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이면 새로운 꿈을 꾸기 딱 좋은 나이 아닌가?
내 꿈은 세상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광고기획자야.
고등학교 1학년때 우연히 본 일본의 광고 하나를 보고 정한 꿈은 광고기획자였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준 아빠와 딸의 사랑을 다룬 광고로 온 교실은 눈물바다가 됐다. 당시 글과 영화, 드라마로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던 고정관념은 한순간에 깨졌다.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고작 1분짜리 피아노 학원 광고 영상이. 강렬한 카피 하나와 설명도 없이 나를 압도했다. 제품 하나가 인간에게 던지는 메시지에 매료 당한것이다.
출처: TOSANDO music
나는 그날 이후 피 터지는 고3 입시를 거친 후 시골에서 서울 상경을 꿈꾸며 서울의 광고홍보학과 대학에 입학했다. 광고라는 전공은 굉장히 특이했다. 옛날부터 탐구해오던 수학, 철학과 같은 학문이 아닌, 발전하는 사회의 요구로 인해 생겨난 과목이다. 입학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광고학은 예체능과 사회학 그리고 디지털학 그 사이에 걸쳐 있었다. 수업시간은 공부가 아니라 주로 머리를 싸매는 창작의 시간이었다. 직접 스토리보드를 쓰고 촬영도 하고. 국내 메이저 광고대회는 다 출전했다. 아이디어 회의로 에너지 드링크와 밤샘은 일상이었다. 화려하고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의 기준을 광고가 정한다고 생각하고 우쭐했었다. 우리가 내는 아이디어가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만들어 나간다는 조금의 승리감도 느꼈다. 그렇게 광고의 매력에 빠졌고 대학 고학년이 될 때쯤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이 피부로 느껴졌다.
광고는 예술이 될 수 없다.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입학 후 전공 시간 교수님이 처음 하신 말씀이었다. 그래도 좋은 기획으로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는 어디서나 필요해 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멋져 보이는 꿈은 현실과 달랐다. 몇 개월에 걸쳐 논의했던 아이디어는. 결국 공모전 마감 직전에 바뀌는 것이 일상이고. 올해 수상을 한 팀은 작년에 우리가 탈락했던 아이디어와 같은 모순도 종종 있었다. 소비자가 좋아하는 아이디어를 고민하기 보다는 광고주가 정해 놓은 결론이 정답이었다. 피로감이 역력한 디지털 시대에 광고는 SKIP하고 싶은 정크 메시지라는 공격에 나조차 할 말이 없었다. 광고를 만드는 나도 광고가 나오면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당연하다는듯이 전공을 살려 광고 회사, 미디어 회사로 취직한 동기들을 보고 자책하기 시작했다. 나를 탓하며 내가 광고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 그래. 중얼거리며 스스로의 마음을 속였다.그럴수록 공모전에 나가고 광고대행사 인턴을 위해 서류를 난사했다. 열정이 식은 거라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대학 고학년. 나에 대해 진단을 내린 결과 나의 성향과는 다르다고 판단했다.
나는 계획적인 것을 좋아한다. 벼락치기처럼 단기 암기를 할 수 없는 머리라서 항상 중간고사를 1달 전부터 준비하는 사람이다. 늘 휘몰아치는 타임 어택에 과제 제출 전날 다시 뒤엎고 새벽부터 시작하는 것은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또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죽기보다 싫은 내향인이다. 외향인을 선호하는 광고 수업에선 1시간 내내 발표하는 강의가 있다면 3일전부터 스트레스로 배가 아팠다. 차분하고 정해진 틀 안에서 성취를 원하고 계획이 틀어지는 걸 싫어하는 동시에 나는 화려한 옷인데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예쁜데 불편하고 점점 찾지 않아 장롱에 넣어두게 된 옷 처럼.
27살. 광고 전공 4년.
대학시절 활동한 광고 동아리 2년.
기획 프로젝트 N건.
광고 공모전 3회 수상.
광고대행사 2번째 인턴의 막바지.
지금까지 쌓아온 땀에 젖은 나의 경험들을 나열해두고 돌아보았다. 이 결과들이 전부 무용이 된다 해도. 맨 땅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감히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한다. 부끄럽지만 나에 대해 성찰한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만 달렸지 내가 왜 안 맞는지. 그럼 어떤 것이 잘 맞을지 탐색할 용기는 없었다. 물론 삶에 있어서 안 맞으면 이 길을 더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은 자세다. 하지만 그럼 어떤 게 나에게 맞는지 찾아보지 않았다.
쉬지 않고 달려온 나에게 한 마디 한다. 한 길만 걸어올 용기라면, 한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들을 찾아나설 용기로 바꾸면 된다.
지금껏 걸어온 한 길을 이제 닫게 되는 것이 후회할 것 같은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후회하지 않게 만들 자신이 있다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