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련님, 황달식 -8-
모든 것은 팔자소관대로
위례에 사주를 기가 막히게 잘 보는 유명한 보살님이 계시다고 했다. 이름은 황지혜, 관상도 볼 수 있고 신기도 있는데 신내림을 받지는 않았다, 했다.
독학으로 명리학 공부를 심도있게 오래하여 족집게마냥 속속들이 팔자를 맞춘다고 했다.
어찌나 잘 맞추는지 전국에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다.
예약 안하고 찾아가면 보지도 못해, 라며 동서는 어쩐지 의기양양해 보였다.
여기까지만 듣고 도련님은 눈을 있는대로 치켜떴다. 이미 아이에게도 손을 댔겠다, 이제 아내를 때릴 차례인가 싶었다.
동서는 들어봐, 하고 만류했다. 이름도 없이 생년월시만 알려주면 팔자를 줄줄 읊는다고 했다. 자신도 처음엔 반신반의 했지만 보고 오니 확실하다고 했다.
"이놈의 여편네가 집구석에서 대체 뭘하고 다니는거야!"
도련님은 크게 분노했다. 운명같은 것을 믿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의 오늘의 운세를 보긴 하지만 믿는건 아니다. 타고난 팔자라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팔자, 운명, 다 미신이고 정신이 나약한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다. 운명은 스스로가 개척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 동서의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도련님에게 동서의 다음 말은 더 가관이었다.
"우리 서준이가 아빠를 닮아서 평생 형무소 담장 위를 걸어다닐 팔자래. 그러다 까딱하면 형무소 안으로 영영 떨어지는 거래. 돈과 여자한테 미치고 평생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외롭고 고독한 팔자라고 하네. 팔자는 부모한테 물려받는 거고 반복되는 거래. 지금이라도 아빠가 직업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대! 여보, 당장 사채 때려치고 가게라도 하나 차려!"
여섯살밖에 되지 않은 애한테 무슨 형무소고 돈과 여자를 갖다 댄단 말인가.
감히 우리 금쪽같은 아이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저주를 퍼붓다니. 형무소 담장을 걸어다닐 팔자라니!!
"지혜 이 개같은 년을 찢어죽일거야!"
도련님은 진짜 살아 생전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한걸음에 위례로 달려갔다. 고등학생 때 했던 피자 배달 이후 실로 오랜만에 모든 신호를 위반하며 달렸다. 차가 앞에서 달려오든 옆에서 달려오든 개의치 않았다. 잡히기만 하면 이 처죽일 년을 내 몸소 끝장내겠다 생각하며 분노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도착하자마자 문을 발로 쾅 차고 들어간 도련님은 이미 와있던 다른 손님의 뒷덜미를 잡고 밖으로 집어 던졌다.
"감히 이게 무슨 짓이야!!!!!"
벼락과도 같은 호통이 내리쳤다. 보살은 생각보다 굉장히 젊고, 화려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아니, 사실 아주 예쁘게 생긴 편이었다. 나이도 고작 20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세는 대단했다. 보살은 총기 넘치는 눈빛으로 매섭게 도련님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온 몸에서 살기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기세가 누그러졌을 법한 그야말로 대단한 기백이었다.
"니년이 감히 내 아들을 농락해?"
만만치 않은 도련님이었기에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보살의 눈 깊은 곳에 파란 불꽃이 팍 피어올랐다. 그녀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손에 든 부채를 촥 소리를 내며 펼쳤다.
"미련하고 한심하도다. 하늘까지 쌓아올린 네 업보가 자식 앞길을 막는구나!"
보살은 서슬이 퍼런 목소리로 연이어 호통을 쳤다.
"네 손으로 널 낳아준 어머니 목숨까지 끊어먹고 이젠 자식까지 망치려고 애를 쓰는구나!"
순간 도련님은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심장이 멎으며 동시에 전신을 돌던 피가 멈추는 기분이었다.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쭉 내려가며 얼굴과 두 손 두 발이 차례로 하얗게 질렸다. 머리카락까지 쭈뼛쭈뼛 일어서는게 느껴졌다. 정적이 흘렀다.
보살의 시린 눈동자 너머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차가 필요하다 하셨다. 동네 친구들과 근처 바다에 놀러갔다 올까 했는데 차가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네 차좀 내가 잠시 쓰면 안되겠니, 했다. 같이 가는 친구들이 운전을 제법 잘 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사실 도련님도 차가 없었다. 하지만 고생만 하시던 어머니가 바다로 놀러가시겠다니 흔쾌히 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모시던 형님 중 하나에게 차를 좀 빌려주십사, 했다. 형님은 가지고 있던 것 중 제일 좋은 차를 빌려주었다. 생각보다 좋은 차에 도련님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어머니 친구들은 아들이 돈을 잘 버나봐, 하며 부러워했고 어머니도 내가 아들 덕에 이런 차를 다 타본다, 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교통사고였다. 잘 달리던 차가 고속도로 한복판에 갑자기 미끄러져 차선을 침범했고 뒤에서 오던 차가 한대, 두대, 세대 연이어 충돌했다.
차가 갑자기 미끄러진 이유는 계속해서 그 차에 가짜 휘발유를 주유해서 일수도 있고, 어쩌면 형님의 목숨을 노리던 상대 조직원이 브레이크에 작업을 했을수도 있었다.
어쩌면 타이어를 제대로 갈지 않은 채 재생 타이어로만 운전해서, 제 때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고 미끄러졌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동행자의 운전 미숙으로 인해 난 사고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 차만 아니었으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그 차를 타지만 않았다면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었다.
도련님이 사실대로 차가 없다고 고백이라도 했으면, 다른 방도가 있었을 것이다.
도련님이 어머니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실은 오랫동안 도련님을 갉아먹었다.
도련님은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어머니께 차를 빌려드리던 그 날로 돌아가는 악몽을 숱하게 꾸었다.
그 날 도련님은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울었다. 그냥 운 게 아니고 통곡하듯 목놓아 울었다.
어릴때부터 아무리 혼이 나도 뉘우치거나 반성하지 않던 그였다.
언제나 하고싶은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던 그였다.
거슬리는 사람은 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법을 무서워 하지 않으며 제멋대로 살던 그였다.
도련님은 보살 앞에서 꺽꺽 소리를 내며 온 몸에 있는 눈물을 쏟아내고, 엎드려 절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도련님은 정말로 조직에서 나왔다.
비로소 자기반성을 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 8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