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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Nov 17. 2022

26. 산쇼다유 (1954)

인간이 자비심을 잃으면 인간이 아니다

감독. 미조구치 겐지

출연. 다나카 키누요, 하나야기 요시아키, 카가와 쿄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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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쇼다유>는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1954년 작품으로, 일본의 헤이안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 영화이다.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작품은 예전에 <우게츠 이야기>로 먼저 접했다. 자세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정적인 듯 하면서도 꽤나 몽환적이었던 연출이 기억에 남는다. 이 무렵 일본 영화를 보게 되면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외국인 관람객으로서 잘 모르는 타국의 시대극을 보는 것이지만 감상하면서 스토리를 이해하기 힘들다거나 보기 어려웠던 부분을 찾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특유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걸까. 이 작품도 같은 생각을 하며 감상을 시작하였다. 영화 초반부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시대’ 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아직 인권에 대한 개념이 잡혀있지 않던 시대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와 같은 아픔을 주제로 하며, 그에 맞서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한 남성이 주인공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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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반부가 조금 지날 때까지는 주시오와 여동생 안쥬, 그리고 어머니의 생이별과 그 후의 비극적인 생애를 주로 보여준다. 관료였던 아버지는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지만 그 탓으로 유배를 가는 바람에 아버지와 떨어지게 된 주시오 가족은 몇 년이 지나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여정에 올랐다. 어린 아들 주시오는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며 "인간이 자비심을 잃으면 인간이 아니다.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태어났다." 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되뇌인다. 어느 마을에서 잘 곳을 찾지 못하여 헤메이다 어느 무녀의 도움으로 하룻밤을 신세지게 된다. 하지만 다음 날 배를 타고 떠나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 거짓으로 들통나며 아이들과 어머니는 그 길로 이별하게 된다. 아이들은 산쇼다유라는 악인의 노비로 팔려가고, 어머니는 멀리 떨어진 섬의 사창가로 팔려간다.


산쇼다유의 노동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 다름 없다. 노비들을 마구잡이로 학대하고 심지어 고통스러운 낙인까지 찍기도 하며 공포심을 유발한다. 영화에서 이러한 환경을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어 그곳의 사람들에게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주시오와 안쥬는 나이가 든다. 그 사이 주시오는 마치 이 사회에 고개를 숙인 듯 나쁜 행동을 서슴치않고, 안쥬는 그런 오빠에게 화를 낸다. 어느 날 신입 노비가 부르는 노래에 자신과 오빠의 이름이 담겨있는 것을 듣고는 어머니의 생사를 알게 된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주시오는 안쥬의 도움으로 그곳을 탈출하게 되지만, 안쥬는 남은 사람들이 자신을 고문하여 혹 오빠에게까지 피해가 갈까 스스로 물에 들어가 목숨을 끊게 된다. 주시오는 그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관직 한 자리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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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인공 주시오가 노역장을 탈출해서 관직을 얻은 후의 행적이다. 사실 그 전까지 내용을 미루어 봤을 때 과연 주시오가 남겨진 노역장의 사람들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했다. 주시오가 떠났던 것도 계획적이었다기 보다는 충동적인 것이었고, 마음이 변해버린 주시오의 태도도 신경쓰였다. 하지만 주시오는 자신의 권력으로 인신매매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였고, 그 길로 부하들을 이끌고 곧바로 산쇼다요의 사유지를 습격하여 그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그 후 자유의 몸이 된 노비들을 향해 연설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들에게서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된 그의 모습은 굉장히 가슴 아팠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주시오는 비단 자신만의 개인적인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사회와의 갈등에서도 그 뿌리를 뒤바꾸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가 계속 주시오의 개인적인 사건만을 다루었다면 나는 이 영화에 대해 꽤 아쉽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갔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영화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시오가 안쥬와 함께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는 장면으로 영화에서 총 2번 등장한다. 첫 장면은 어머니와 함께 밤에 노숙을 하다가 불태울 것을 찾기 위해 안쥬와 함께 주변을 탐색하다가 혼자 끙끙대며 나무를 붙잡고 있는 안쥬를 도와 같이 나뭇가지를 부러트린 후 웃음짓는 장면이다. 두 번째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형제의 마음이 가장 멀어진 상황에서 다시 등장한다. 안쥬와 함께 일하던 노비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주시오는 상관의 명령으로 그녀를 숲에 생매장하러 옮기게 된다.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 안쥬는 동료의 마지막 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문지기에게 양해를 구하고 덮을 것을 찾으러 간다. 이 때 안쥬는 한 나뭇가지를 붙잡고 끙끙대는데, 주시오가 나타나서 말 없이 그녀를 도와준다. 둘 만이 남겨진 이 공간은 자연스럽게 이전의 상황이 오버랩 되며 실제로 인물들에게도 예전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이를 계기로 다시 정신을 차린 주시오는 안쥬의 희생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한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낭만적이면서도 슬픈 장면에서 같은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인상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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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주제를 가슴 아픈 이야기를 통하여 잘 전달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여러 좋은 장면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장장 10분가량 되는 이 씬에서 결국 노인이 다 되어 기력이 쇠한 어머니를 만난 주시오는 아들이 왔음에도 믿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물을 보이고 결국 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진실임을 확인받고는 함께 껴안는다. 마지막에 카메라를 돌려 바다를 비추며 영화는 끝나는데, 엄청난 여운이 남는다. 일본의 시대극은 왠지 낭만이 느껴진다. <7인의 사무라이>나 <할복> 같은 작품과는 결이 다르긴 하겠지만 명확한 주제의식을 끝까지 잘 이끄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미조구치 겐지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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