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달식, 올해 마흔인 남편의 남동생이다.
직업은 깡패다. 적어도 내가 봤을 땐.
예전에 남편한테 도련님 깡패지?라고 묻자 펄쩍 뛰며 무우슨 깡패냐고, 절대 깡패가 아니라고 했다.
그럼 뭔데? 하니까 그냥 달식이가 아는 깡패가 많을 뿐이지, 절대 깡패는 아니라고 했다. 어디 가서 그런말 하지마, 라는 당부와 함께.
깡패다. 깡패가 아닌데 대체 누가 불법 사채를 운영한단 말인가.
깡패가 아닌데 동서가 출산했을 때 사람을 찔러서 징역을 산 사람이 왜 안부인사를 하러 오냐고.
왜 갓 출산한 산모 앞에서 전자담배를 피고 왜 도련님이 흔히 티비에 나오는 조폭 드라마마냥 그 전과자에게 무릎을 꿇고 형님, 형님 하냐고.
깡패가 아닌데 어째서 결혼 전 도련님께 인사드릴 때, 무슨일 하시냐고 묻자 씩 웃으며 전 아주 나쁜 일 해요 라고 말하냐고.
깡패가 아닌데 대체 누가 그럴수 있냐고!
도련님, 아니 결혼을 하셨으니 이제 정확한 명칭은 서방님이다. 하지만 흔히 서방이란 호칭은 남편의 동생보단 남편에게 더 어울리는 호칭이니 어른들이 뭐라 하든 말든 도련님이라고 부른다.
동서가 출산한 날, 부랴부랴 병원에 찾아가자 웬 건장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도련님이 평소의 껄렁껄렁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무릎 꿇고 앉아서 넵 넵 하며 그에게 굽신거리고 있었다. 출산한 산모의 남편인데 왜 굽신거리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그 남자는 인상은 험상궂었으나 말투는 착해 보였다. 도련님의 상사 정도로 생각했다. 그는 적당히 농담도 재밌게 하고 재치가 제법 있어서 깔깔 웃으며 시간 보내기 딱 좋았다. 도련님이 그렇게 예의를 차리니 나와 남편도 적당히 예를 갖춰 상대했다.
"형수님, 아까 보신 그 형님 어때요?"
적당히 요기를 할 예정으로 셋이서 차를 타고 갈 때였다. 음, 착해 보이시던데요 라고 답하자 도련님이 낄낄 웃었다.
"그 형님 사람 찔러서 감빵 갔다 온 사람이예요."
도련님과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기가 막혀서 도저히 받아칠 말이 없는 대화. 나랑 방금 전까지 하하호호 대화를 하던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칼로 찔렀다는데 대체 뭐라고 대꾸한단 말인가. 교도소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인들은 가까워질 수 없는 장소 아닌가. 감빵에 간 이유는 다른 조직원과 싸움이 났다나, 영화에서만 볼법한 일이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다니.
같이 뉴스를 보던 도중, 조폭과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그는 굉장히 흥분하곤 한다.
"내가 모셨던 형님이야! 형도 알지? 전에 얼굴 한번 봤잖아! 용길이 형님 말야, 불곰파!"
뭐라 대꾸할 말이 없다. 남편 얼굴을 슥 보니 남편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듯, 글쎄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곤 한다. 나는 태어나서 드라마나 영화 말고 한 사람이 속한 조직을 '-파' 라고 부르는 것을 처음 들었다. 그는 격앙된 어조로 그 형님이 무슨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는지 하나하나 나열하며, 마치 그 사람이 9시 뉴스가 아닌 시사 프로그램에라도 소개된 것 처럼 자랑스러워한다. 정말로 궁금하지 않았다.
이런데도 도련님이 깡패가 아니라고?
친척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이런 식이다. 엄하기로 소문난 남편의 막내 이모는 호칭 하나하나까지 통제하는 사람이다.
도련님은 그런 이모 앞에서 욕을 한다. 한 수 위다. 딱히 본인도 일부러 욕을 하진 않는다. 다만 일상 대화에서 온갖 쌍욕이 나온다.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화법이다. 화가 나지 않고 흥분된 상태도 아니고 그냥 평소에 대화하는 정도인데도 화려한 동물들과 성교와 창녀와 질병을 뜻하는 욕이 나온다. 도련님이 욕을 할 때면 친척들은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저마다 못 들은체 한다.
