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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Jul 15. 2022

18. 석양의 무법자 (1966)

선과 악을 넘나드는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밴클리프, 일라이 윌릭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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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장장 3시간자리 서부극 영화지만, 존 스터지스 감독의 <대탈출> 같은 옛날 서부극과는 결을 반대하는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감상하기 전에 스파게티 웨스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공부하고 감상하였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유행했던 서부 영화의 한 장르이다. 내용상 기존의 서부극과는 달리 선과 악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고 반영웅적인 주인공이 등장하며, 스토리 전개가 빠르다. 지리적 배경도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 텍사스주 등 미국 서부를 무대로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장면이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촬영된 경우가 많다. 원래는 이탈리아어로 녹음했고,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저예산으로 빠른 시간 내에 촬영되었다. 폭력 장면이 많이 나오는 등 자극적이어서 비판을 받았으나, 몇몇 영화들이 인기를 끌게 되고, 이후 독자적인 작품성을 인정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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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제목은 <석양의 무법자>지만 원제는 <The Good, The Bad, The Ugly>이다. 김지운 감독이 만든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 이 영화를 패러디 한 작품이다. 다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인물상을 살펴보았을 때, 좋은놈에 해당하는 블론디가 과연 (천성이) 선한 사람 이라고 단정짓기 어려운 장면이 다수 존재한다. 몇 가지 근거를 대 보자면 먼저 블론디는 사기꾼으로, 범죄자와 짜고 교수형에 처해질 때 그를 살려내어 현상금을 나눠갖는 부도덕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서 눈 깜빡하지 않고 살인을 쉽게 저지르는 무서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특징에서 봤듯이 이 영화에는 선과 학의 흑백 분리가 성립되지 않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석해볼 때, The Good은 단순히 좋은놈 보다는 영리한놈 혹은 영악한놈 으로 의역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북부군과 남부군으로 이루어진 군인들이 등장한다. 세 주인공은 전쟁이 한창인 시국에서 국가의 패망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눈 앞의 금전적인 욕심에 목표를 두고 각자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캐릭터들이다. 옛날 미국 서부영화를 살펴보면 정의를 위해 맞서 싸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반면에 그런 스토리가 진부하다고 느꼈던 제작자들이 만든 이 영화의 캐릭터들이 그 당시에는 상당히 신선하게 여겨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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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영원한 선과 악은 없다는 것을 영화 내내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영화 초반부에서 엔젤 아이즈는 의뢰를 받고 들어간 가정집에서 알지 못했던 뜻밖의 사건까지 집주인으로부터 듣게 되자 이를 얻기 위해서 그와 그의 아들까지 쏴 죽인다. 집 밖에서 총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부인의 안타까운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또한 그는 의뢰인마저 총으로 쏴 버린 뒤 집주인이 말한 현금 상자를 차지하고 만다. 10분 남짓한 이 시퀀스에서 영화는 엔젤 아이즈가 어떤 인물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 다음으로 블론디가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잡혀 이동하고 있는 투코를 보고는 다른 사람들을 순식간에 쏴 버리고 투코를 구해준다. 이 장면에서 의문점이 생겼다. 분명 영화의 첫 장면에서 투코가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이 나오는데 블론디는 그를 구해주었으니 착한 역할일까 한 패일까. 거듭되는 사기에도 현상금이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사막 한 가운데서 손이 묶인 투코를 버리는 그의 매정한 모습에서는 악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캐릭터 연출에서 투코가 분명 사납고 악한 캐릭터로 보여지던 반면에 블론디는 깔끔하고 단정하게 묘사되어 블론디의 행동이 마치 정의로운 행동인 양

생각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입체성이 돋보인다고 느꼈다.


영화가 진행되며 투코와 블론디의 상황이 역전되는 사막 장면이 나온다. 뜨거운 사막 아래에서 걷다가 지쳐 쓰러진 블론디에게 물을 빌미로 능욕하는 투코의 모습은 악마와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차에서 죽은 빌 카슨이 블론디에게만 금화가 묻힌 묘비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었고, 투코는 그 자리에서 180도 돌변하여 블론디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렇게 도착한 수도원에서 기운을 차린 블론디는 투코와 우연히 만난 그의 형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투코의 가족사는 안타까웠고, 이 장면으로 인해서 투코의 악인스러운 행동에도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남부군과 북부군이 대립하던 장면에서 투코와 브론디는 합작하여 다리를 폭파시키는데, 이 때 다친 북군의 지휘관을 도왔던 두 사람의 모습도 그 전과의 사뭇 다른 모습에 색다른 몰입을 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 장면에서 어김없이 투코는 말을 타고 블론디보다 먼저 공동묘지에 도착하려 하고, 블론디는 그런 그를 대포를 쏴서 멈추게 한다. 이처럼 감독은 각 캐릭터마다 적재적소에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출을 기가막히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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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화나 문학작품을 보면 1대1 결투가 참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에서 귀족들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풀밭에서 단 둘이 총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떠오른다. <석양의 무법자>의 절정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5분 가량의 3인 대치 상황을 보며 위와 같은 장면을 떠올렸다. 공동묘지에서 만난 셋은 블론디가 거짓 정보를 흘렸다는 사실을 자백한 뒤 평평한 돌에 위치를 기록할테니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그 돌을 가지기로 한다.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느껴졌던 장면이다. 황폐한 땅 중앙에 돌을 두고 대치하는 세 주인공. 처음에는 와이드 샷으로 세 인물을 모두 보여주다가 점점 줌인하여 각 인물의 표정과 행동을 묘사하는 연출이 압권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총을 쏘기 전 마지막 즈음에 세 인물의 눈빛 교환이 굉장한 스릴감을 느끼게 했다.


결국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은 엔젤 아이즈이다. 엔젤 아이즈는 앞에서 말한 이분법적 캐릭터들과는 달리 엔젤 아이즈는 감독이 처음부터 나쁜 캐릭터라고 못박아 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주인과 의뢰인을 죽이고 빌 카슨을 찾기 위해 여자의 집을 습격하기도 하고, 또 금화의 위치를 알고 있는 투코를 속여 자신의 부하를 시켜 두드려 패기도 한다. 특히 이 장면에서 인질로 끌려온 사람들이 투코가 맞는 동안 소리가 나지 않게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데, 눈물을 흘리며 공포에 떨던 한 남자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영화는 처음부터 죽어야 했던 것은 엔젤 아이즈라고 내내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상이지만 완전한 악은 제거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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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퀀스에서 블론디는 목을 메단 투코를 기어코 살려준다. 솔직히 말해서 그 동안 당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투코를 죽게 내버려둘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아무래도 험난 여정을 같이하며 애증의 관계를 이어가던 둘의 심리를 긴장감있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렵게 찾은 금화를 반으로 나누어 절반만 챙겨가는 그의 모습에서 한결같은 우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블론디에게 화내며 황량한 땅을 뛰어오는 투코와 묵묵히 긴 평야를 다시 횡단하러 말을 타고 떠나는 블론디의 모습이 와이드 샷으로 비춰지며 영화는 쓸쓸함과 깊은 여운을 남기고 끝난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영화는 처음 감상했는데,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건은 대범하게 연출하면서 인물상은 세세하게 묘사하는 섬세함이 모두 잘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3부작의 나머지 두 영화에서도 같은 배우들이 출연을 한다고 하는데 이 영화와는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비교하면서 감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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