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련님, 황달식 -2-

2편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

by Lina

문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다.


어느날 갑자기 남편의 통장에서 현금이 인출되지 않았다. 월급도 받아서 잔액이 충분히 있었는데 말이다. 처음엔 사용하던 은행 어플 전산 오류일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얼마 후, 자동이체로 걸어둔 카드값과 대출이자가 빠져나가지 않자 그때서야 남편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W은행 뿐 아니라 K, S은행 등 조금이라도 잔고가 있는 은행에선 인출금지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분노에 찬 남편은 도련님에게 전화를 걸어 조지기 시작했다. 이런 사고를 칠 사람은 집안에 도련님 뿐이었다.


당시 도련님은 집을 나가 '형님들'과 강남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주로 술집 여자들을 대상으로 자택에서 미용실과 업소까지 유사콜택시를 운전해주는 일을 했다.

출동할 때 외에도 잡다한 심부름을 해줄때마다 무조건 만원씩 받았다. 스타킹을 사다주거나 담배를 사다 주거나 동사무소에서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주는 등 모든 심부름이 다 만원이었다.


운행량이 은근 많았다. 그 여자들은 아무 차나 타지 않았다. 처음에 콜을 받고 온 도련님의 아담한 차를 보고 욕을 하며 꺼지라고 했다.

최소 에쿠스 급은 되어야 한다고 하여 무리해서 중고로 에쿠스를 샀다. 고급 차라 그런지 기름을 너무 많이 먹었다. 차 값을 갚기 위해 가짜 휘발유를 넣으며 운전했다. 빨리 운행하기 위해 배달 알바를 할 때처럼 신호를 기다리지 않았다. 다른 차들은 빵빵거리고 난리가 났다.


그 다음엔 형님들이 운영하는 사채에서, 고객이 빚 대신 차압당한 차를 운전했다. 사설도박장에서 운영하는 사채였기에 차압당한 차들은 하나같이 고급 외제차였다. 어차피 자신의 차도 아니었기에 가짜 휘발유를 넣으며 계속 운행했다.

차 급이 좋아지자 콜 지명도 늘어났다. 처음엔 룸에서 일하던 여자들만 지명하다가 점차 지명하는 손님 급이 텐프로로 높아지고, 나중엔 얼굴을 알 만한 B급 연예인들도 도련님을 지명하기 시작했다.


운행량이 많았으나 벌이는 순탄치 않았다. 지속적으로 자신을 챙겨주는 형님들께 감사의 의미로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자신이 거느린 동생들에게도 수고의 의미로 돈을 쥐어줘야 했다. 그것이 조직의 의리였다. 어떤 날은 배가 너무 고픈데 먹을게 없어 칼로리가 높고 양이 많은 대신 가격이 저렴한 약과를 사다가 밥 대신 먹었다. 영양가는 좋지 않았지만 굶주린 배는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던 와중에 세상에서 제일 착한 남편이 도련님한테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도련님은 당황했다.


"형, 이번엔 진짜 나 아니야!"


아버지와 살림을 합치기 전, 도련님은 남편의 명의를 빌려달라 했다. 사업을 해야 하는데 돈을 구할 곳이 없어서 잠시 사채를 쓰겠다고 했다. 이미 도련님 명의로는 알량한 한도액을 다 채워 더이상 쓸 수가 없었다. 어차피 사채업자는 다 도련님의 형님들 아니면 친구들이었다.


