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에는 인어공주가 산다 -4-

상처입은 자들의 그림자

by Lina

"안녕하세요, 저는 J의 친구인데요."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 내뱉은 말이었다. 나를 J의 친구라고 하는게 맞는지, 언니 혹은 누나라고 하는게 맞는지, 아는 이모라고 하는게 맞는지조차 혼란스러웠다. 녀의 얼굴 가득한 우울감은 보는 사람마저 마음이 외로워지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한참 말이 없었다. 비숑은 낑낑거리며 그녀의 다리에 매달렸다.


중랑천엔 노을이 깊게 지고 있었다. 먼 하늘에서부터 서서히 붉게 물들어 파란색과 코랄색과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신비로운 이 순간의 색을 난 너무도 좋아한다. 그것은 누가 감히 그릴수도 없는 색이었다. 하늘의 노을이 중랑천에 그대로 반사되어 온 하천이 그야말로 붉은빛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노을이 드리우며 깊은 공허감이 가미됐다.


"J가 요즘 안 보여서요. 제가 물어볼 게 좀 있어서..."


그녀의 눈이 점차 붉어진다 싶더니 서서히 눈물이 고였다. 나는 내가 못할 말을 꺼냈나 싶었다. 마음속 깊이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영업생활로 단련된 감이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우리 J와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J가 인어 이야기를 해주고, 제 고양이 얘기도 해주고..."


난 당황스러운 마음이 앞서 횡설수설했다. 처음 봤을 때 네 아이가 느닷없이 내 거짓말에 호응을 해주었다. 나는 당시 너무 화가 났다. 인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주절주절 떠드는 걸 보고 미친놈인줄 알았다. 근데 네 아이가 예전에 죽은 우리집 고양이 이야기를 알고 있더라. 이런 소리를 그녀에게 말할수는 없었다.


여자는 주저앉으며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숑이 두발로 서서 여자의 어깨에 매달려 열심히 얼굴을 핥았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우는 그녀와 나를 힐끔거렸다.

정말로 도망치고 싶었다.

주섬주섬 눈치를 보며 일어나려 할 때, 여자가 울음 반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J, 3년 전에 죽었어요."


이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 것은 바로 나였다.


J를 만난 건 최근이었으니. 그럼 내가 유령이라도 보았단 말인가. 그럴리가 없었다. 난 분명 징검다리 위에서 J를 밀쳤다. 밀쳐졌을 때 내 손에 닿은 촉감은 분명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신 같은게 아니었다. 그와 대화할 때 내 귀에 들리던 J의 목소리도 분명 생동감 있었다.


하지만.


J는 처음 듣는 인어 이야기를 실감나게 했다. 어린아이의 공상 정도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믿을 법하게 구체적으로 묘사했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떠들었다. J는 루시를 알고 있었다.

J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나의 불행을 궤뚫어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도 같이 울고 싶어졌다. 여자는 어엉, 소리를 내며 깊은 통곡으로 울었다.

J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졌다. 물어볼 게 많은데, 확인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나의 꼬마 J.

멀리서 풀벌레가 길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J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는데 그녀는 울음을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어미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실례라고 생각했다.

뱃속의 아이를 잃었을 때, 주위 사람들 모두가 내게 몇 번이나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 질문 자체가 굉장히 무례할 뿐더러 듣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상처가 될 것이란 것을 모른다는 듯이.


그들의 갈증난 궁금증만 채우려고 하는 극한의 이기심에 너무도 질렸다. 그들은 나의 불행에 공감해 주는 척 하며 나의 상처를 들쑤시고 본인의 만족을 채우려고 한다. 그들은 싸구려 감정으로 시도 때도 없이 괜찮아? 라며 감히 나를 동정했다. 내가 괜찮은 척 행동하면 행동할수록 그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대하며 내가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거나 쓰러질 사람처럼 굴었다.


나의 아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고작 자궁경부 길이가 짧다는 이유로 내게 힘들게 다가온 아이가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것인지 나야말로 의문스러웠고, 나야말로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연락도 끊고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녀에게 자식을 잃은 슬픔을 나 또한 공감한다고, 나도 경험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슬픔이 감히 나의 슬픔과도 비슷하다고 믿는 또 하나의 무례한 생각이었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의 곁을 슬쩍 떠나줄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녀에게 물어볼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득 안고 징검다리에 막 앉았을 때였다.


징검다리에 부딪히는 물살 소리가 더없이 거세지고 있었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점점 소리가 한층 더 커지면서 사방에 울려퍼졌다.

새 소리나 풀벌레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마치 장마철, 윗쪽으로부터 갑자기 많은 물이 넘쳐 밀려 내려올 때 처럼 폭포 근처에 있기라도 한 듯.


물살 소리는 점점 커져 내 주위의 모든 것을 삼키는 듯 했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도 물소리에 갇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분명 주위에 사람들이 있을 텐데 물살소리가 나를 사람들에게서 에워싸 또 하나의 시끄러운 고요속으로 이끄는 듯 했다.


중랑천을 내려다 본 나는 평소와 같이 잔잔한 물살에 어리둥절했다. 물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커지고 있었다. 오늘 겪은 당황스러운 일 때문에 내 심신이 많이 지쳐있는 게 아닐까 싶어 심호흡을 했다.

심신이 지쳐서 느껴야 하는 소리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할까봐 겁이 난 나는 자세를 편하게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내쉬었다.

음악으로 기분전환을 하러 핸드폰을 막 꺼냈을 때였다.


물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움직임을 인지한 순간 정수리 쪽에서 아주 차가운 또는 아주 뜨거운 무엇인가가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깨부터 팔, 손 끝과 다리 순으로 소름이 돋았다.

설마 하는 생각에 손이 떨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손전등을 켜서 중랑천을 비춰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내 몸 상태가 좋지 않구나, 하며 가볍게 웃었다. 어쩌면 나는 지금 깊고 깊은 꿈 속에 있는 건지도 몰랐다. 현실과 공상이 구분되지 않는 그 세계에 잠식되어 있는 것일수도 있었다. J가 나의 망상일 수도 있었다.

그 때 철썩 소리와 함께 핸드폰이 하천으로 떨어질 뻔 했다. 급히 핸드폰을 다잡으며 무심코 중랑천을 내려다 본 나는 그만 숨이 멎는 듯했다.


어둠이 막 드리우기 시작한 하천 그 아래에서.

은빛의 비늘이 달린 거대한 꼬리가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4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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