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를 치아 사이로 짓누르며 다급히 눈을 뜬다. 손과 발 끝에 다급하게 힘이 들어가 다리가 저린다. 사방이 어둡다. 고요한 정적 속 심장이 쉴 새 없이 쿵쿵 울렸다. 목젖 부근에서 벌떡벌떡, 뜨거운 혈이 얼룩 거리는 게 느껴진다. 어찌나 크게 뛰는지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다.
섬뜩한 꿈이었다. 눈이 큰 사슴이 아가리를 쩍 벌려 집채만 한 호랑이를 산 채로 우적우적 집어삼키고 있었다. 큰 눈을 시퍼렇게 빛내며 사슴은 호랑이를 덥석덥석 잘도 씹어 삼켰다.
호랑이는 발톱을 드러낸 채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꿈속 호랑이는 바로 나였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꿈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 무렵 낯선 이질감에 머릿 끝이 쭈뼛 선다. 팔을 옆으로 쭉 뻗어본다. 옆자리는 서늘한 채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낯설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다시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여보.
옆에 누워있어야 할 아내가 없다. 좀 더 소리 높여 아내를 불러본다. 일어나서 방의 불을 켠다. 평소라면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아내의 옷가지, 화장대 위 자잘한 화장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방 안은 처음부터 나만 존재했던 것만큼의 흔적만 있다.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꿈속에서 번뜩였던 사슴의 이빨이 생각난다. 내 등에 올라타 목덜미를 짓누르던 사슴의 단단한 굽과 귀와 코에 와 닿던 뜨거운 사슴의 입김. 호랑이로 변신한 나의 앞발에 서늘한 죽음의 기운이 돋아났다. 숨이 가빠져온다. 등줄기에 차가운 무엇인가가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집 안 어디에도 그녀는 없다. 새벽 네 시다.
꿈속의 장면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기분이 들며 심한 어지럼증이 느껴진다. 악몽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