도련님 나이는 다시 말하지만 올해 마흔이다.
도련님은 연년생으로 어릴적부터 남편과 많이도 치고 박고 싸웠다. 여느 형제들이 그렇듯. 싸울 때마다 아오, 형만 아니었으면 진짜 죽여버렸을 텐데. 형이니까 봐준다 라고 말하는 달식이를 남편은 그저 허세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집에서 학원으로 가는 지름길은 으슥한 골목길을 통과하는 거였다. 골목에서 담배를 피는 머리가 샛노란 양아치들을 본 남편이 조용히 백스텝으로 골목을 빠져나오려 할 때였다.
"엇, 달식이네 형님이다."
양아치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남편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어리둥절해진 남편이 양아치들의 얼굴을 살피자 제법 낯이 익다. 그때서야 어렴풋이 도련님 친구들이라는 기억이 떠오른다.
아니 저것들이 5학년들의 생김새인가? 다들 키가 남편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있고 덩치도 컸다. 고등학생들이라고 해도 믿겠다.
남편은 백스텝 하던 걸음을 멈추고 애써 태연하게 골목을 걸어나왔다. 하지만 묘한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남편은 절대 도련님과 싸우지 않았다고 했다. 시비가 걸어도 내가 형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참으며 도를 닦았다고. 어쨌든 도련님의 실체를 확인했으니, 도련님이 항상 하던 '형이니까 봐준다' 라는 말의 뜻을 확인한 셈이다.
도련님은 진심으로 남편을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배포가 남다른 사람이었다.
여섯살 때, 남편이 심심해하면 곧잘 엉아, 껌 줄까?하며 어디선가 껌을 구해오곤 했다.
여섯살짜리 동생이 무슨 돈으로 껌을 산 건지 일곱살짜리 남편은 깨닫지 못했다. 무슨 수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저 맛있는 껌이 반가울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껌을 받아먹던 어느날이었다. 아들이 사준적도 없는 껌을 매일 씹고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대체 껌이 어디서 났냐고 채근했다.
본능적으로 잘못된 일이란 걸 깨달은 남편은 재빨리 발뺌했다.
난 몰라, 식이가 줬어! 정말 치사한 남편이다. 어머니는 도련님을 달달 볶기 시작했고 결국 도련님은 동네 슈퍼에서 껌을 집어왔다고 고백했다. 물론 돈 없이.
이런 일이 처음이었던 어머니는 슈퍼에 찾아가 사과부터 할지, 애부터 혼내야 할지 황망해하던 무렵 도련님의 한마디에 정신을 차렸다.
"저기 항아리에도 내가 좀 모아놨어."
도련님 손을 잡고 옥상에 올라가 무릎까지 오는 된장독 항아리를 열어본 어머니는 그만 주저앉았다. 그 큰 항아리 가득 온통 껌이었다.
그 길로 애를 붙잡아 슈퍼에 가서 항아리의 껌을 모두 돌려주고 피해액을 변상했다. 도련님은 회초리 맞은 종아리가 하도 부어 한동안 제대로 걸어다니지 못했다.
고작 그런 체벌 따위로 도련님의 도벽을 고쳐놓을 수는 없었다. 우리 도련님이 어떤 도련님인가.
중학교 1학년 때 도련님은 가족 누구도 사준적 없는 명품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명품 청바지는 한두벌이 아니었다. 매일 새로운 바지가 나타났다. 한벌당 당시 돈으로 이십만원쯤 하던 비싼 옷들이었다.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산 거라고 하나 글쎄...수상하게도 바지 사이즈가 하나같이 맞지 않았다. 허리가 너무 많이 남거나 길이가 너무 길거나. 맞지도 않는 허리춤을 벨트로 바싹 조여 입고 다니던 도련님을 눈여겨보던 어머니가 마침내 다그쳤다.
