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엉망일 때 코코아를 마시면 -5-

by Lina

눈을 뜨자 병원이었다. 위가 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나는 보험금으로 치료하기 위해 실수로 세제와 물을 착각하여 마셨다고 거짓말을 했다. 의사는 썩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납득했다.

그 일로 인해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까지도 난 위가 좋지 않다. 음식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며 만성 위염과 위경련에 시달린다. 특히 속이 비면 미친듯이 쓰려서 수시로 된장을 물에 연하게 풀어 끓여 마시곤 했다.


당시 나는 나에게 남아있는 모든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믿고 의지했던 남자 둘에게 처참하게 버림받았다. 그 남자들은 나의 삶의 전부였다. 남자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다. 내 자체로는 불완전하다고 믿었고 내 몸과 마음을 기댈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J가 내게 찾아왔다.

내가 먼저 연락을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내 소식을 안건지 J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부지런히 나에게 죽을 끓여 먹이며 간호했다. 그녀는 너무나 친절하고 진정으로 날 위해주었다.

이따금 내가 숨죽여 울 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녀의 손수건에서는 향긋한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났다. 그게 참 큰 위로가 되었다.

그녀 덕분에 난 차츰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엄마보다도 더 날 살피고 위해주었다. 고작 친구의 관계인 우리가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당시 J에겐 남자친구가 있었다. 내가 많이 나아진 후 우리는 종종 셋이 함께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가서 데이트를 했다.

J는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꿈꿨다. 나에게 종종 그녀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획을 들려주었다. 결혼식은 언제쯤 올리고 신혼집은 어디에 구할 것이며 자녀계획은 이렇다는 식으로 말이다. J의 남자친구 역시 결혼을 당연시하게 생각했고 나는 그들에게 묘한 자격지심을 느꼈다.

그들이 결혼하지 않고 이렇게 영원히 셋이서 식사를 하고 셋이서 데이트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홀로 남은 나와 달리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그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꿀 수 없는 꿈을 그들이 꾸는 듯했다.


그날은 우리집에서 술을 굉장히 많이 마셨다. 술에 잔뜩 취한 J가 먼저 잠들었고 나와 J의 남자친구는 왁자지껄 떠들며 계속 술을 마셨다. 모든 것이 재미있었고 유쾌했다.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날 나만을 위해 오랜 시간 신경써준 J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난 그저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J는 즉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녀가 꿈꿨던 남자친구와의 결혼과 미래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녀는 실로 오랫동안 나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후 J의 남자친구와 한달 정도 만남을 가졌으나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반복되며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나는 찰나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내 친구의 삶을 망치고 하나뿐인 친구마저 잃었다.


- 5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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