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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Nov 10. 2022

25. 제 7의 봉인 (1957)

신은 대체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하는가

감독. 잉마르 베리만

출연. 막스 폰 시도우, 군나르 뵈른스트란드, 비비 앤더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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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의 봉인>은 십자군 전쟁에서 1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한 기사가 죽음을 유예하고 세상을 떠돌며 신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대단히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영화이다. 성경의 요한 계시록의 구절을 따 와서 붙인 제목은 영화 시작과 마지막에 온전한 내용으로 등장한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실제로 아버지가 목사였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종종 작은 시골 교회로 설교를 하러 갔던 아버지와 함께하곤 했는데, 아버지의 설교에 맞춰 신도들이 기도하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는 교회 내의 중세 그림들과 조각상,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교회를 둘러보았다고 한다. 유년시절 그가 보았던 이미지들을 이 작품에서 다양한 시각적 연출로 형상화한 것 같았다. 보는 내내 빼어난 화면 구성에 감탄하면서도 부족한 종교적 지식에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감상하였는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엄청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감독의 최고작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작품이며, 이 영화를 계기로 내게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던 감독의 이미지가 꽤 흥미롭게 바뀌었다. 이번 감상은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이미지를 중심으로 서술해보려고 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굵직한 키워드로는 기독교, 신, 믿음, 지옥, 죽음 등이 있다.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유럽 가톨릭 세력이 일으킨 십자군 전쟁은 그 규모와 피해가 엄청난 기독교 역사의 큰 오점 중 하나라고 여겨진다. 그런 전쟁의 참상을 겪은 블로크는 신은 과연 인간을 구원하는지 의문을 가지며 신앙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초반부에 휴식을 취하는 그에게 다가온 충격적 이미지의 죽음의 사자가 가장 먼저 충격을 준다. 마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 나올 것만 같은 비주얼을 한 그는 블로크의 제안으로 체스를 두며 그의 죽음을 유예해준다. 죽음 앞에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체스를 두는 블로크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는 시종 옌스와 함께 나라를 떠돌아다니는데, 그 시기 페스트의 영향으로 나라 전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가는 곳 마다 사람들의 상태가 제정신이 아니다. 어느 교회에서 죽음의 춤을 주제로 벽화를 그리는 화가를 만나는가 하면, 한 여성을 악마와 몸을 섞었다는 이유로 페스트의 원인이라며 화형시키려는 사람들도 만난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뗄 수 없는 필연적인 두려움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모습에 충격을 받은 블로크는 어느 교회에서 죽음으로 위장한 신부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에게 자신의 신앙심이 흐트러짐에 대해 고백한다. 신이 손을 뻗고 얼굴을 보여주시길 원한다는 그의 외침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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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런 암울한 장면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 마을의 곡예사로 등장하는 요프와 그의 아내 미아가 등장하는 장면은 <산딸기>의 수풀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던 아름다운 이미지이다. 한 살이 지난 그의 아들 미카엘과 함께하며 새로운 생명의 생기를 느꼈는데, 영화의 다른 장면들과는 확연히 대비되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착하고 쾌활한 성격의 요프에게 술집에서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 모욕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충격을 받고 미아에게 돌아온 요프는 마침 함께 있던 블로크와 인사하고 같이 산딸기를 나눠 먹는다. 화목한 부부를 보며 감명을 받은 블로크는 사신과 다시 진행하는 체스 대결에서 깨달음을 얻은듯한 태도를 보인다.


술집에서 요프에게 모욕을 주었던 사람은 예전에 블로크에게 십자군 전쟁 참가를 권유한 한 성직자로, 후에 타락하여 부랑자처럼 생활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긴 시종 옌스의 도움으로 요프는 겨우 빠져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마을에서 광대의 연극이 이뤄지던 중 난데없이 기독교인 무리가 예수의 상을 앞세우며 광기어린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광대의 공연을 보며 야유를 부리던 마을 사람들에게 갑자기 다가와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분위기를 삭막하게 만든다. 타락한 성직자와 기독교인의 무리는 정상적인 종교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여기서 감독의 기독교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가 크게 느껴졌다. 요프 부부와 블로크 일행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일행은 밤에 산 속에서 화형식을 하러 가는 또 다른 일행을 만난다. 얼마 전 화형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던 그 여자임을 확인한 블로크는 그녀에게 정말 악마와 거래했냐고 질문한다. 여자는 자신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블로크는 두려움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의 대답에 놀란 여자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눈 안에 악마가 있다고 이야기 했다고 말하는데, 이 대사 전까지 죽음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던 그녀에게서 눈동자의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무고하지만 타인의 강요에 의해 악마가 되어 죽게 되는 것이다. 옌스는 그녀를 안타까워 하며 그 누구도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고 한탄한다. 그 사건을 겪은 블로크는 다시 한 번 신의 존재에 물음을 가지며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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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깨달은 블로크에게 사신이 마지막으로 나타나 함께 체스를 둔다. 그 모습을 본 요프는 위기감을 느기고 서둘러 도망치고 블로크는 일부러 체스판을 무너뜨리며 그들의 탈출을 돕는다. 사신은 그를 놓아주며 다시 만난다면 그 때는 정말 죽음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말한다. 남은 일행은 블로크의 집으로 돌아가 그의 아내와 만난다. 모여 앉아 요한 계시록의 해당 문장을 읽으며 운명처럼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들. 한 편 도망친 요프 부부는 폭풍우를 뚫고 어느 들판에서 햇빛을 맞이한다. 영화는 멀리서 죽음의 춤을 추며 끌려가는 블로크 일행의 모습을 가리키며 끝난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요프 부부의 아들의 이름이 미카엘이란 것에서 천사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복선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살아남게 되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또한 연극적인 대사와 형식을 많이 느꼈는데, 실제로 자신의 연극을 각색한 영화라고 한다. 인터뷰와 영화의 내용을 살펴 봤을 때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기독교에 대하여 어느정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느꼈다. 종교가 없는 나도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러 번 품어본 적이 있는데, 이런 사고를 확장하여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는건지 놀라웠다. 꽤 많은 지식을 요하는 어려운 영화였지만 찾아가며 이해하는 재미가 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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