남편은 급하다는 도련님의 보챔에 한참 망설이다가 하나뿐인 가족이니, 하며 명의를 빌려주었다. 가엾게도 당시 남편은 결혼 전이라 잘못된 판단을 지적해줄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명의를 빌려준 값을 톡톡히 치뤄야 했다. 한 번 사채에서 돈을 빌리니 신용등급이 추락했다. 학생 신분이라 추락한 신용등급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도련님의 사업벌이는 시원치 않아 몇번 이자를 밀린 적도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도련님을 닦달했다. 딱따구리처럼 자신을 쪼는 남편 때문에 도련님은 어찌어찌 사채빚을 다 갚았고 남편은 다신 자신의 명의를 빌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꽤 여러 차례 남편이 각종 아르바이트와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서 소중히 모아온 돈을 도련님이 빌려간 적이 있었다. 도련님은 돈냄새를 귀신같이 맡았다. 적금이 만기될 쯤만 되면 찾아와서 손을 벌렸다. 도저히 빌려주지 않을 수 없는 갖가지 이유에 마음 약하고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남편은 고민고민하다가 매번 돈을 건넸다. 그 돈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의 통장은 도련님과 거의 매 순간을 공유하는 와이파이나 다름 없었다. 아니면 언제나 꺼내쓸 수 있는 ATM기기와도 같았다. 아버지의 암 치료 과정에서 빚이 점점 늘어나자 드디어 남편은 도련님에게 돈 빌려주는 것을 중지했다.


어쨌든 이런 과거가 있어서, 도련님이 이미 자신의 명의를 알고 있으니 분명 뭔 꿍꿍이를 꾸민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련님은 한없이 억울해하며 정말 자신의 짓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 그럼 내가 알아볼게. 남편은 은행으로 달려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했다. 여러 명의 담당자를 걸쳐 알아낸 사실은, 채무 승계를 갚지 못해 통장이 차압당한 거라고 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혼란스러운 와중에 웬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기는 땡땡캐쉬인데 고객님의 출을 어서 갚으란다. 돈을 빌린적이 없던 남편은 보이스 피싱인줄 알고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땡땡캐쉬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원금이 200만원인데 이자가 500만원이 나와서 총 700만원을 갚으라 했다.


아버지가 왜 사채를 쓰셨지?


도련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자 팔짝팔짝 뛰었다. 역시 도련님은 어둠의 세계를 잘 알고 계셨다.

아버지가 사채를 쓴게 아니었다. 생활비가 없던 아버지는 S은행에서 돈을 대출받았는데, 대출명의자인 아버지가 사망하자 돈을 받을 길이 없는 은행에서 대부업체에게 그 빚을 판 것이었다.

고인에게 대기업 종사자인 아들이 있는 것을 확인한 대부업체는 흔쾌히 부채를 구매했다. 아버지가 대출받은 원금은 200만원도 아니고 100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었다.

은행에서는 대부업체에게 100만원이 조금 안되는 그 대출을 50만원에 팔았다. 대부업체에서는 50만원을 700만원으로 부풀렸다. 그리고 700만원을 고인의 두 아들에게 350만원씩 저당을 잡았다. 다만 도련님은 통장을 사용하지 않아서 저당이 잡힌 줄 모르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도련님의 말을 듣던 남편은 독촉장 비스무리한 등기가 계속 배달 왔던 것이 생각났다. 등기가 올 일이 없었던 남편은 당연히 달식이가 사고를 쳐서 온 등기라고 생각했고, 뜯어보지도 않았다.

어쨌든 합리적인 남편은 당장 350만원을 갚을 길을 떠올렸다. 일단 인사팀을 찾아가 퇴직금의 일부라도 가불하거나, 사내대출을 받을 생각이었다.

도련님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도련님은 길길이 날뛰었다.


" 이 시발새끼들, 내가 누군데 감히 이따위 작업을 덮어씌워?"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번호를 받은 도련님은 즉시 대부업자에게 전화해서 온갖 쌍욕을 시전했다. 처음에는 대부업자도 어처구니 없어했지만 도련님은 집요했다. 사채를 운영하는 친구들을 풀어 어느 대부업자인지 조사에 들어갔다. 매일매일 두통씩 전화를 해서 욕을 욕을 하며 협박했다. 너 어떤 새끼냐 공덕파 새끼냐, 니 위에 모시고 있는 형님이 누구냐, 지금 내가 가서 니 배를 칼로 쑤시겠다, 니 조직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다 등등. 온갖 공갈과 협박에 시달리던 대부업자는 일주일만에 700만원 중 400만원을 탕감해 주겠다고 손을 들었다. 남편은 크게 만족하여 즉시 돈을 입금하려 했다. 문제는 또 도련님이었다.


