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서고 형을 구형 받는 그런 장면들은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날 두고 저들끼리 학교에 가는 친구들 말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눈 친구들 말이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 내 입에 양말을 물리고 목젖을 마구 때리고 내 얼굴을 변기에 처박던 그들도,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눈을 감지 않아도 너울너울 이따금씩 드리워지는 환각을 그들은 이해했다. 가끔 이게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시야와 파도처럼 크게 일렁이는 장면들을 그들 또한 이해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조절이 되지 않아 극으로 치닫는 나의 감정들과 벌레가 온 몸을 갉는듯한 통증과, 타는듯한 갈증을 공감해준 것은 그들이 처음이었다. 본드, 부탄가스, 대마초, 헤로인, 현실을 잊기 위해 나와 그들이 사용한 환상의 세계로 떠나는 차표는 명칭만 달랐지 후유증은 비슷했다.
그려잉, 과거는 모두 잊어불고 이제 여기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헌다고 생각혀라, 내 등을 두드리며 대머리가 위로했다. 대머리는 우리 방장이었다. 사람을 여럿 죽여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내게는 은인같은 사람이다. 인생 뭐 있겄냐아,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사람이 되면 된다잉, 앞날이 창창하잖냐잉, 그의 말에 나 또한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래요, 이제 정말 새 출발입니다. 내 인생 진짜 새롭게 시작 해보렵니다.
우리 방 앞을 어슬렁 지나가는 간수를 보며 나는 눈을 빛냈다. 가시죠 형님, 새 출발 하시죠. 방에 있던 우리들은 다같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옷 속이며 이불 밑에 숨겨놓은 날카로운 도구를 하나씩 꺼내 들었다. 오후 네 시였다. 이 시간에는 이 층을 지키는 간수가 두 명 뿐이다. 특히 지금 우리 방 앞을 지나가는 저 간수 놈은 이전에도 탈옥범들이 이용해먹은 멍청한 놈이다.
새 출발을 위해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
지난 날 새벽 네 시의 사슴을 이제는 호랑이가 잡아 먹을 시간이다. 내 안의 시퍼런 호랑이가 얼음 같은 송곳니를 으드득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 곳에서 나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기 좋은 시각이다.
그래, 나도 이제 정말로 새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