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련님, 황달식 -3-
3편 누구에게나 낭만은 있다
도련님을 처음 본 곳은 한 가수의 공연장이었다. 처음 보는 남편의 가족이라 나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도련님이 나와 남편을 위해 크리스마스 공연을 예매했다고 하여 굉장히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듣던대로 사랑꾼에 로맨티스트가 맞구나, 했다. 유명하지 않았지만 노래 한두곡 정도는 알만한 가수의 공연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표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도련님과 그 가수는 한 지방에 위치한 사설도박장에서 만나서 친해졌다고 한다. 도박을 하다 친해진 사이라서 원하면 언제든지 콘서트표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이 반쯤 사라졌지만 그 당시에는 몰랐던 내용이었다. 역시 인생은 모르는 게 약이다.
처음 도련님을 봤을 때 생각보다 날카로운 눈매와 험상궂은 표정에 깜짝 놀랐다. 눈에 살기가 있었다. 내심 기대하던 로맨티스트의 이미지가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남편과 닮았는데, 눈꼬리는 남편이 더 올라갔지만 왜인지 인상은 도련님이 더 사나웠다. 난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도련님은 어울리지 않게 방긋 방긋 웃으며 잘 부탁드린다고 했고, 난 도련님이 멀어질 때까지 굳어있다가 행여나 들릴세라 남편에게 속삭였다.
"도련님 무슨 일 하신다고 했지?"
남편은 횡설수설하며 잘 모른다는 둥, 강남에 있는 회사에 다닌다는 둥 되는 대로 대답했다.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뭐 강남에 있는 회사가 한두개가 아니고 우리나라에 있는 이름 모를 중소기업도 굉장히 많으니, 그럴수 있겠다 싶어서 넘어갔다. 그 때 넘어가지 말고 좀 더 캐물었어야 했다.
도련님과 동서는 중학교 동창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사귀어온 그들은 20대에도 30대에도 만남을 이어갔다. 도련님이 군대를 다녀오는 동안에도 동서는 지고지순하게 기다렸다.
괜찮은 만남이었다. 서로 취향도 맞고 적당히 받아주고 사이도 나쁘지 않고 헤어질 이유도 없었다. 동서는 대단히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다만 30대에는 결혼이라는 관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결혼하지 않고 교제만 할 수는 없었다. 동서의 아버지가 동네 골목에서 담배를 피는 도련님을 훈계한답시고 두어 대 때린적이 있었지만, 어렸을 때니 기억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기억해선 안 되었다. 당시 도련님은 동서의 아버지를 발로 차며 무슨 상관이냐고 욕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은 언제나 죄를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물론 이 사실을 동서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모르고 있다.
동서네 집에서는 동서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만 짐작했을 뿐, 딱히 만나보려 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정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 집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쿨한 집안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과년한 딸을 언제까지나 두고 보는 부모는 없다. 딸이 비혼 선언을 하지 않는 한.
동서가 31살이 되던 해, 동서의 아버지는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동서를 앞에 앉히고 물었다.
" 남자친구 있냐?"
" 네. "
" 그놈 백수냐?"
" 아니요. "
" 이번주에 집으로 데려와라."
그렇게 해서 예정에 없던 첫인사가 이뤄졌다. 급히 꽃다발과 한우 한 상자를 사서 동서네 집에 인사드리러 갔다. 천하의 도련님도 떨리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떨려야지. 미래의 장인어른을 감히 발로 차고 욕을 했으니. 부모님께 큰절을 하고 무릎꿇고 앉아 이런 저런 질문에 적당히 대답하던 때였다.
"자네한테서 건달의 냄새가 나."
예비장인의 날카로운 말에 도련님은 깜짝 놀랐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어머니께 처음 담배 피는 모습을 걸렸을 때 이후로 그렇게 놀란 건 처음이라 했다. 역시 어른의 통찰력은 나이가 들수록 빛나기 마련이다. 도련님에게 술을 권한 예비장인은 고작 양주 두 잔에 쓰러진 도련님을 보고 결혼을 허락했다.
