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가 조금 쉬워지는 방법
살면서 당장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시간이 걸리는 미래의 행복 또한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원하는 것을 일정 시간 지연시켜야 할 때는 자주 발생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하는 말도 맞고, 현재의 힘듦을 인내함으로써 미래의 더 큰 보상을 성취해 낼 수 있다는 말도 맞다. 보통 삶에서 인내는 삶의 필요한 가치라 여긴다. 그리고 실제로 자주 그렇다.
호주 생활에서 자주 떠오른 가능하면서도 불가능한 궁금증. 사람이 인생에서 인내의 시간을 따로 선택할 수 있을까? 인내는 무조건 미덕일까? 힘든 그 시간을 어떻게 적절히 이겨낼 수 있을까?
호주 생활 중 일도 힘들었지만, 인간관계 역시 힘들었다. 주말 교회 커뮤니티에서는 좋은 일도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들은 마음을 힘들게 했다. 일을 남들의 두배 이상(평일, 휴일, 토요일 오버타임 포함)을 하고 있기에 모이는 돈의 양도 그만큼 컸기 때문일까? 무명으로 십일조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걸 굳이 찾아냈다. 또 그 돈을 누가 낸 건지 금방 소문이 났다. (현지 교민을 제외하고 십일조를 내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만큼 내는 워홀러도 없었다.) 소문은 또 다른 루머를 낳고 귀찮고도 불편한 상황이 자꾸 생겼다.
"형, 돈 좀 버셨다면서요? 저번에 알려준데 말고 더 좋은데 없어요?"
"야, 왜 나한텐 안 좋은 곳만 알려주냐? 네가 있는 곳 시급 세다고 그러던데 거기 좀 꽂아주면 안 되냐?"
"몇 달 새 얼굴 활짝 펴졌네. 돈이 좋긴 좋은가보다."
차마 글로는 옮겨 담지 못할 빈정댐도 있었다. 예전의 나처럼 구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많았다. 블로그를 보고 찾아와 잘 모르는 사람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며 넌지시, 어떨 때는 당연하다는 듯 요구했다. 몇몇 사람들은 급히 시작한 일명 캐시 잡(세금 신고가 되지 않고 고용주로부터 돈을 바로 받는 일자리, 시급이 낮고 불법이다.)을 시작했다. 한두 달 하다가 도저히 다른 일자리를 잡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지 욕하며 한국으로 돌아가버린 이들도 있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빈 일자리가 생길 때가 언제인지, 어느 회사의 사람이 빠질지 사람들을 컨택하며 찾아봐야 했는데 그 시간은 그들에게 너무 어렵거나 길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입만 벌리고 있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
많은 것들을 즉각적으로 결과를 볼 수 있는 시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사자에게 달갑지만은 않다.
그 결과물이 빨리 필요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삶에서 인내의 시간을 따로 선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것만을 취하고 힘든 시간은 다음, 또 그다음으로 미루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룸의 대가를 자신이 받는다.
흔히들 여행길과 인생길을 두고 비슷하다고들 한다. 난 두 길은 절대로 평지가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평지인 사람도 드물지만 있다고 생각한다.) 여행이나 삶 모두 오르막과 내리막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선 비도 맞고 눈도 맞고 뜨거운 햇빛이 쪼아대는 열기마저 감당해야 한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생각과 몸의 긴장을 싫어하기에 항상 익숙한 방식을 선택한다. 사람의 정신이란 게을러서 한 번의 생각 길을 터 놓으면 자꾸 그 방식 가려고 한다. 몸까지 그 방식에 익숙해져 버렸다면 어지간해서 돌이키기 쉽지 않다. 이러한 관성 속 한 생각의 방향으로만 가게 되면 내적, 외적 외골수가 된다. 스스로 잡지 못하면 자기가 불편해도 이유를 알지 못하고, 남에게 불편을 줘도 깨닫지 못한다.
빠른 것이 좋은 것을 안다. 나도 성격이 급한 사람이기에 빨리 뭔가 하고 싶었다. 호주에서 힘든 일을 하면서도 마주치기 달갑지 않은 사람들의 관계를 다 집어치울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세계일주라는 나의 목표와 지금 일의 의미가 생생하게 보였기에 당장의 편안함을 취하려는 걸 미뤘다. 그 시간을 인내하면서 알게 된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어려운 상황을 끝낼 수 있다는 주도권이 내게 있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은 안도감이 되어 오히려 그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다.
고된 일과 인간관계에 대해 매일 생각하고 겪으며 이해되는 것이 있었다. '내 것으로 정의된 의미'가 힘든 시간을 인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무딘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고된 그 상황들을 몸으로 직접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을 테지만, 여태 그랬던 것처럼 난 늦게서야 알았다. 낯설고 어려운 인간관계는 앞으로의 여행과 여행이 끝난 후에도 분명히 겪을 거란 것을.
삶에서 많은 중요한 일들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인생에서 인내의 시간을 따로 선택할 순 없지만, '의미'를 동반하면 그 과정은 좀 더 쉽다고 생각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감옥을 살아낸 빅터 프랭클 박사가 말했다지.
'인간은 의미를 갖고 있으면 어떤 힘든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라고.
나에겐 세계여행 과정에서 앞으로 얻을 재미와 성장이 곧 의미였다. 이것이 없었다면 호주 생활에서 일의 고됨과 인간관계의 어려웠던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지 나도 모르겠다. 힘들었지만, 정말 좋은 걸 깨달았다. 살다 보면 레드오션 속에 블루오션의 가치가 나타나는 곳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인내의 과정을 거친 이에게 더 잘 보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