"이 개새끼야, 원금이 50만원인데 내가 대가리에 총 맞았다고 300만원을 입금하냐 이 씹새끼야?"


다시 온갖 협박과 욕이 난무하는 통화가 시작되었고 견디지 못한 대부업자는 그만 도련님을 수신차단해 버렸다.

수신차단하자 도련님은 다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똑같이 협박에 들어갔다. 대부업자는 그 번호도 차단했다. 도련님과 같이 생활하는 조직원들의 핸드폰 번호가 하나하나 차단되어 갔다.

협박만 하고 큰 실속은 없었다. 어차피 상대방은 대출을 취소하지 않았다.


도련님은 일상에 큰 지장이 없었다. 돈은 통장에 없었고 원룸 침대밑과 장판 밑에 쌓여 있었다. '나쁜일'로 번 돈이기 때문에 떳떳하게 은행에 맡겨놓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쁜 일로 번 돈이 아니라 정당하게 노동을 지불하고 벌었던 돈이었기에 어떻게든 통장을 사용해야만 했다.

남편이 매일 피가 말라가며 미치려고 하자 이를 딱하게 바라보던 팀장님이 아는 변호사를 선임해 주었다.

학교 동창인데 마침 팀장님의 일을 맡고 있어 별도 의뢰비 없이 같이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변호사는 대강 훑어보더니 사망 후에 즉시 유산 상속 포기를 했었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나버려 이렇게 된 거라며 잘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재판 날짜를 잡고서야 남편은 웃을 수 있었다. 도련님에게 내가 변호사를 선임할테니 넌 그만 하라고 하자 도련님은 또 신이 났다. 형이 알아서 할거야? 역시 형이야. 남편은 왜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날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가 한탄했다.


재판은 간단히 끝났다. 추가 상속포기를 하는 것으로 해서 이자는 물론 원금도 갚지 않아도 되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도련님은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대체 쟤가 왜 저럴까, 남편은 의아했지만 신경쓰고 싶지 않아 내버려두었다. 그때 한 남자를 발견하고 도련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일단 머리카락이 샛노랬으며 몸집이며 인상이며 딱 봐도 일반인 같지는 않아 보였다. 재판이 끝나자마자 도련님은 그 남자에게로 달려갔다.


"저기요. 저기요!!! 저기요!!!!!"


그 남자는 도련님을 발견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패싸움을 일삼던 도련님이 한발 더 빨랐다. 그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도련님은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야, 너지? 니가 내 전화 차단했지?"


신성한 법원에서 일어날 일은 아니었다. 그 남자는 자기도 위에서 시켜서 참석한 것일 뿐이라며 아무것도 모른다고 발뺌했다. 죽여버리겠다고 날뛰는 도련님을 조용히 남편이 잡았다. 그새 남자는 줄행랑을 쳤다.


도련님과 동서는 꽤 오랜 시간 연애를 했다. 남편과의 첫 소개팅 자리에서였다. 가족관계을 묻는 내게 남편은 남동생이 하나 있다고 했다. 아, 동생이랑 친하세요? 남편은 살짝 웃었다. 아니요, 제 동생 무서워요. 살다살다 동생이 무섭다는 소리를 처음 들은 나는 네? 하며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남편은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주절 떠들었다. 제 동생은 곧 결혼할 것 같아요. 여자친구랑 10년 넘게 사귀었거든요. 동생이 무섭다는 말보다 여자친구과 10년 넘게 사귀었다는 말이 더 깊게 각인이 된 나는 아, 굉장히 로맨티스트구나 라고 생각했고 얼굴을 본 적 없는 도련님에겐 긍정적인 사랑꾼 이미지가 박혔다.


물론 도련님을 처음 본 날 그 이미지는 바로 깨졌다.


- 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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