건달이었으면 응당 술도 잘 마실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못 마시는 모습이 맘에 들었던 것이다.
안타깝지만 잘못 짚으셨다. 도련님은 건달이 맞고 다만 술을 못 마시는 건 집안 내력일 뿐이었다.
어쨋든 도련님의 하찮은 주량 덕에 큰 반대 없이 결혼을 진행했다. 결혼식 날, 하객들의 형형색색 머리칼에 남편은 깜짝 놀랐다. 노랑, 핑크, 초록...도련님의 손님 가운데 염색을 한번도 하지 않은 검은색 머리의 하객은 드물었다. 친히 도련님의 큰아버지가 주례를 서셨다.
"이렇게 좋은 날 부모님이 함께 하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지..."
그 말 한마디에 식장이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부모님 두분 다 일찍 돌아가시고 형제 둘이 어렵게 큰 걸 알기 때문에 친척들도 내심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신랑 신부는 말할 것도 없이 하객들도 저마다 훌쩍이며 휴지나 손수건을 찾았다. 물론 모든 하객이 그 말에 감동받은 것은 아니었다.
" 와, 달식이 새끼 운다. 미친놈, 사진 찍어뒀다가 나중에 보여주자."
언제나 매사에 긍정적인 도련님의 친구들은 낄낄 웃으며 카메라를 찾았다. 그 바람에 울던 하객들은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앞에 계시던 어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봤으나 누가 봐도 양아치의 기운을 풍기는 그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도련님이 우는 사진은 후에 길이길이 남아 친구들 사이를 떠돌았다. 그들은 우는 도련님 사진에 크게 감동하며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무사히 결혼식을 치르고 도련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 허니문베이비와 함께 돌아왔다.
예상보다 빠른 임신 소식에 모두가 깜짝 놀랐지만 축하받아야 할 일이었다. 요즘 난임부부도 많은데, 차라리 잘 되었다 했다. 아기를 출산할 해를 따져보던 도련님은 아기가 쥐띠생이 될거라는 말을 듣고 짜증을 냈다.
" 쥐띠생은 재수가 없는데!"
그 말을 듣고 임신 중이던 동서가 울었다. 도련님의 등짝을 때리는 어머니는 더이상 안 계셨지만, 얼굴을 보는 사람들마다 임산부를 울렸다며 도련님에게 욕을 했다. 배부를 때까지 욕을 처먹은 도련님은 어쨌든 반성하는 기색이 보이긴 했다. 얼마간 잠잠했던 도련님은 남편에게 슬쩍 고급정보를 알려 주었다.
" 나 아는 형님이 작업하는 작전주인데, 이거 확실하니까 가진 돈 있으면 전부 사도록 해."
공교롭게도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에 듣게 된 고급 정보였다. 다른 날이면 좋았을 것을. 남편은 고민 하다 내게 말했고, 왜 이제서야 말하냐며 나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입관을 마치고 우리는 상복을 입은 채 나란히 차에 숨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관속에 계실 할머니가 뭐 이런 자식들이 다 있냐며 분노하며 살아 돌아오실 것 같았다.
도련님이 알려주신 종목을 검색하고 다리를 달달 떨며 전 재산을 모두 걸었다. 가슴이 떨렸다. 그 후로 발인할 때까지 계속 핸드폰을 확인하며 주식시세를 확인하다 부모님께 제대로 눈치를 받았다.
다행히 주식은 순탄하게 올라갔다. 이틀 오르고 하루 떨어지고 이 주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미친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상한, 상한 또 상한가였다. 자고 일어나면 재산이 불어나 있었다. 나와 남편은 회사에 출근하면 주식 시세를 확인하느라 벌찐벌찐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주식이 +64.8%를 찍은 날, 나는 남편에게 넌지시 말했다. 이제 이거 처분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도 생각보다 너무 많이 올랐다 싶었는지 도련님에게 전화를 했다.
" 형, 신경쓰지 말고 100% 될 때까지 기다려. 이거 무조건 100%까지 오르는 종목이야."