온갖 공갈과 협박이 오간 후 마침내 청바지의 출처가 밝혀졌다. 당시 남편네는 주택가에 살고 있었는데 다른집 옥상에 널어놓은 명품 청바지를 계속 훔쳐와서 입었던 것이다. 계단만 올라가면 누구나 훔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기가 막혔다. 이 어린놈의 자식이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런단 말인가. 어느집 누구것인지도 분간이 어려워서 한 집 한 집 돌려주는 대신 가위로 바지를 모두 잘라 버렸다. 한번만 더 이런 짓을 하면 그땐 네 목숨도 같이 잘라버리겠다고 으름장도 놓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도련님의 기막힌 절도는 온 동네 명품 청바지를 한 벌씩 다 훔치고서야 끝이 났다. 점차 동네에는 비싼 옷을 방 안에서 말리는 유행이 돌았고, 자연스럽게 훔칠 곳 또한 사라졌다.
아버지가 도박으로 마지막 남은 세번째 집을 날려먹었을 때 부모님이 마침내 이혼을 했다. 좀더 일찍 결정하셨다면 집 한채는 챙겼을 것을. 그다지 부족하지 않았던 살림은 연이은 아버지의 도박으로 어려워졌고, 모든 집을 날렸을 땐 그나마 남은 재산조차 없었다.
도련님은 공부보다 돈 버는 길을 택했다. 인문계 가느니 실업계에 가서 일찌감치 살림에 보탬이 되겠다는 기특한 결정이었으나, 글쎄. 어쨌든 공부하기 싫은 마음도 반쯤은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일진이었으니. 이미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도련님은 언제나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어둠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물론 진학한 H공고에서도 일진이었고.
어머니가 가장 크게 놀랐을 때는 경찰서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였다. 당시 고2였던 남편과 양파를 다듬고 있을 때였다. 다급하게 울리는 전화에 매운 양파를 썰다 말고 코맹맹이 소리로 여보세요, 받았다. 황달식 군 부모님 되시나요? 여기는 경찰서인데요, 라는 전화에 어머니는 그만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드디어 올 게 왔다 싶었다.
사건은 가벼운 접촉사고였다. 도련님은 남몰래 오토바이를 구해서 신나게 씽씽 타고 다녔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그냥 타고 다닌게 아니라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빤한 집안 사정을 알고 있으니 집에 손을 벌리는 대신 스스로 돈을 모아서 구찌 운동화를 사고 싶었다나.
치킨 배달을 하던 중 빨리 가려고 하다가 정차한 차의 백미러를 쳤다. 문제는 도련님의 무면허였다. 미성년자에 무면허여서 상대방은 경찰에 신고했고,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도착한 어머니는 도련님을 보자마자 등짝을 때렸다.
"이놈새끼야, 내가 너 땜에 살아 생전 처음 경찰서를 온다!"
상대방과 합의하고 집으로 오는 내내 도련님은 들들 볶였다. 그래도 능글능글 넘어가는 게 도련님의 특기이니. 어머니는 절대 오토바이를 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누군가 말했던가, 사고 나서 더이상 탈 수 없게 되기 전까지 타는게 바로 오토바이다.
그 다음엔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황달식 군 부모님 되시나요, 여긴 S동 병원인데요. 아드님이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어요. 어머니는 또 눈앞이 캄캄해졌다. 울먹이며 저희 애는 어떤가요, 많이 다쳤나요? 도련님 상태를 묻는 어머니에게 비수같은 한마디가 박혔다.
"저희도 확인이 안되어서요. 옷을 잘라서 얼마나 다쳤는지 봐야 하는데 황달식 군이 비싼 옷이라고 자르지 못하게 해서요."
눈물이 싹 들어간 어머니는 소리를 꽥 질렀다.
"옷 자르는 김에 그놈 새끼 모가지도 같이 잘라버려요!"
도련님은 응급실에 누워 비싼 옷이 망가졌다며 짜증을 내다가 어머니한테 또 맞았다. 이번엔 피자배달을 하다가 사고가 났단다. 아르바이트 비를 모아 루이비통 백팩을 사고 싶었다나. 빨리 배달하고자 당연히 신호를 무시했고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와 부딪혔다. 다행히 상대방 운전자가 속도를 급히 줄여 세게 부딪힌 건 아니지만 합의와 변상의 길이 남았다. 그 후로 도련님은 두번 다시 오토바이를 타지 못했다. 합의금이 꽤 나와서 어머니의 분노가 오래 갔기 때문이다.
