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에는 인어공주가 산다 -2-

2편 소중한 것들이 하찮은 이유로 사라질 때

by Lina

"자궁경부 길이가 짧으시네요."


생소한 단어와 생소한 문장이었다. 그래서 무슨 뜻인지 쉽게 알아듣지 못했다.

의사는 노란머리로 탈색하고, 코랄색 립스틱에 짙은 회색의 눈썹을 그렸다. 싸구려 인조 속눈썹을 붙였고 필요 이상의 두꺼운 아이라이너를 그렸다.

의사 가운이 없었다면 도저히 의사로서의 인상을 가지기 힘들었다. 난 그녀의 두꺼운 속눈썹을 바라보았다. 의사는 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잘 캐치했다.


"조산의 위험이 있어요."


아홉 글자가 주는 충격은 대단했다. 무슨 뜻인지 인식하기 전에 이미 눈물이 먼저 흘렀다. 의사는 담담한 표정으로 곽티슈에서 휴지를 두 장 뽑아 내밀었다. 흔히 겪는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일단 질정을 처방해 드릴게요. 주기적으로 경과를 체크해야 하고...오늘부터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마시고 자리에 가만히 누워 계시고...원하시면 입원도 가능하시고..."


반 정도는 들리고 반은 들리지 않았다. 내 뱃속에 있던 사랑스럽고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해줄것 같던 존재가 갑자기 어느 순간 훌쩍 떠날 수 있는 존재로 바뀌었다.

처음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그어지는 것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너무 두근거렸다.

여덟 번의 시도와 일곱 번의 실패 후 만나보는 두 줄. 이번 시도도 실패한다면 인공수정을 생각해 볼 참이었다.


첫 시도때는 도전만 하면 바로 임신이 될 것만 같았다. 남들도 다들 잘 가지니까 말이다.

임신 테스트기는 일반이 있고 얼리가 있었다. 얼리는 일반보다 3,4일 더 먼저 임신을 확인할 수 있는 테스트기였다.

첫 시도때 나는 굉장히 조바심을 내며 얼리 테스트기를 7개 사용했다.

두번째 시도때는 11개 사용했다.


내가 너무 빨리 테스트를 했나? 아직은 한줄로 보이는게 맞겠지. 끝없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그렇게 세번째, 네번째가 흘렀고 마침내 다섯 번째에는 난임병원을 찾아갔다.


여러번의 검사 결과 나도 남편도 정상이었다. 남편의 정자수와 정자활동량은 같은 나이대보다 준수했다. 나의 나팔관은 2개 모두 막힘 없이 뚫려 있었으며 규칙적으로 왼쪽 오른쪽 난소에서 번갈아가며 배란이 되었다. 난소의 나이 또한 내 또래보다 여섯살이나 어렸다.


난임의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병원에서 정확한 배란일 날짜를 받기로 했다. 한달에 한번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진행했다. 그놈의 생리는 제 날짜마다 지치지도 않고 꼬박꼬박 나왔다.


술을 좋아하던 나는 금주를 하고, 남편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출근 전엔 함께 수영을 하고 퇴근 후엔 각자 필라테스, 헬스를 했다. 매일 배달음식을 시켜 먹던 것을 중지했다. 가공식품과 인스턴트 음식을 줄이고 되도록 집에서 요리를 해 먹었다.


그렇게 노력한 의미도 없이 여섯번째, 일곱번째가 지나갔다.


그리고 더이상 얼리 테스트기를 낭비하지 않을 즈음, 이번 여덟번째. 꿈에서 얼굴보다 더 큰 탐스러운 복숭아를 따서 품에 꼭 안고 뛰다가 넘어졌다. 넘어진 후 복숭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저 품에 안았던 커다란 복숭아만 생생히 기억났다.


어쨌든 복숭아는 태몽이고 딸이라고 해서 나와 남편이 한창 설레었을 때였다. 성격이 급한 나는 아기용품을 이것저것 사들였다.

성별확인을 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딸일 것이란 생각에 여자아기 위주의 용품들을 구입했다. 아가옷은 작고, 신발은 무척 귀여웠다. 아기자기한 용품들이 많았다. 젖병소독기와 카시트 등도 샀다. 모두 필요한 것들이었다.


이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차 들린 병원에서 밖의 조산 경고를 받았다.

의사는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휴식에만 임해야 한다고 열심히 날 설득했지만 그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학교 졸업 후 1년간 200개가 넘는 이력서를 내고 겨우 합격한 직장이었다. 이렇게 그만두면 다시 회사를 다닐 수 있는지조차 미지수였다.

