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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Jun 08. 2023

40.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1937)

디즈니가 만든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 데이비드 핸드

출연. 아드리아나 카셀로티, 빌리 길버트, 모로니 올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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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이야기는 전 세계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인기 동화이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마법같은 이야기는 아이들의 동심을 건드리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 또한 어떤 책에서 백설공주 이야기를 처음 읽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 오랫동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백설공주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하얀 피부에 새까만 흑발의 머리, 그리고 새빨간 입술과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구성된 드레스이다. 백설공주에 관한 어떠한 영상이나 작품을 보지 않은 것 같은데 디즈니의 영향 때문인지 위와 같은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놀랍다. 미키 마우스로 대표되는 디즈니의 초기 작품들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감상하며 오랜만에 동심을 느낄 수 있었던 동시에, 현대인의 관점에서 다소 구시대적인 묘사도 많아 꽤 당황하기도 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1937년에 제작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디즈니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이기도 하면서 만화 영화 사상 최초의 컬러 장편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백설공주 이야기를 담은 책이 펼쳐지며 시작한다. 전체적인 구성 또한 이야기가 바뀔 때마다 책의 바뀐 챕터를 보여주며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느낌이 들게끔 한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너무 아름다운 미모로 왕비에게 미움을 받은 공주가 왕비의 모함을 피해 숲으로 도망치다가 7명의 난쟁이를 만나고, 후에 독사과를 먹고 위험에 처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왕자의 키스로 다시 깨어나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 그대로이다. 초반부에 의외였던 점은 백설공주에 대한 간략한 소개 이후 공주가 아닌 왕비를 가장 먼저 등장시킨 점이다. 악인을 먼저 보여주며 영화 전반에 은근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전개 방식이 꽤나 흥미로웠다. 마법 거울에게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고 묻는 장면은 너무 유명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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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과 리듬감이다. 이 작품 또한 뮤지컬 형식을 가져와서 혼잣말을 하던 백설공주가 갑자기 우물가에서 노래를 시작하며 이목을 끈다. 일곱 난쟁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모두 보석같이 아름답다. 광산에서 음악의 박자에 맞춰 광질을 하는 난쟁이들의 첫 등장부터 집에 들어온 백설공주를 만나는 과정까지의 흥미로운 난장판, 손을 씻는 장면, 그리고 식사 후 백설공주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노는 장면이 모두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디즈니 특유의 재치 있는 표현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되었다. 이렇게 재밌는 리듬감으로 통통 튀는 매력을 드러내는가 하면, 난쟁이들에게 왕자와 사랑에 빠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백설공주의 독창 장면은 그 자체로 너무 따스하고 아늑했다. 영화 초반에 노래를 할 때는 배우의 목소리가 너무 앙칼져 아쉬움이 있었지만,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을 부를 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목소리는 없겠구나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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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빼어난 음악적 연출과는 반대로 아쉬움이 큰 부분이 많았다. 영화 초반 백설공주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때마침 달려온 왕자는 은근슬쩍 공주의 곁에서 함께 노래하지만 누더기 옷이 부끄러운 공주는 성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예상했지만 이 때 잠깐 등장하는 왕자는 이후에 제대로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결말에서 갑자기 백설공주를 찾아 그녀를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바로 이런 급작스러운 전개이다. 감정이 제대로 전달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갑자기 장면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았고, 영화가 비교적 편안하게 전개되다가 후반부 독사과가 등장하는 부분부터 짜여진 틀에 맞춰 급히 마무리 되는 듯하는 등 내용적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영화가 등장인물을 다루는 방식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다수 있었다. 일곱 난쟁이 중 멍청이로 번역된 ‘Dopey’ 는 캐릭터 자체가 모자름을 특징으로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혼자 뒤쳐진 채 다른 난쟁이들에게 얻어맞거나 항상 수동적인 자세로 다른 난쟁이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현재 애니메이션에 반영될 수 없을 정도의 수위를 선보인 이 당시 디즈니 영화에서 보이던 폭력적인 묘사가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보여서 감상 내내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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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제작한다면 일반 영화를 제작하는 것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제작에 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시대상을 반영하면 눈감아줄 만한 최고의 작품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찌됐건 백설공주라는 뿌리 깊은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며 오랜만에 옛 추억을 회상해보기도 했고, 무엇보다 눈과 귀가 즐거웠던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어서 매우 만족했다. 감독 데이비드 핸드는 후에 <밤비>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보고 난 후 해당 작품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 디즈니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분명한 마법의 힘이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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