도련님은 평소에 남편을 굉장히 무시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자랑스러워 했다. 남편은 동네의 보잘것 없는 학원 단 한 군데를 다니며 중학생 때부터 줄곧 전교 1등을 했다. 학원에서는 전교 1등이 다니는 학원이라는 홍보를 위해 남편에게 학원비를 면제해 주고,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알고 문제집이라도 살 수 있도록 소정의 장학금도 주었다.
남편은 전교 1등 자리를 한번도 놓치지 않았지만, 수능을 볼 때마다 망했다.
당시는 수시가 유명하지 않던 시기였다. 수시전형이 있었다면 내신으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었겠지만 당시엔 수능에 모든 것이 달려있었다. 남편은 재수까지 해서 간신히 서울의 한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난 그 이유를 제대로 된 사교육을 받지 못해서 라고 결론지었다. 처음에 남편이 줄곧 전교 1등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코웃음을 쳤다. 전교 1등을 했는데 어떻게 그런 대학교에 들어갔담. 남편은 억울해 하며 앨범에 고이 간직해 둔 성적표들을 펼쳐냈다. 성적표를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조작을 의심했고, 도련님한테도 물어봤다. 도련님은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과 목소리로 우리 형, 공부 진짜 잘 했어요! 라고 답했다. 남편이 고등학생 때도 중학생때 다니던 학원 한군데를 계속 다녔다는 말을 듣고 난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일산의 학구열 높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고1때부터 한달에 한 번 전국 모의고사를 치렀다. 고3이 쓰는 층은 맨 윗층으로 정규수업이 끝나고 자율학습이 시작되면 셔터가 내려왔다. 밤 10시까지 셔터는 올라가지 않았다. 고3때는 예체능 과목들은 수업도 하지 않고 국영수 등 주요과목 수업이나 자율학습으로 대체했다.
학교에는 성적순으로 입장 가능한, 시설이 굉장히 좋은 독서실이 두 군데 있었고, 전교생은 그 독서실에 들어가기 위해 학업에 임했다. 독서실에 들어가서도 벌점을 받으면 언제든지 퇴출당할 수 있어 품행 방정에 힘썼다.
수능이 100일로 다가오면 밤 12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밤 10시에 학교에서 나와 10시 반부터 새벽 1시까지 운영하는 학교 근처의 학원으로 갔다. 나같은 경우에는 전과목 과외를 했는데 그런 학생들도 꽤 많았다. 석식시간에 학교에서 나와 과외를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이런 시스템으로 전교생의 70프로가 서울의 대학교에 진학했고, 그 중 30프로는 누구나 이름을 아는 명문대에 진학한다.
이렇게 중요한 고3시절을 남편은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 전교 1등이 재수를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하지만 도련님은 집에서 서포트 없이 대학에 진학한 형을 자랑스러워 했다. 도련님 주변에, 일가 친척을 비롯해서 대학을 간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 이혼했던 아버지를 수소문 끝에 찾았다.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쪽방에 기거하고 있었다. 예전엔 택시기사를 하셨으나 도박에 빠져 택시까지 처분한 후 일정한 수입이 없어 무료급식을 타먹으며 연명하고 있었다. 그 처량한 기색에 맘 약한 남편은 당장 집으로 아버지를 모셔왔다. 마침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생 때도 성실하게 학점 4.5만점에 4.4를 달성하여 국내 한 대기업에 취업이 확정되어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게 사시라는 남편의 바람도 무색하게 아버지는 모셔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후, 암 판정을 받았다. 암은 실로 무서운 병이었다. 완전히 치료가 되지 않았다. 폐에서 시작된 암은 치료가 끝날 때마다 조용히 대장으로, 뇌로 부위를 옮겨가며 다시 재발했다. 계속되는 항암치료를 견디다 못한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남편의 통장에는 거액의 빚만 남아 있었다.
문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다.
- 1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