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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Oct 21. 2022

23. 움베르토 D (1952)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

출연. 카를로 바티스티, 마리아 피아 카실리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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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D>는 30년동안 공무직을 수행하고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아 겨우 살아가는 움베르토라는 노인이 방세를 올려버린 하숙집 여주인에게 굴복하여 거처를 빼앗기고 결국 거리를 정처하는 이야기이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다른 작품 <자전거 도둑>에서는 처절하면서도 따뜻한 면이 보이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절망만 느껴졌다. 네오 리얼리즘 영화 중 굵직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영화이고, 무엇보다 모든 장면에서 거짓 없이 뚜렷하게 현실을 관망하려는 감독의 태도가 잘 드러난 듯 하여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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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쓰임은 소리이다. 첫 시퀀스부터 연금 인상을 위한 노동자들의 시끄러운 시위 장면이 등장한다. 거리에서 도로로 물밀듯이 걸어오는 노동자 집단을 촬영한 구도를 시작으로 점점 가까워지며 후에는 시위자 개인의 장면을 등장인물의 시점 아래에서 보여주는 구도가 인상깊었다. 하지만 시위를 저지하러 온 경찰들에 의해 시위자들은 맥 없이 흐트러지게 되고, 영화는 도망친 세 노인을 비춘다. 영화 시작부터 약 4분간 시위 소리, 개 짖는 소리 등 시끄러운 소리들이 계속되는데, 이는 후에 진행되는 움베르토의 고생길과 비교되어 처음에는 거슬렸지만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숙집 여주인은 세입자를 아랑곳하지 않고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과 노래를 부르며 떠든다. 힘 없고 가난한 노인 움베르토가 여주인에게 눈초리를 받으며 초라한 모습을 보일 때 들려오는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그의 상황과 대비되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영화의 아쉬운 녹음 환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동작의 효과음들이 날카롭게 들릴 때가 많았는데, 오히려 잔잔한 영화에서 주의가 집중되는 듯 하여 좋았다. 하숙집 하녀인 마리아가 새벽에 부엌에서 의자에 앉아 커피 원두를 가는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이 때 조용한 가운데 발 끝으로 겨우 문을 닫고는 눈물을 흘리며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원두를 가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마리아 또한 을의 입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녀인데, 이러한 장면으로도 그녀의 깊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감독의 능력이 인상적이다.


움베르토에게는 플라이크라는 개가 있다. 그는 이 개를 세상 누구보다도 아끼며 어디를 가든 데리고 다닌다. 노인들에게 식사를 나누어주는 식당에 가서도 플라이크에게 몰래 밥을 먹이고, 열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던 순간에도 병문안을 온 마리아가 데려온 플라이크를 보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가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주위 환자들에게 핀잔을 사기도 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움베르토는 공사중인 하숙집에 당황하고, 그제서야 가족처럼 아끼고 지낸 플라이크가 여주인이 문을 열어놓은 사이에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강아지 도살장까지 찾아가서 겨우 플라이크를 찾은 움베르토는 이전부터 적대하던 여주인을 더욱 증오하게 된다. 노인과 강아지는 부유한 여유로움과 가난의 고달픔, 극과 극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는 후자의 느낌이 강하게 표현되었다. 가족에 대한 정보도 없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움베르토는 편견 없이 자신과 함께 동행해주는 플라이크가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로 여겨졌을 터, 영화에서 보여지는 그의 이미지와 중첩되어 더욱 짠하게 느껴졌다. 영화 후반에서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움베르토의 결심이 개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온 듯 연출된 듯 하지만 결국에는 움베르토와 걸음을 같이 하고야 마는 모습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움베르토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캐릭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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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는 방세를 치르기 위해 자신의 물건을 팔지만 대부분이 돈이 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다행히 금으로 상자를 만든 좋은 시계가 있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괜찮은 가격이라며 판매했지만 아무도 사지 않았고, 궁지에 몰린 그는 결국 그 마저도 헐값에 팔아넘긴다. 시계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이것을 죽음과 연관 짓고 싶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노인인 움베르토가 팔리지 않는 시계를 계속 가지고 다녔던 것은 언젠가 끊어질 숨을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누가 봐도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보이는 그였지만 계속해서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는 듯 했다. 결국 시계를 팔아버렸을 때, 이제는 그도 삶을 체념하는구나 생각하였다. 마지막에 실패했지만 자살시도를 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대답을 들은 듯 했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예 모른 채로 감상해서 처음에는 궁핍한 배경 속 유쾌한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줄 알았으나, 영화가 계속될수록 하향선만을 그리는 우울한 스토리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훌륭한 작품이었다. 매 장면 상황을 숨기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고 고발하는 듯한 태도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중반부까지는 반복되는 배경 세트 속 인물들이 마치 연극을 보는 듯 한 인상을 받아서 솔직히 감정 이입이 부족했는데, 플라이크를 찾고 난 이후부터는 움베르토의 행동에서 깊은 슬픔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엔딩에서 멀어지는 움베르토의 모습이 끝까지 절망적으로 느껴진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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