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에는 인어공주가 산다 -3-

3편 사랑은 자정의 위협이 되어

by Lina


루시는 2살이 된 고양이다. 루시가 새끼일 때 누군가 고양이 커뮤니티에 무료로 데려갈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사갈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한다는 게 이유였다.

루시는 러시안블루로 품종묘였다. 대개 품종묘 무료분양은 업자들이 데려가 더러운 철장에 가둔 채 주기적으로 발정제를 주사하고 죽을 때까지 새끼를 낳게 한다.

끊임없이 새끼를 빼서 애견샵에 팔고 더이상 새끼를 낳지 못하게 되면 건강원에 처분한다.

아직도 고양이가 관절염에 좋다는 사실을 믿는 멍청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새끼고양이를 그런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 대전까지 달려가서 루시를 받아왔다. 루시는 건강했고 통통했다. 퇴근하면 제일 먼저 네 발로 통통거리며 내게 달려오던 그였다. 꼬리를 물음표 모양으로 한껏 올린 채 내 다리에 그 작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몸을 비비며 냐앙, 너무도 귀여운 소리로 애교부리던 그였다.

잘땐 항상 내 곁에서 가슴에 꾹꾹이를 하며 잤다. 나를 엄마로 여기고 있었다. 난 출산한 기억도 없으면서 루시에게 큰 모성애를 느꼈다.

간식을 먹고 싶을 땐 빈 그릇을 솜같은 통통한 앞발로 팡팡 쳤다. 출근준비를 해야 할 아침 6시마다 내 얼굴을 핥으며 깨웠다. 루시의 큰 동공과 초록이면서도 슬쩍 다갈색이 감도는 눈을 난 참 좋아했다. 루시는 아주 영리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엄마는 항상 모기장까지 모두 열고 집안 청소를 한다. 모기장을 열면 고양이가 창 밖으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절대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만, 엄마는 방 안 가득한 고양이털을 날려보내려면 모기장을 여는 게 최고라고 믿었다. 언제나 언성을 높이며 싸웠지만 엄마의 청소방식은 확고했다.


어느날 퇴근하고 돌아오니 루시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자고 있나 싶어서 내버려 두었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루시가 보이지 않아 아파트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식구들이 현관문을 열고 오갈 때 문틈으로 빠져 나간건가, 했다. 고양이들은 대개 계단을 타고 높은 곳으로 간다 하여 핸드폰 후레시를 켜고 옥상까지 계단을 여러번 오르내렸다. 루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참을 찾아 다닌 끝에 루시는 1층 화단에서 입가에 피를 질질 흘린 채 발견되었다. 주먹만한 배변을 한 채 마지막 순간에 깽 하고 울기라도 한 건지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뜬 눈에는 파리 대여섯 마리가 앉아 알을 낳고 있었고 이미 온 몸에 구더기가 조금씩 꿈틀대고 있었다.

리 집은 15층이었다.


난 내 몸 속 성대와 장기를 모두 토해낼 것처럼 울부짖었다. 눈을 뜨기만 하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엄마 얼굴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 날부터 엄마와의 모든 대화를 단절했다. 지금까지도 엄마와는 연락하고 있지 않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뭘 먹을 수도 걸을 수도 없어서 회사에 삼일간 연차를 냈다. 팀장님은 이해할 수 없단 반응이었으나 회사 규정상 연차 목적에 대해 왈가왈부할 순 없었다. 장례를 치르고 유골함을 받아 루시가 제일 좋아했던 캣타워 꼭대기에 두었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 루시가 사랑스럽게 애옹거렸다. 꿈에서 깨면 또 다시 루시가 없는 현실이 믿기지가 않아 목을 놓아 울었다.

결국 탈진한 나를 아빠가 응급실로 데려가 수액을 맞혔다. 그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살고 싶지도 않은 채 루시에게 내 수명을 나눠주고 싶었다. 살아있는 것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가족들은 내가 자살이라도 할 까봐 돌아가며 내 방에서 잠을 잤다. 그 와중에 엄마는 절대 내 방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다.


오랫동안 루시를 잊지 못해 방황했다.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덤덤해지듯, 점차 루시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새로운 고양이들을 데려오면서 그때의 아픔도 옅어졌다. 옅어졌다고 믿었다.


루시가 세상을 떠난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꿈을 꿨다. 온 세상이 캄캄한 어둠이고 나는 어둠 속에 영원히 잠식되는 꿈이다. 눈을 감아도 떠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눈을 감고 귀를 감고 입을 감고 빛이라곤 없는 그 세계에서 천천히 내 몸은 가라앉았다. 없이 계속해서 가라앉기만 했다. 처음엔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 힘이 다 빠지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라앉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다 문득 루시를 떠올리며 잠에서 깨곤 했는데 언제나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짧으면 일주일에서 길면 보름정도 지속되는 꿈이었다.

문득 렇게 꿈을 꾸다 죽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는 악몽을 꾸는게 두려워졌다. 두려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 나중엔 악몽보다도 루시 자체가 두려워졌다. 루시가 악몽을 몰고 오는 듯했다. 자신을 죽게 내버려둔 나를 원망해서가 아닐까. 날 자신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J가 루시를 알고 있지?시는 오래 전에 키운 고양이다. 남편도 본 적 없는. J가 알고 있는 건 루시뿐일까. 어쩌면 세상에 나오지 못한 나의 아이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게 아닐까.

문득문득 J가 해준 인어 이야기가 생각날 때면 베란다에 서서 중랑천을 내려다 보았다. 어쩌면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J의 망상이 아닌 진짜라면.


다시 꼬마 J를 만나기 위해 나는 계속 중랑천으로 나갔다. 시간이 되는 대로 나가서 샅샅이 뒤졌다. 낮과 밤 오전과 오후, 하지만 좀처럼 J는 보이지 않았다. 근처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정문에 서서 등하교 하는 아이들을 살피기도 했다. J가 끝나지 않는 악몽의 열쇠가 되어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J의 얼굴이 서서히 희미해져 갈 무렵이었다.

중랑천에 있는 사각형 모양의 게이트볼 연습장에 앉아 하천을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게이트볼 연습장이지만 온 동네 개들이 목줄을 풀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장소였다.

견주들과 사람들은 게이트볼 연습장에 빙 둘러 앉아 뛰어다니는 개들을 구경했다. 이따금 주인도 아닌 사람에게 달려가 품에 폭 안기는 개들의 귀여운 모습은 덤이었다. 견주들보다 내심 개가 자신에게 오길 바라며 앉아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도 강아지가 내게 다가오길 기대하며 넓은 물그릇에 물을 가득 부어놓았다. 개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목줄 없이 펄쩍펄쩍 뛰어놀며 지들끼리 달리고 잡고 난리가 났다.


하얀 강아지가 헥헥 혀를 내밀고 내게 쫄랑쫄랑 다가왔다.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모습이었다. 강아지는 내 자리에 있는 물을 마시고 무릎에 턱을 기대어 쉬었다. 귀여워서 찬찬히 강아지를 쓰다듬다 낯이 익은 이유를 깨달았다.

비숑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발머리에 텅 빈 공허한 눈동자의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J의 엄마다.


-3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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