도련님은 대출까지 받아서 우리가 산 금액의 2배를 매수했다고 했다. 100%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대출이라도 받아서 좀 더 넣는 건데. 우리는 상상 속에서 집도 사고 차도 사며 김칫국을 마셨다. 모두가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 날 이후로 주식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64.8%가 60%가 되고, 55%가 되고, 48%가 되었다. 불안해하는 나와 남편을 도련님은 끊임없이 안심시켰다. 확실한 건이니 조금 더 기다리라고. 분명히 반등한다고 했다.
서서히 떨어진 주식은 끝도 없이 추락해서 어느덧 -10%가 되었다. 나는 이쯤에서 원금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매도하자고 했으나 남편과 도련님이 나를 말렸다. 다시 반등할 것이라고.
그놈의 반등을 기다리다가 결국 주식은 -75%가 되었고, 해당 종목은 1년간 거래중지가 되었다. 전 재산의 3/4이 순식간에 줄었다. 그 이후로 나와 남편은 주식의 주자만 들어도 경기를 했다. 대출까지 받아서 넣은 도련님은 더 죽을 맛이었다. 그는 동서에게 평생 충성하기로 하며 예전처럼 큰소리를 치지는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추락한 주식과 상관없이 동서는 예쁘고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아들은 엄마를 닮는 법이다. 도련님 대신 동서를 닮아 눈도 또랑또랑하니 크고 하얀게 아주 귀공자 같았다. 아기를 보는 사람들마다 아기가 참 이쁘다며 감탄을 했다.
시부모님이 계시지 않아 경조사를 따로 챙겨줄 어른이 없어서 우리는 돌잔치 때 많은 부조를 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재산이 1/4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부조를 100만원 하고 금도 세 돈을 해서 금팔찌를 하기로 했다. 없는 살림치고 큰 결심이었다.
돌잔치 당일 날, 남편은 부조금 외에 현금 5만원을 더 챙겼다. 돌잔치 때 분명 아기에게 용돈 줄 사람을 구할 거라고, 직계가족은 자신 뿐이니 자기가 제일 먼저 나가서 돈을 줄 거라고 했다.
센스있는 준비였다. 문제는 우리가 깡패들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는 점이다. 자꾸 도련님이 깡패라는 사실과 아는 깡패가 많다는 사실을 잊는 우리였다.
도련님 친구들이 주는 금은 기본이 다섯돈이었다.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 돈짜리 금팔찌가 갑자기 너무 초라해 보였다.
조카 팔에 다섯돈짜리 팔찌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어서 우리가 준비해 간 금팔찌를 걸어둘 엄두도 못 내고 동서 가방에 슬쩍 넣어두었다. 어쨌든 우린 부조를 따로 했으니까, 라며 위안을 삼았다.
남편은 그래도 자신은 센스있게 조카 용돈을 따로 챙겨왔다며 제발 용돈 주는 코너가 있길 빌었다.
남편의 소원대로 용돈 주는 코너가 있었다.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으련만. 사회자가 크게 외쳤다.
" 우리 멋진 왕자님께 용돈을 주고 싶은 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분명 남편은 빠르게 일어섰다. 가장 빨리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가서 사회자에게 5만원짜리를 내미는 남편은 누가 봐도 의기양양해 보였다. 남편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게 움직인 것이었으나, 차라리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뒤로 도련님의 친구들이 나와서 저마다 용돈을 전달했다. 위풍당당하게 자리로 돌아오던 남편은 격앙된 사회자의 외침을 듣고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와, 100만원짜리 수표를 주고 계십니다!!! 혹시 가족분들이신가요??"
그들은 내가 태어나서 본 적도 없는 파란색 100만원짜리 수표를 들고 용돈이라고 주고 있었다. 우린 완벽하게 졌다. 우리는 선물로도 졌고 용돈으로도 졌다. 그들의 진심 어린 의리를 알량한 핏줄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남은 돌잔치 코너 내내 우리는 알수없는 수치심과 패배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아기는 병치레 한번 없이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여섯살이 되었다. 그렇게만 자랐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어느날 조카는 누구도 사준 적 없는 사탕을 양손에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도련님은 갑자기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 너 이거 어디서 났어?"
- 3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