있는 도시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전쟁 중 적군에 의한 함락이 거의 확실시되는 도시에서 무의미한 전투와 인명 피해를 피하기 위해 무방비 상태를 선언하는 경우가 많고, 거의 항복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목의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1945년이면 제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로마가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던 시기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서 소재를 가져와 재구성한 영화이다. 전후 이탈리아 영화계는 ‘네오 리얼리즘’ 이라고 불리는, 간단히 말해 세트장을 지어 형식적인 영화를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실생활을 그대로 보여주어 그 당시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은 현실주의적 영화가 떠오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전쟁 피해를 직접적으로 받은 이탈리아였기에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 자본이 부족했고 자연스럽게 간단한 장비와 비전문 배우를 동원한 촬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특징으로 영화를 보면 어딘가 불편한 편집과 완성도가 떨어지는 음향 상태 등이 거슬리는데, 그 당시 열악했을 제작 환경이 충분히 상상된다.
영화는 로마를 장악한 독일군에 대항하는 이탈리아 레지스탕스의 면모와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다. 영화를 보고 한국 영화 <밀정> 이 생각났다. 물론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국가를 위해 몰래 활동을 하며 단원들 사이의 신념과 믿음을 굳건히 하지만 끝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다는 큰 스토리가 비슷했다고 느꼈다. 이탈리아가 독일군에게 잠깐이나마 점령당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이번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는데,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를 겪었듯이 그들도 적으로부터 자신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교과서와 여러 매체로부터 보고 배운 독립운동가들의 사례와 같이 영화에서 애국심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는 정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고결한지를 잘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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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타까우면서도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피나의 죽음이다. 프란체스카와의 결혼식 당일에 갑작스럽게 집에 들어닥친 독일군을 피하지 못해 그가 끌려가고 마는데, 피나는 프란체스카를 따라가다가 길 한복판에서 독일군에게 사살당하고 만다. 그녀의 어린 아들은 달려와서 피나에게 와서 울부짖고 피나 곁에서 무릎을 꿇은 채 아들을 달래는 피에트로 신부의 모습이 집중되는 한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슬픔과 애환을 대변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바로 전 시퀀스에서 늦은 밤에 폭죽을 가지고 놀다가 피나에게 혼난 아들에게 프란체스카가 다가가서 다정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잃은 어린 아들의 상실감이 더 슬프게 느껴졌다. 또한 결국 여성 스파이에 의해 레지스탕스 단원 셋이 잡히게 되는데, 독일군 소령에게 고문을 당하는 만프레드의 장면이 기억난다. 소령은 다른 군인들과의 대화에서 지배민족과 노예민족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며 독일 민족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주장하고는 고문을 어느 정도 받으면 분명히 만프레드가 입을 열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돌아온 만프레드의 답변은 그의 향해 침을 뱉는 행동이었다. 이전 대화에서 한 장교가 예전에 같은 상황에서 비밀을 절대 발설하지 않고 죽임을 당한 프랑스 군인의 사례를 언급한 장면이 일종의 복선과 같은 장치였다고 보인다. 소령은 피에트로 신부를 고문을 받는 만프레드를 지켜보도록 하였고, 결국 죽어버린 만프레도 앞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한 신부가 절망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공교롭게도 두 장면 모두 피에트로 신부가 등장한다. 신부는 레지스탕스의 수장인 인물로 쫓기는 다른 단원을 대신하여 직접 돈을 받으러 다녀오기도 하고, 동네 어린 아이들을 잘 보살피며 사람들에게 신임을 사는 선한 인품을 지닌 인물이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행동하여 위기를 탈출하는 기지를 보이는 그는 사람들을 보듬어주고 옳은 길로 이끈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기도 장면이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성당에서 많은 일이 진행된다는 것도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신부는 결국 독일군에 의해 총살을 당하는데, 순교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신부의 마지막 순간을 보러 온 아이들이 허탈한 발걸음으로 언덕을 내려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며 이탈리아인의 희망과 같았던 인물이 결국 죽임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비극성이 더욱 강조되고 희망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까지 그려졌다.
앞서 영화의 제작 방식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당시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제목이 무방비 도시인 이유는 실제 역사를 가져다 온 것도 있지만, 무법과 무질서가 가득한 궁핍하고 혼란한 세태를 온전하게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반에 빵을 얻기 위해 베이커리 앞에서 서로 앞다투어 빵을 구하려는 인파가 몰린 장면과, 바게트 빵 두 조각이 식구의 하루 끼니의 전부라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성당에서도 사제가 양배추 스프를 끓이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는 등 팍팍한 환경이 그대로 전해졌고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청결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또한 주연 배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일반인이 아닐까 의심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여 사실주의에 힘을 붙이기도 한다. 이런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기에 영화가 더욱 사랑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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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직접적으로 슬픔을 표현하지만 자신들을 구원해 줄 그 아무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누구의 운명도 좋을 수 없었다. 심지어 영화에서 살아남은 독일군조차 역사적으로 규탄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공평한 삶은 무엇이며 영원히 옳은 것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 봤다. 우리의 삶은 어쨌든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것이고 그 누군가는 지금의 우리를 무엇이라고 평가할까. 생각이 많아진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