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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Aug 26. 2021

그들의 침묵을 깰 자 어디 없는가?

우리 학원에는 선생님들 모두가 입 모아 힘들다고 하는 학년이 있다. 바로 고2다.


그 이유는 고2 학생들은 선생님이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수업을 하면 필기한다고 샤프 사각거리는 소리와 숨소리밖에 안 들린다.


그러다보니 수다쟁이인 나도 고2 수업만 들어가면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일절 잡담 없이 수업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한 번 수업할 때마다 다른 학년에 비해 1.5배 정도의 분량을 수업했다.



그런데, 저번주 토요일 수업, 수업이 5분 정도 남았을 때, 한 고2 여학생이 손을 들어 말했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오늘 수업 여기서 마치면 안 돼요?"


솔직히 나도 힘들었다. 긴장감을 풀지 않고 1시간 10분 내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그래서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 웃으며 수업을 마쳤다.



그 날 밤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고2 학생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때까지 나의 수업이 많이 힘들었다는 걸 깨닫게 되자, 학생들에게 내 수업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 지 고민이 되었다. 그들의 침묵을 깨야했다.


고2 수업이 있는 이번주 수요일, 출근하자마자 원장님께 말씀드렸다.


"오늘 고2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지는 게 수업의 목표입니다."


목표는 세웠건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하는가. 그래서 급히 세운 계획은, 일단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고2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였다. 이때까지 몇 달을 수업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2학생들에게 얘기해준 적이 없었다. 학생들도 내가 궁금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학생들이 궁금했다.


고2 수업을 들어가기 바로 전 고1 수업이 있었다. 나의 머릿 속은 고2들 때문에 복잡했다. 심지어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고1들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고2 선배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선배들한테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고1 여학생들의 대답은 기발했다.

 "먼저, 마라탕 좋아하냐고 물으세요!! 그다음은 민트 초코 좋아하냐고 물으세요!!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라서 반응할 거예요~ 그리고 선배들 대답에 선생님이 반응을 잘해주세요!!"


자꾸 고2들한테 얘기해보고 후기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고2 수업을 들어갔다. 웃으면서 조금 분위기를 풀고 얘기했다.


"얘들아, 마라탕 좋아하니?"



결론만 간략히 얘기하면, 나는 드디어 그들의 침묵을 깼다. 마라탕과 민트 초코에 대해서 토론하다가, 나의 취미인 글쓰기를 소개했고, 학생들을 한명씩 지목하고 취미를 물었다. 학생들이 서로의 취미를 듣고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한 학생이 MBTI 이야기를 꺼내서, 일단 나의 MBTI 유형을 맞추게 하고, 다같이 학생들의 MBTI 유형을 한명씩 맞췄다. 학생들이 서로에게 평소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드러나면서, 학생들이 흥미진진해했다.


진정한 소통의 시간이었다. 고2 학생들이 말했다.


"선생님, 다음 시간에도 소통의 시간을 가져요!!"


오늘처럼 수업 내내는 안 될 것 같고, 약간의 시간은 할애하겠다고 답했다. 이번주 토요일 수업에 앞서 미리 이야기 주제를 생각해놓아야 할 것 같다. 고2 수업에 대한 부담이 조금은 줄었다. 이제는 고2 학생들과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날들이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많이 된다.


그들의 침묵을 깰 자 어디 없는가? 드디어 한 명의 용사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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