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환희라는 말을 써본 적 있어?

어디가 제일 좋았어?

by 아스팔트 고구마

"어디가 제일 좋았어?"


여행 중, 여행 후에도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다.



샌디에고.jpg 미국 샌디에이고로 가는 길


대번에 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장기 여행자라면, 자전거 여행자라면 특히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순간순간이 특별하면서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자는 라이딩 중 겪는 길고도 힘든 시간을, 짧지만 강력한 기쁨의 순간으로 보상받을 때가 자주 있기에 그 질문에 대답을 선뜻하기가 어렵다.





'어디가 제일 좋았을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봐도 대답이 어려웠다. 다만 자전거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기쁨을 전혀 모르고 살았겠구나 하는 곳은 있다.



P1030629.JPG 스탠리 파크, 캐나다 밴쿠버


캐나다 밴쿠버에 갓 도착했을 때 마신 공기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들이마셨던 공기가 ‘달다’라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P1390377.JPG 또레스 델 빠이네, 칠레


상쾌함 그 자체로 기억되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인 칠레의 ‘또레스 델 빠이네’ 또한 마찬가지였다. 숨만 쉬어도 몸속이 정화되는 기분과 트레킹을 하며 숨 쉴 때마다 얻는 청량감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에콰도르 령 갈라파고스는 본토에서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진 섬이다. 갈라파고스 섬은 진화론의 대표 학자인 찰스 다윈이 그의 이론에 대해서 정립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바다사자가 선베드를 전세 낸 것 마냥 누워서 낮잠을 즐기고 있음을 본다. 이구아나는 산책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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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본 엄청난 크기의 자이언트 거북이가 그곳에서 서식을 하고 있었다. TV로 보는 것과 온몸으로 체감하는 것의 차이는 이런 것이 아닐까? 앞에서 사각사각 풀을 먹어대는 소리가 내 몸을 만지고 나가는 느낌은 인터넷 영상만으로는 절대로 충족되지 않는 오감의 현장이었다.




우유니.PNG 춥지만 뜨거웠던 우유니 소금사막.


남반구에 위치한 볼리비아는 6월이 겨울이다. 영하의 온도에 나는 자전거 여행의 꽃이자 남미의 하이라이트인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2박 3일간 달렸다. 해발 3300m가 넘어가는 그곳은 영하 10도의 기온 속 쪼아대는 햇빛과 극도로 건조한 날씨였다. 내 몸무게에 육박하는 짐을 싣고 소금 사막을 달리는 기분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우유니 사막의 모습만큼이나 달라졌다.




P1410759.JPG 일몰 시간, 소금 결정으로 형성된 길을 달리다.


낮엔 순백의 소금 결정이 만든 세계 속을 달렸고, 해가 저무는 동안 하얀 소금사막과 하늘빛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수채화는 숨 막힐 정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다.




P1410777.JPG 자전거 여행자의 특권, 우유니 소금 사막 캠핑. 나에겐 정말 우주 같았다.


해가 지고 나면 그곳은 흑암만이 가득했다. 자세히 살피면 동서남북 멀리 수십 킬로 떨어진 마을의 불빛이 별처럼 빛났다. 고개를 살짝 들면 밤하늘엔 셀 수 없는 별들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때 마치 나는 이 지구 속 작은 우주 안에 있고 그 우주의 유일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코카잎으로 끓인 찻물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얼 정도의 추운 날씨였지만 이틀간을 캠핑하며 수백 장의 사진을 찍게 만든 그곳은 세계적인 여행지, 명불허전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유럽의 첫 나라 핀란드를 여행할 때였다. 도착 후 며칠간은 내 몸이 정말 가스 공장인 줄 알았다. 몸에서 방귀가 쉴 새 없이 나오는데 처음엔 왜 이런지 몰랐다.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중남미의 긴장했던 곳을 벗어나 지금은 마음이 풀려서 그런 게 아닌가라며 자신 또한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핀란드 도착 후 편안함이 몸과 마음에 전해 졌나 보다. 주변 풍경은 평화로웠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조차 정말 친절해서 내 유럽의 첫 여행지가 준 그 기억들은 생각하면 아직도 미소가 지어진다.




P1430928.JPG 유럽에서 드물게 자유 캠핑을 허락하는 나라 핀란드


핀란드는 평지가 너무 많고 여름 여행은 낮이 길어 재미가 없다고들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긴 라이딩 이후 수 십 만개의 호수 중 하나를 골라 옆에 텐트를 치고 땀에 절은 몸을 닦아 내기 위해 높은 점프대에서 팬티 한 장만 입고 호수로 뛰는 경험은 해 본 사람만 안다. 이런 건 핀란드에서 밖에 해 볼 수 없었다. 이때의 기분을 설명하기에 어떤 단어가 적합할까?




2018년 여름은 전 지구가 굉장히 더웠다. 당시 여행 중이던 네덜란드의 숲에서는 자연발화가 일어났을 정도였다. 헤이그를 지나 벨기에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그때는 세계일주의 마무리 시기를 생각하며 달리고 있었다. 깊은 고민에다 감정적으로도 별로 좋지 않아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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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손으로 꼽을만했던 일몰의 시간. 네덜란드


지는 해를 뒤로 하며 달리다 길을 찾아 캠핑지로 꺾어 달리다 마주친 석양.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강력하게 뿜어내는 하늘빛에 마음속 답답함은 잊어버릴 정도의 압도적인 자연의 빛이었다. 그 하늘을 보면서 폭염 속 라이딩한 시간이 가치 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수고와 내면의 짜증스러움이 감사로 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보통의 즐거움을 넘어선 더 큰 기쁨. 내겐 위의 경험들이 그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격하게 떨릴만한 기쁨과 놀라움이 동시에 오는 때가 평생 얼마나 될까? ‘환희’, '전율', '황홀함' 이라고도 쓸만한 말을 쓰는 때가 얼마나 될까? 이 여행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런 특별한 순간을 느껴볼 수 있었을까?


'어디가 제일 좋았어?' 친구들의 물음에 대한 의도를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좋은 곳 진짜 많더라. 한국에 없는 것들도 진짜 많고. 간접 경험도 좋지만 직접 경험해보는 게 역시 최고더라고. 내가 추천해도 똑같은 경험 하러 가진 않을 텐데... 넌 어떤 거 좋아해? 떠날 준비는 된 거지? 기쁨 이상의 환희를 얻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