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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노트]존경 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말이 참 이상하지만서도

by 혜은


어젯밤 수업 중 중2 남학생이 본인이 다니는 수학 학원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해서, 별 생각 없이 "나는?" 했더니, 학생이 "선생님은 친근하고 편해요." 그래서 "와~너무해!"하고 웃고 말았다.


그런데, 집 가는 길에 그 말이 다시 생각났다.

'나 존경 받는 선생님이고 싶었나?'




그러다 문득 '존경 받는 선생님'이 어떤걸까 생각해봤다. 머릿 속에 차분하고 대단한 가상의 선생님이 떠올랐다. 학생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카리스마 넘치는.


그러다 또 든 생각.

'그런 선생님에게 애들이 속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선생님은 '똑똑한 옆집 언니, 누나' 같은 선생님이다. 우리 원의 학생들은 정말 내게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오늘 학교에서 뭐 했는지, 왜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지, 왜 하기 싫은지, 왜 우리 원의 단어테스트와 정기 시험을 못 치면 안 되는지, 학교 영어 시험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나중에 뭐가 되고 싶은지 까지.


나는 진심으로 듣는다. 조언을 하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계속 듣는다. 중간중간 맞장구만 친다. 학생들은 내게 털어놓으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한다. 학생들은 그걸 참 좋아한다.




나는 학생들이 앞으로도 날 편해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멘탈을 잡아주는, 동기 부여를 해주는 존재로 남고 싶다.


우리 원의 학생들은 수시로 내게 연락이 온다. 카톡, 전화, 가끔은 인스타 DM까지. 나한테 할 말이 뭐가 그리 많은지.


그들의 일상 속에 내가 있다는 게 참 좋다.


우리 원의 중학생들은 학교 영어 시험이 끝나면 예외 없이 나한테 전화가 와서 시험이 어땠는지 이야기 한다. 나한테 의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때가 많다.


존경 그까짓 거, 안 받으면 어떤가. 학생들이 내가 좋고, 내가 필요하다는데. 그래서 나는 존경 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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