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련님, 황달식 -9-
새로운 출발은 험난했으나
"나, 식당 차려볼까봐."
도련님의 말에 동서는 반색을 표했다.
"그럼 하던 일은 그만 두는거야?"
지금까지의 일은 완전히 접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사업을 하려고 보니 마땅히 맘에 드는 사업이 없었다. 동서는 식당보다는 카페를 차리고 싶어했다. 도련님은 맘에 들지 않았다.
"하나에 3,4천원짜리 커피 팔아서 뭘 얼마나 번다고!"
많이 번다. 하지만 도련님은 앉아서 아기자기하게 하는 카페보다는 통커보이는 식당으로 하고 싶어했다.
도련님이 바락바락 우겨서 동서의 카페 대신 오리고기 집을 하기로 했다. 진흙에 통구이를 한 오리였다. 요즘은 외식보다 배달이 대세인데 사람들이 그런걸 사먹으려나?쌩뚱맞은 메뉴에 염려가 되었지만 일단 축하해주었다.
가게 오픈날, 화환과 큰 화분을 배달시키고 우리도 방문했다. 식당에 간 나와 남편은 어리둥절했다. 도저히 식당이 있을 만한 목이 아니었다. 이래서 장사가 되려나? 음식은 맛이 있긴 했다. 고기살도 야들야들하고 안에 들어있는 찰밥과 견과류들이 고소했다. 문제는 음식 맛이 아니었다.
주변에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방이 공터였다. 왜 이런 곳에 식당을 차렸냐고 묻자 권리금이 쌌다고 했다.
고작 이런 자리에 권리금까지 줬다고?
아무리 봐도 사기를 당한 것 같았다.
경영학 공부를 한 적 없는 도련님은 상권분석과 타겟고객층, 예상매출 및 비용 분석도 없이 개업을 강행했다.
이것은 등에 기름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다. 곧 망하겠구나 하는 마음에 아찔한 염려감이 들었으나 굳이 이야기하진 않았다. 개업날 초 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장사가 꽤 되었다. 사방이 공터였지만 은근 동네 주민들이 못보던 식당이 있다며 발걸음해 주었다.
이따금 알던 형님들과 동생들도 오다가다 한번씩은 방문해 주었다. 그들은 의리있게 한번 올 때마다 식당을 통째로 살 것처럼 주문했다.
사설도박장에서 같이 도박을 하던 지인들도 한번씩 방문하였다.
인생이 이렇게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겨울철마다 유행하는 조류독감이 불어닥쳤다. 결국 도련님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폐업했다.
이번엔 삼겹살집을 해 보겠다고 나섰다. 이번에도 상권분석이나 타겟층 분석 없이 되는대로 식당을 오픈했다. 우린 또 염려했고 생각보다 장사가 그럭저럭 되는 듯 싶었으나 이번에는 돼지열병이 몰아닥쳤다.
이쯤되면 남은 돈도 없고 사업운이 없는것 같았지만 도련님은 씩씩했다. 이번엔 치킨집을 하겠다고 나섰다. 더이상 강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치킨집을 어디에 차릴건지, 그 동네에 치킨집이 몇 군데인지, 프랜차이즈를 한다면 본사와 수익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하루에 몇 마리를 팔아야 본전인 건지, 권리금은 얼마나 줄수 있는지, 배달비는 얼마로 책정되는지, 조류독감으로 오리집을 접었는데 겨울철에 또 유행하게 된다면 치킨집은 어떻게 버틸건지 등등 묻자 도련님은 머리 아파했다.
뭘 그까짓 장사를 하는데 고민할게 그렇게도 많냐 했다. 모두가 그렇게 따지고 고민해서 시작하고 그 중 70프로가 망한다고 하자 도련님은 한풀 꺾였다. 동서가 나섰다.
"나, 이번엔 진짜 카페 한번 해보고 싶은데..."
도련님만 빼고 모두가 찬성했다. 동서는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었고 제과제빵 기능사도 있었다. 손재주가 좋아 머핀이나 타르트, 케이크 등을 곧잘 만들었다.
커피 원두를 어디서 떼어올지부터 커피머신 렌탈과 사이드메뉴를 어떤걸로 운영할지 등등 동서는 계획이 다 있었다.
듣고 있던 우리는 입을 떡 벌렸다. 그렇게 계획이 있는데 왜 지금까지 안했냐고 하자 도련님의 반대가 심해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도련님은 못마땅해하며 마지못해 허락했다. 나와 남편이 없었다면 치킨집을 강행했을 것이다. 치킨은 진짜 아니라며 이구동성으로 말리고 카페를 밀어줬다.
동서가 오며가며 봐둔 장소에 카페를 개업했다. 마지막 남은 재산이었다. 카페가 꼴보기 싫었던 도련님은 이번에도 망하면 온 가족이 서울역에 나앉아야 한다는 둥 헛소리를 했지만 동서는 듣는척 만척 했다.
처음엔 파리만 날려 도련님의 온갖 잔소리를 들었으나 워낙 사람이 밝고 싹싹했던 동서는 제법 사업수완이 좋았다. 점차 단골고객이 늘어나고 아줌마들의 입소문이 나면서 카페는 번창했다. 주변에 스타벅스나 파스쿠찌등의 커피숍이 있었지만 동서네 카페는 이상하게도 맘이 편하고 안락했다.
직접 만든 케이크는 퀄리티가 높았고 케이크만을 따로 포장해가는 손님들도 꽤 있었다. 이 집 빵을 먹으면 그렇게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된다며 생겨나는 단골들도 있었다. 한 파워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인테리어도 좋고 커피 뿐 아니라 디저트 맛집이라고 소개하면서 손님들은 미친듯이 불어났다. 순식간에 동네 핫플레이스가 된 동서네 카페는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밀려닥치는 손님들과 기존에 있었던 단골들로 북적거렸다.
체인점 문의가 들어오자 드디어 도련님은 자신이 틀리고 동서가 맞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동서는 집안의 주도권을 완벽히 장악했다.
-9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