어쨌든 육아휴직을 쓰면 쉴 수 있고, 육아휴직은 출산이 임박했을 때 사용하는게 좋다고들 하니까.


20주가 되었는데도 자궁경부 길이가 1.4cm로 짧았다. 밤에는 생리통처럼 통증이 찾아오고 자꾸 배가 뭉쳤다. 유산방지 질정을 계속 넣으며 버텼다. 육아휴직을 미리 쓰는게 좋을까, 회사에서 순순히 허락해줄까,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 때쯤이었다.


출근을 위해 씻던 중 예고없이 찾아온 복통에 욕실바닥에 쓰러졌다. 피가 응어리째로 벌컥벌컥 나왔다. 남편이 날 데리고 정신없이 달려간 병원에선 아이의 심지 판정 받았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지 못한 채 바보같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결국 숭아를 닮았을 아이를 잃었다.

그리고 회사 또한 그만두게 되었다.


"아줌마, 또 왔네요."


반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존댓말도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J였다.

중랑천 징검다리에 앉아 반짝이는 물에 예전의 어리석은 기억을 떠올리며 끊임없는 자기 비하에 젖어들고 있을 때였다.


곱슬머리의 J는 남자애로 보였지만 여자라고 해도 그럴싸해 보였다. 어쨌든 아이들은 외모만으로는 성별을 구분하기 힘든 편이니.

그리고 여전히 마스크를 끼지 않고 있었다. 주위를 보니 전에 보았던 엄마라는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애를 말려줄 보호자도 없겠다, 귀찮아져서 적당히 받아쳤다.


"네 엄마는 어디 계시니?"


"엄마는 오늘 슬퍼서 두부를 산책시킬 기분이 아니예요."


그때 봤던 그 비숑이 두부인가 보다. 강아지는 하루 한 번 이상의 산책이 필수일텐데.


"너가 산책시키면 되지."


"오늘도 레이나를 만났나요?"


"엄마는 왜 슬프시니?"


"레이나의 노랫소리를 따라 불렀나요?"


이렇게 자기 할 말만 하는 대화는 거래처 사장과의 대화 외에 오랜만이었다. 대화를 이어나갈 가치가 없었다. 지친다. 레이나가 대체 뭐였지, 예전에 이 꼬마가 어쩌구 저쩌구 했던 것 같은데.


"너 이름이 뭐니?"


J는 땡글땡글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갈색이 유난히 많이 섞인 눈동자 어딘가쯤이 시려보였다.


"J라고 불러요. "


"좋아 J, 레이나가 뭐지?"


J의 눈에 어딘지 모르게 의기양양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어이 없다거나 놀라거나 실망한 기색이 아니었다. 아주 의기양양한 기색이었다.


"초록색 머리카락의 인어요. 꼬리 끝은 은색인데 햇빛을 받으면 빛나며 살짝 무지개색을 띄기도 하죠. 피부색이 하천의 자갈색이랑 닮아서 물살이 빠를 땐 잘 구분이 되지 않아요.

레이나는 몸 색을 바꿀 순 있지만 머리카락 색을 바꿀순 없으니 머리카락을 자세히 보면 하천과 구분할 수 있어요. 노랫소리가 파도 소리랑 비슷하니 그녀가 혀를 벌릴 때 특히 귀를 기울여야 해요."


"혀를 벌린다고?"


나도 모르게 어처구니없는 J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J는 슬쩍 미소지었다. 미소 지으니 눈꼬리가 말려 올라갔는데, 문득 뱀 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뜻밖에도 동공이 가늘다. 햇빛에 반사된 J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인어는 혀가 여섯개예요. 여섯개를 튤립 모양으로 벌리며 노래하죠."


나도 모르게 징그러워 몸서리를 쳤다. J는 입을 크게 벌리며 공중에 혀를 내밀었다. 새빨갛고 작은 혀는 J와 달리 따로 생명이 있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따라할 수 없어요. 그래도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최대한 따라 부르세요. 그래야 다 녹아 없어지죠."


"뭐가 없어져?"


J는 슬픈 눈빛으로 날 돌아보며 말했다.


"루시에 대한 기억 말이예요."


등에 뜨거운 땀 한줄기가 빠르게 내려가며 심장이 멈추는 기분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


J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는데도 J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마치 중랑천 안으로 가라앉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어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를 잡아당겼다. 마스크를 벗었는데도 호흡은 고르지 못한 채로 끊임없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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