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련님, 황달식 -7-

태풍의 눈은 맑다

by Lina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예전에 도련님의 어머니가 그랬듯, 도련님 또한 올게 왔구나 싶어 눈앞이 깜깜해졌다. 어린이집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절대 전화가 오지 않는다. 알림장과 밴드와 카페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이건 필시 조카가 사고를 쳤다는 뜻이다.


사건인 즉슨 이랬다. 조카가 어린이집 친구 몇명을 매수해서 부모님의 돈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 댓가로 친구들이 평소에 치아가 썩는다는 이유로 쉽게 먹지 못하는 초콜릿을 사준다고 꼬셨다.

돈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는 친구들은 순순히 돈을 갖다 바쳤다. 일종의 변형된 상납이었다.

아이가 사준적 없는 초콜릿을 먹고 있는걸 발견한 부모들이 이를 채근했고, 자신의 지갑에 손을 댔다는 걸 알자 난리가 났다.

심지어 주동자가 같은 어린이집의 6살짜리 친구라니.


도련님은 어이가 없었다. 인생을 개차반으로 살아온 자신도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다. 대체 얘가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별도의 경제교육 없이 스스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달은 조카가 아주 조금 대견스럽기도 했다.


도련님은 자신이 6살때 껌을 항아리에 넘칠만큼 훔쳤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버렸다.


조카를 앞에 앉히고 너, 왜 그랬냐고 묻자 아빠가 전에 망가뜨린 무선자동차를 갖고 싶다고 했다. 엄마 지갑에 손을 댔다고 혼났으니 다른 사람의 돈으로 사려고 했다, 한다. 도련님은 머리가 아팠다.


"니가 정당하게 번 돈으로 사야지!"


"버는게 뭐야? 당하게는 뭐야?"


"번다는 건, 니가 일을 하고 그만큼 수고했다고 돈을 받는거지."


"그럼 나도 벌었혀! 힘들게 휴퍼까지 가서 초콜릿을 햐줬단 말이야!"


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방심했다가 그만 손이 올라갈 뻔했. 도련님의 잘못된 접근으로 애가 더 당당해졌다.


"걔네 돈으로 산 초콜릿이잖아? 그럼 니가 번 게 아니야!"


조카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은 이 말귀 못알아먹는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싶었다. 동서는 애가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여전히 맘 약하고 착한 동서였다.

일단 절대로 엄마의 것이든 친구의 것이든 돈에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던 조카는 도련님이 회초리로 바닥을 두세차례 때리자 알겠다고 응했다. 절대 돈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긴 설득보다 짧은 협박이 더 잘 통하는 조카를 보고 도련님은 어떤 육아방식이 맞는건지 혼란스러웠다.


그날은 모든게 평화로웠다. 하늘은 맑고 햇빛은 쨍했다. 꿈도 꾸지 않고 잠을 푹자서 머리가 맑았다. 두 마리의 강아지는 웬일로 아침부터 말썽도 피우지 않고 얌전했다.

늘 확인하는 포털사이트 오늘의 운세엔 아주 운이 좋은 하루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갓 구운 빵을 사와 모처럼의 안정감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또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집안의 모든 평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조카가 애를 때렸다고 했다. 아이끼리 다툴수는 있지만 때린 이유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맘에 들지 않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봐서 때렸다고 했다.


도련님은 조카 앞에서 혹시 상대방이 야렸다고 때린적이 있는지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학창시절엔 비슷한 이유로 죄없는 학우를 곧잘 때렸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감정을 많이 자제한 편이었다.


이 애는 대체 어디서 보고 배운 건인가?

이미 조카가 문제를 몇번 일으켜서 다른 학부모들의 항의가 거세다고,

원장은 말을 이리저리 빙빙 돌리며 조심스럽게 결국 퇴소를 권했다.


어린이집 입소 경쟁률이 치열하여 간신히 들어간 곳이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쫓겨나면 도련님이 오전에 집에서 빈둥거릴 기회가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도련님은 추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겠다고 빌고, 아이를 잘 지도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소식을 들은 동서는 또 뒤집어졌다. 대체 우리가 조카한테 못해준게 뭔데 쟤가 자꾸 이런 식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했다.

도련님은 날 닮았나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는 못했다. 자신에게 좋을 게 없어서였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다. 조카는 확실히 모든 면에서 도련님을 닮고, 그보다 우수했다.


어린이집에서 또 전화가 왔다. 핸드폰에 익숙한 끝자리 1164가 뜨는 순간 도련님은 면도를 하다 턱을 통째로 벨 뻔했다. 이번엔 진짜 퇴소일텐데,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전화가 꺼졌다. 곧이어 두 번째 전화벨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하는 도련님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기어들어갔다.

상대방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아버님, 아직 서준이가 등원을 안해서요."


도련님은 면도기를 집어던지고 급히 집을 나섰다. 유괴, 납치, 머릿속으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리 아파트 단지 내의 어린이집이라지만, 어째서 작디작은 여섯살짜리 꼬마를 혼자서 등원하게 했는가.

과거의 자신이 너무나도 통탄스러웠다.

혹시 다른 조직이 우리 애들을 치려고 내 자식을 납치한 것인가? 새끼들이 상도덕도 없이 그런 짓을 벌인단 말야?

정신없이 달리던 도련님의 눈에 아주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조카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진 도련님은 야!!하며 조카에게 다가갔다. 조카는 놀란 기색도 없이 응, 아빠 하며 히히 웃었다.

너 대체 거기서 뭐해? 하자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네 열번만 타고 가려고! 란다.

조카가 등원한 지 세시간 째였다.


도련님은 조카의 목덜미를 잡아 질질 끌고 집에 갔다. 안 간다며 소리소리 지르는 조카의 머리에 왕꿀밤을 먹였다. 집에 도착해서 한쪽 발에만 신발을 신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도련님은 또 빡이 쳤다.

일단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오늘 서준이는 현장학습으로 결석한다고 했다.


그날 조카는 처음으로 매를 맞았다. 엄마 지갑을 훔쳤을 때도, 친구들의 돈을 훔쳐낼 때도, 다른 아이를 때렸을 때도 맞지 않았던 조카였으나 도련님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약속이 있다며 밖에 나갔다 아온 동서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도련님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동서의 얼토당토 않은 한마디에 도련님은 또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신, 당장 직업 바꾸래."


-7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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