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재밌기도 하다
강사와 원장의 차이는 '책임'이라는 단어에서 온다. 솔직히, 강사로 일하면서 그 학원의 원장님의 단점, 한계를 늘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점으로 인한 파괴적인 결과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결과에 책임이 없었다. 강사이기 때문에.
하지만 강사라는 자리는 '권한'도 없다. 고용되어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원장의 의사 결정에 그저 따를 수밖에 없다.
원장이라는 자리는 화려하다. 대표가 된다는 것은 그 브랜드의 얼굴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원장의 이미지가 좋으면 그 브랜드의 이미지 또한 좋을 수밖에 없다.
원장은 학원의 전면에 나서서 모든 것을 지휘한다. 학생들도, 학부모님들도 그 원장의 역량을 보고 신뢰를 할 지 말 지 결정한다.
잠깐의 말 실수로 원장은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신뢰를 잃으면 학생은 떠난다. 원장은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다.
교습소 오픈 초기에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늘 긴장 속에서 계속 노력했다.
외로웠다. 나 혼자 모든 아이디어를 내고, 결정하고, 책임지고. 교습소 운영이란, 그 과정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밤에 잠이 안 올만큼 고민했다. 나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예측해서 시나리오를 몇 개를 돌리느라 잠이 안 왔다.
그랬던 내가 '원장'이라는 자리에 익숙해지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피곤해하고 아플 때, 학생들도 나를 걱정하고 학부모님들도 따뜻한 말씀을 건네주신다.
내가 웃으면 학생들도 수업에서 함께 웃는다. 학생들은 매수업 시간 일상 생활을 내게 공유한다. 나는 어느새 학생들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어린이날 선물을 무엇으로 할 지, 한달 전부터 고민하다가 어제 결정했다. 학생들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고민하다가 보틀로 정했고, 재질도 좋은 것으로 주문했다.
학생들이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 좋아할 것을 생각하면 괜히 미소가 나고 기대가 된다.
재밌다. 나는 누구보다 즐기고 있다. 혼자 같았지만,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번씩 정든 학생들이 나를 떠나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극단적으로 모두가 나를 떠나는 상상을 하다가도,
그러면 마지막 한 명의 학생한테까지 잘해주고, 후회 없이 교습소 운영을 마무리하고, 다른 재밌는 일을 또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혼자 미소 짓는다.
모든 게 영원할 순 없다. 그래서 나는 잃을 것을 먼저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보다 교습소 운영에 열정적이고, 원장이라는 자리를 견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내가 혹시 0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시작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
원장이라는 무거운 왕관을 견디는 게, 이제는 좀 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