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로비와 밍크스'라는 동화를 썼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제가 보는 앞에서 글을 갈기갈기 찢었지요.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고 학업에 열중하라는 말과 함께 말이예요.
제 나이 고작 11살 때였습니다.
아직도 그 일은 제게 깊은 충격과 상처로 남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여러 동화 이야기를 좋아했어요. 동화는 낭만적이면서도 교훈적이었고, 선과 악의 경계가 뚜렷했지요.
어느날 학교에서 부모님의 장래희망을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 그날 아빠의 장래희망이 '소설가'였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전기 관련 일을 하셨지요.
어떻게 하면 어릴 적 소설가라는 꿈을 가슴 속에 품고서, 현재 글이나 책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당시엔 좋아하는 일만 하고서는 먹고 살 수 없다는 법을 몰랐습니다.
아빠의 영향을 받아 제가 글이나 책을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어쨌든 좋았습니다. 소설가라는 장래희망은 아주 멋있었어요.
엄마의 장래희망은 '좋은 엄마'였습니다.
전 당시에도 엄마야말로 장래희망에 철저히 실패했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자신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제게 곧잘 화풀이를 했습니다. 전 친구나 선생님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 법을 몰랐어요. 엄마는 때때로 손바닥으로 저의 머리를 곧잘 쳤으며 마구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의 가슴을 쿵쿵 치고 이따금 부엌칼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기도 했습니다.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대로 저를 마구 때렸지요.
저는 그럴 때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도록 울며 무서움에 떨었습니다. 엄마의 육아방식은 다른 단어로 학대였어요. 야근이 잦았던 아빠는 엄마의 그런 행동을 몰랐거나 방관했습니다. 자식교육은 오직 엄마에게만 맡겨두었죠.
처음으로 써본 글은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선생님까지 모두 재미있다고 말해줘서 어깨가 으쓱했던 참이었습니다. 동화를 쓰기 시작한 건 아빠의 장래희망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소설가라는 뜻이 뭔지 몰랐던 내게 아빠는 소설이 동화같은 것이라고 설명해주었어요. 저는 소설가라는 꿈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동화는 가장 아끼는 공책에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반듯한 글씨체로 정성들여 쓴 글이었어요. 그리고 제 눈 앞에서 갈기갈기 찢겨 종이조각이 되었지요.
전 책을 보는 것을 정말로 좋아했지만 엄마는 제가 동화책을 붙들고 있는 꼴을 보지 못했습니다. 볼 때마다 책을 집어던지며 제발 문제집을 풀거나 교과서를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전 책을 너무 보고 싶었고, 옷장에 숨어들어가 꼬마전구를 연결해 불을 켜고 책을 읽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반에서 가장 눈이 나쁜 아이가 되었어요.
엄마는 교육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 엄마도 학교에 다니고 싶었으나 외할머니는 엄마가 둘째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엄마를 제외한 다른 형제 자매들은 모두 학교에 다녔어요. 큰오빠와 큰언니는 제일 맏이여서, 막내동생은 막내여서, 다른 이들은 눈이 부르트도록 울고 졸라서 학교에 갔지요.
엄마는 외할머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배우지 못했고, 교육을 받지 못한 한과 서러움은 고스란히 자녀인 제게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제게 집착하며 어떻게든 제 성적을 올리고 싶어했지요. 엄마의 그릇된 판단력은 엄마로서의 삶의 주체성을 잃게 만들었지요. 자신을 모두 버리고 오로지 자식의 성공에만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전 교육을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학교 수업은 지루했고 학원 수업은 무서웠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학원 선생님은 왜 이런것도 모르냐며 화를 냈어요. 화를 내는 모습이 엄마의 분노와 오버랩되어 어린 제게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눈에 띄게 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엄마는 성공의 기준이 고작 학업 성적이었을까요?
제게 집착하기 시작하는 엄마가 두려웠고, 점차 엄마에 대한 감정은 혐오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릴때는 의지할 곳이 없고 혈연이라는 감성에 젖어 엄마가 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다가오자 간신히 지탱해 온 집안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지요.
정말 놀라운 사실은 엄마가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1편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