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세상과 끔찍한 세상은 공존한다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테레사 라이트, 조셉 코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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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가 누워있고 주변에는 돈이 널브러져 있다. 스펜서라는 이름의 남자는 관리인을 통해 자신을 만나러 온 두 명의 남자에 대해 듣게 되고, 의미심장한 얼굴로 밖으로 나가 그들 곁을 지나친다. 이후 두 남자는 스펜서를 잡기 위해 그를 쫓지만 건물 사이에서 놓쳐버리고 만다. 곧이어 등장하는 장면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그는 산타 로사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자신을 찰리라고 밝히며 전보를 보낸다. 영화의 인트로 격인 해당 시퀀스는 남자의 얼굴 표정과 행동에 주목하며 그를 비밀스럽고 의심이 많은 인물로 묘사한다. 인상깊었던 점은 오프닝에서 금문교에서 주택 거리 – 창문 – 남자의 침실로 이어지는 간결하고도 직관적인 카메라 움직임이다. 중요하지 않은 풍경부터 시작하여 주요 인물을 확대하여 보여주는 영화의 시작이 꽤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림자를 잘 활용하여 장르 특유의 음산하고도 무거운 분위기를 잘 그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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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산타 로사에 살고 있는 찰리의 누나 뉴튼 부인의 동네를 비춘다. 오프닝 시퀀스와 마찬가지로 마을의 풍경부터 집의 창문 그리고 여자 주인공 찰리를 순서대로 보여준다. 찰리의 가족은 은행원 아버지가 있고 찰리 밑으로 두 명의 동생이 있는 평범한 가족이다. 찰리는 이러한 따분하고 평범한 일상에 지루함을 느껴 삼촌인 찰리를 생각해내곤 그에게 연락하러 우체국으로 떠난다. 동시에 뉴튼 부인은 동생 찰리에게서 날라온 전보를 전달받고는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방문을 무척 기뻐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삼촌 찰리와 조카 찰리는 동명이인이다. 찰리는 삼촌을 일상에 재미를 가져다 줄 소중한 인물로 생각하며 그가 도착하자 쉴 새 없이 얘기하며 기쁨을 숨기지 않는다. 한편 찰리는 그런 조카에게 반지를 선물하며 조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이 장면에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이 느껴져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찰리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의심을 산 행동은 신문을 보다가 어느 소식을 발견하고는 조카들에게 신문으로 집을 만들어주며 자연스럽게 그 부분을 빼낸 것이다. 찰리는 아버지 뉴튼 씨가 보는 신문을 삼촌이 어지럽힌 것에 대해 질책하며 그의 주머니 속에서 없어진 신문 페이지를 발견한다. 장난스럽게 삼촌에게 신문에 대해 물어봤지만 삼촌은 찰리의 손을 세게 잡아채며 비밀을 숨기려는 모습을 보인다. 며칠 후 정부 기관 근무자로 위장한 형사들이 인구조사를 핑계로 찰리의 집에 방문한다. 찰리 삼촌은 그들에 대한 의심을 숨기지 않으며 오히려 불쾌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형사들은 찰리를 한 사건의 용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몰래 찰리의 사진을 찍으려다가 들켜 필름을 빼앗긴다. 형사 중 그레이엄이라는 남자가 조카 찰리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녀와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찰리는 그레이엄이 형사인 것을 눈치챈 후 그를 추궁하지만 삼촌에 대해 진지하게 추궁하는 그의 모습에 찜찜함을 떨칠 수 없던 그녀는 도서관에 가서 그녀가 보지 못한 신문 페이지를 찾게 된다. 돈 많은 과부를 살해하는 범죄자를 찾고 있다는 기사에서 찰리가 그녀에게 줬던 반지에 새겨진 의문의 영문 이니셜이 피의자와 일치함을 깨달은 찰리는 충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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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자신에 대한 태도가 전과 달라짐을 느낀 찰리 삼촌은 그 때부터 오히려 그의 그림자를 더 드리우며 찰리를 협박하거나 가스라이팅을 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찰리를 괴롭게 한다. 찰리도 몰래 그레이엄을 도우며 초반에는 삼촌에 대한 긴가민가한 감정을 느꼈지만, 삼촌의 태도 변화로 모든 정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공포와 분노의 감정까지 느끼게 된다. 찰리가 삼촌과 답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아버지 뉴튼 씨와 친구분의 대화를 통해 용의자로 지목된 다른 사람이 체포 중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삼촌 찰리는 한껏 가벼워진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서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는 조카의 모습을 보고는 생각에 잠긴다. 그 이후 찰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조카를 죽이려고 한다. 낡은 계단을 부셔서 찰리가 굴러 떨어지게끔 하고, 심지어는 자동차 연기로 자욱한 차고에 갇히게 하기도 했지만 지나가던 아버지 친구분을 통해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다. 이 모든 과정에 삼촌의 개입을 느낀 찰리는 그에게 떠나라며 분노에 찬 말을 남긴다.
뉴튼 부부가 속한 모임의 회원들을 집으로 불러 삼촌 찰리의 연설을 기다리고 있을 때, 찰리는 조카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이 때 까지만 해도 능글맞은 표정으로 그녀를 기다리지만, 영화 초반에 그가 선물했던 반지를 찾아내서 손에 낀 채 계단을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당황하며 곧바로 다음 날 떠날 것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다음 날, 찰리의 가족은 기차에서 마지막 배웅을 한다. 삼촌 찰리는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조카를 붙잡지 않으며 그녀를 밖으로 밀쳐내 죽이려고 하지만, 기차는 아직 충분한 속력이 나지 않았고 그가 방심한 틈을 타 반대로 삼촌을 밖으로 밀치며 그는 죽고 만다.
이윽고 진행된 삼촌의 장례식에서 그레이엄과 찰리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많은 진실을 알고 있던 찰리는 그레이엄에게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알리지 않은 채 혼자서 큰 짐을 짊어져야만 했던 자신의 고충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절대 알 수 없는, 세상은 끔찍한 곳이라고 말했던 삼촌의 예전 말들을 떠올린다. 그레이엄은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가끔 감시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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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일상성과 평범함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평범하고 따분한 일상에 나타난 삼촌을 그토록 반겼던 찰리였지만, 결국에는 삼촌으로 인해 평범한 삶이 깨져버리고 힘든 나날들을 보내지 않았던가. 삼촌 찰리의 과부에 대한 비정상적인 사고에서도 드러나듯이 가끔 등장하는 미친 사람 때문에 그레이엄과 같은 감시자가 필요한 것이다. 같은 세상을 살지만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을 지루하게만 보지만, 어두운 생활을 하는 다른 누군가는 그들의 평범함을 굉장히 부러워 하지 않을까.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보편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짜릿한 반전이나 긴장감은 덜했지만,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며 대사에 집중하며 감상하기에 좋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