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단어로 언제나 모든것을 용서받는 그대에게
동생이 태어났어요.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저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 대상으로 동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항상 엄마에게 동생을 만들어 달라고 졸랐죠. 특히 저의 그런 바람을 어른들이 좋아했습니다.
엄마는 동생을 원했을까요, 원하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이미 제게 집착하느라 엄마의 인생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늦둥이 동생이 태어나면서 엄마의 인생은 더욱도 없어졌고, 엄마의 우울증도 커져갔고,
제게 화풀이하는 감정선도 더 커져갔어요.
많은 책에서 동생이 태어나면 질투하지 말고 사랑으로 보듬어주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모님은 나와 내 동생을 똑같이 사랑하지만 동생이 아직 아가라서 더 신경을 써 줄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들이요.
저는 충분히 내용을 이해했고, 부모님이 동생을 예뻐해도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제가 모자라다고 했습니다. 바보 천치라고, 멍청이라고 했습니다. 동생에게 질투도 못 느끼는 어딘가 모자란 아이라고 했어요.
저는 수많은 책을 많이 읽고 거기에서 하라는 대로 한 죄밖에 없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서러웠어요.
일부러 동생을 질투하는 척 연기했습니다. 그때서야 엄마는 만족했어요.
저보다 더 배우지 못한 엄마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엄마는 인성적으로 부족한 면이 많았고, 그런 엄마에게 양육을 당한 과거의 제가 정말로 가엾습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인성적으로 결핍되었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초등학생때 왕따를 당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바로 집으로 향했어요.
엄마가 내준 문제집들을 어서 풀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그런 저를 엄마에게 잡혀 산다며 답답한 사람 취급했습니다.
따돌림 당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어요. 주위에 내 편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속상한 일이었습니다.
엄마에게 용기내어 고백했어요.
엄마가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위로해 주길 바랐습니다.
엄마는 화를 내며 따돌림을 당하다니 바보같은 아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돌림의 원인은 결국 엄마에게 있었는데 말입니다. 엄마는 영리하지 못한 아이를 가진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습니다. 당장 내일 학교에 가면 친구들을 사귀어서 집에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전까진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정말로 세상엔 제 편이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아파트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한참동안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여기서 뛰어내려서 엄마를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엄마가 제게 어떤 상처를 준건지 직접 깨닫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그만두었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간 저는 오랫동안 집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나를 따돌린 그 모든 아이들을 용서합니다. 철 없을 때의 행동이니까요.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건 당시의 엄마일 뿐입니다. 엄마는 당시 어른이었으니까요.
왜 당신이 항상 엄마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언제나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엄마는 왜 그럴수밖에 없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