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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Aug 28. 2021

견습생에서 탈출한 듯합니다

지금 학원의 원장님께 영어 문법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지 이제 6개월이 꽉 차간다. 나는 이 학원의 면접을 보던 날 원장님께 말씀드렸다. "원장님께 영어 티칭을 체계적으로 배워보고 싶습니다."라고. 내가 자처한 견습생 생활인 셈이다.


원장님과의 수업 시간은 보통 한 번에 50분 정도 되는데, 그 분량으로 학생들 수업을 두 번은 할 수 있다. 원장님의 수업을 듣자마자 거의 바로 이를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직접 내가 설명해야하기 때문에, 나는 초집중 상태로, 적막 속에서 원장님의 수업을 듣는다.



그런데 이번주 화요일, 처음으로 원장님이 웃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혜은쌤이 진짜 학생도 아니고, 앞으로는 같이 커피도 마셔가며 담소도 나눠가며 수업합시다~ 이건 과외도 아니고, 좀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해도 될 것 같아요!"


놀랐다. 놀랐지만 티내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원장님 방식의 인정'이다. 처음에는 내가 과연 원장님의 교안을 습득해서 이를 학생들 앞에서 제대로 구현해낼 지 반신반의 하시면서, 항상 진지하고 딱딱한 분위기에서 나를 가르쳐주셨다.


그때 나는 정말 간절하게 원장님께 인정 받고 싶었다. 수업 사이에 시간이 날 때마다 칠판 판서를 연습했다. 그리고 출근해야 하는 시간보다 한두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칠판 앞에서 그날 할 수업들을 몇 번이고 연습했다. 그래야만 학생들 앞에서 자신있게, 여유롭게 수업할 수 있었다.


원장님은 그런 나를 한 번도 칭찬해주시지 않으셨다. 가끔씩 염려 섞인 말씀은 하셨다. 저렇게 열심히 하다가 지쳐서 그만둘까 걱정된다고.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다짐했다. 원장님께서 나의 꾸준함을 인정해주실 때까지 열심히 하는 걸 멈추지 말자고.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얼마 전, 모든 선생님들이 계신 회의 시간에 새학기 수업 운영 계획을 설명하시던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혜은쌤이 고등학생들 수업을 자연스럽게 하기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이 저 없을 때에 학생들 출결 체크 보고만 신경쓰면 될 것 같습니다."


경력이 최소 10년이 넘는 선생님들 앞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나에게는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6개월만에 처음으로 받은 인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주 화요일에 받은 또하나의 인정. 나는 신나서 목요일에 커피 두 잔을 사들고 출근했다. 원장님께서 좋아하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원장님과의 수업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견습생. 원장님께 가르침을 받는 내게 스스로 붙인 타이틀이었다. 여전히 원장님의 가르침은 계속되지만, 나는 어느새 이 타이틀에서 탈출한 듯 하다. 6개월의 시간 끝에, 이제는 나는 그냥 "혜은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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