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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Oct 27. 2022

24. 디아볼릭 (1955)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감독. 앙리 조르조 클루조

출연. 시몬느 시뇨레, 베라 클루조, 폴 무리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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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볼릭>은 1955년에 프랑스의 앙리 조르조 클루조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싸이코>를 만든 것은 클루조 감독에게 빼앗겼던 ‘서스펜스의 대가’ 라는 호칭을 되찾기 위해서라는 소문이 있을 만큼 이 영화에서도 명암의 대비나 소리의 활용 등으로 서서히 긴장감을 조성하며 관객을 몰입시키는 기술이 상당하다고 느꼈다. 또한 최초로 내용에 반전이 있다는 것으로 홍보한 영화로 알려진다고 하는데, 어떤 것일지 기대하며 보았으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느꼈다. 디아볼릭(Diabolique)의 뜻을 찾아보기 전에 Diablo 라는 단어와 어원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역시 ‘악마 같은’ 이라는 번역 결과가 나왔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한 번씩은 악마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도저히 동정할 마음이 생길 틈을 주지 않는 이 작품의 타이틀로 쓰기에 손색이 없을 단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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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주인공이자 기숙학교의 선생인 크리스티나는 수녀 출신이다. 그녀의 돈으로 운영되는 기숙학교의 교장이자 남편인 미셸과 다투다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굉장히 흥미로웠다. 수녀는 일정 기간 수련 기간을 거쳐서 일생동안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생활을 서약하는 종신서약을 준비하는데, 이 서약을 마친 수녀는 결혼을 할 수 없으며 결혼을 하려면 종신서약을 취소한 뒤 수녀를 그만둬야 한다고 알고 있다. 이 때의 서약이란 하느님과 맺는 약속일 것인데, 크리스티나가 수녀를 그만두고 결혼을 한 것인지 혹은 수련 기간 중 결혼을 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더 이상 하느님을 섬길 만큼의 신앙심은 없어졌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느꼈다. 미셸은 크리스티나에게 폭언과 모욕을 일삼는 잔인하고 인색한 사람인데, 그가 아이들을 홀대하는 발언을 하자 크리스티나가 자신의 돈으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에서 그런 행위는 일어날 수 없다며 분노한다. 초반부에서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지만 남편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남편의 정부 니콜과 합심하여 남편에게서 도망치고야 만다. 니콜의 계획은 미셸을 자기 집으로 불러 몰래 술에 약을 타 살인을 하는 것이었고,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던 크리스티나는 결국 니콜과 함께 그 계획을 성공시키기에 이른다. 이 장면에서 크리스티나는 헤어나올 수 없는 ‘악’을 택하였다. 결국 영화 마지막까지 죄책감에 시달리며 병들어가는데, 넓게 보면 수녀를 포기하고 미셸과의 결혼을 택한 것에서 이미 불행은 시작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또 재미있었던 점은 왜 니콜이 그렇게 까지 크리스티나를 도와줬을까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반부터 정부와 부인이 함께 근무한다는 사실이 웃기기도 하고, 니콜 역시 미셸에게 정이 떨어졌기에 크리스티나를 꾸준히 도와주었다고 넘겨짚었다. 그만큼 니콜 역을 맡은 배우가 훌륭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온갖 위기의 상황을 교묘히 빠져나가면서 은근슬쩍 크리스티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늘 다른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크리스티나를 그녀 또한 손아귀에서 조종하듯, 어느새 크리스티나가 상상도 못했을 일들을 같이 하게 만들어 죄책감의 굴레에 빠지게 만든 장본인이자, 또 다른 악마의 역할을 한다. 이 교묘한 악마는 크리스티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전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다. 병이 들어 침대에 누워있는 크리스티나에게 다가가지만 매몰차게 거부하는 그녀의 태도에 니콜은 울먹이며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이와 같은 대화는 주로 연인 사이에서 오고 가는 말인데 해당 장면에서 갑작스레 등장하여 흥미로웠고, 이 때문에 퀴어 영화의 성향을 띄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 시퀀스의 마지막까지 니콜은 정말 이렇게 헤어지게 되는 건지 크리스티나에게 질문하며 떠난다. 감독의 의도였다면 관객의 추리를 무너뜨릴 비장의 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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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에서 위기까지의 과정이 영화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지만, 절정 부분의 반전 한 번으로 이전의 스토리를 뒤집어 버리는 과감함이 놀라웠다. 이 전까지 죽은 미셸의 시신이 풀장에서 사라지거나 세탁소에서 그의 이름으로 된 양복이 학교로  배달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크리스티나를 옥죄게 만드는 계략이 흥미진진했다. 사실 니콜과 미셸은 처음부터 크리스티나를 죽이고 학교의 소유권과 그녀의 재산을 차지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렸지만 그 중압감을 견딜 그릇이 되지 않았던 크리스티나는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과 같이 범행 장소를 서성거리며 주위 사람들의 의심을 사는 행동을 하는데, 스트레스가 쌓여 일상 생활을 하기 어려워질 정도로 쇠약해진 크리스티나의 심리를 공략하여 살해 계획을 성공시킨다. 어두운 복도에서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대치하는 크리스티나의 무서움이 강력한 명암 대비와 섬세한 음향 효과로 잘 표현되었고, 타자기가 있는 방의 불이 꺼지며 소리지르는 장면에서 폭발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욕조에서 미셸이 등장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가 물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보며 크리스티나의 꿈을 그린 것이 아닌가 고민했지만 인공 눈알을 빼는 것에서 경악하며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크리스티나의 방에서 만난 둘은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며 신나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맞닥뜨린다.


이전에 크리스티나가 신문에서 세느 강에서 남자의 시신을 찾았다는 뉴스를 보고 미셸이라고 생각하여 시체보관소를 찾아간 적이 있다. 결국 그 시체는 미셸이 아니었지만 그 곳에서 전직 형사를 만나 고집스러운 그를 이기지 못하고 학교 까지 함께하게 된다. 당연히 자신의 범죄가 들통날까봐 형사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그녀는 아프다며 형사를 돌려보낸다. 며칠 뒤 상태가 악화된 크리스티나는 다시 찾아온 형사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게 되고, 형사는 내일이면 크리스티나의 무죄가 밝혀질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 이후 니콜과 미셸이 함께있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하는 그는 모든 것을 알고있었다는 듯 사건을 해결하기에 이른다. 사실 통쾌한 내용이었지만 너무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서 활용되는 듯 하여 아쉬웠다. 형사의 인물상이나 추리 과정 등을 조금 더 보여주는 단계가 있었다면 충분히 그런 추리를 할 만한 인물이었다고 수긍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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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무리 후 보이는 자막이 인상적이다.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관객들에게 ‘입소문은 내 주시되 제발 스포일러 방지를 부탁드립니다.’ 라는 내용이다. 그 당시에는 이만큼 자극적인 반전 스토리가 오늘날보다 적어서 관객들이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 같은데 과연 당부대로 입을 닫은 채 극장 문을 나왔을지 궁금해졌다. 클루조 감독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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