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외로움의 발견
세계 일주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나는 그다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생각을 느끼며 살 여유가 없었는지도, 아니면 그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쓸쓸하다고 느낄 때면 난 내 마음이 어정쩡하게 '외로움'이라는 것에 집중되는 시간이 많아 서라 여겼다. 그리고 무기력감과 기분 처짐에 동반된 무료함이 우울증이라 생각했었다.
잘 몰랐기에 외로움이든 우울증이든 별것 아닌 줄 알았다. 마음 상태를 적당히 조절하면 될 일인 줄만 알았지, 외로움이란 감정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무서운 녀석인 줄 몰랐다.
북미의 멕시코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로 주저 없이 손에 꼽는 나라다.
이 모든 것을 전부 즐기기엔 체력이 딸릴 정도였다. 함께 지냈던 현지 친구들 덕분에 일상은 재미있었고, 이전 여행지와는 달리 장시간 체류하며 현지인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즐길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여행을 했다.
반면 중미의 시작이었던 과테말라는 멕시코와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다. 같은 스페인어를 쓰지만 멕시코 분위기가 그렇게 다를 줄이야. 멕시코가 활발한 대도시와 농촌을 넘나드는 느낌이었다면, 과테말라는 오로지 시골의 느낌이 가득했다. 5개월간의 긴 시간 보냈던 멕시코의 분주한 생활 때문이었을까?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과테말라의 생활로 인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이때부터 슬금슬금 느껴졌다.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 학원에 등록해 공부하면서 알게 된 여러 일본인들과 함께 카페나 디스꼬떼까를 가기도 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문화가 다른 멕시코 사람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일정 시간을 지내면서도 그들과 대화를 하다 가까이 지내기엔 벽이 있음을 느꼈다. 이윽고 외로움은 시나브로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다.
처음엔 그것을 단순한 상황의 변화를 해석하는 내 생각의 문제라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상태의 감정임을 알게 됐다. 일에 집중을 하다가도 어느새 다른 감정들은 잘 느껴지지 않고 지배적인 느낌, '외로움'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것에 매몰되어 버렸다. 무기력함과 우울감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것은 애를 써도 빠져나오기 힘든 늪처럼 일어서려는 내 다리를 잡아당겼다.
'아, 이거 빡세네... 뭐 이런 감정이 다 있지?'
처음 겪어보는 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외로움은 남미 방향으로 내려갈수록 더 심해졌다. 온두라스와 니카라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나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질감이 좋았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고독하다는 느낌이 컸다.
지치는 몸이 문제인가 싶어 해변가에 앉아 에너지 넘치는 사람과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며칠간 마음이 좀 진정되길 바랬다. 그러나 1차원적 시도가 별로 도움이 되진 못했다. 사라질 것 같은 외로움인지 우울증인지 뭐라 딱 표현하기 힘든 녀석이 더 큰 모습으로 나타났다. 새카만 어둠으로 변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쳤고, 뒤에서 나타나 내 손발을 아그자아그작 씹어 먹는 느낌을 줬다. 문자 그대로 내가 시커먼 무언가에 씹히는 느낌이었다. 웃긴 건 그 느낌이 표현만으로 그친 게 아니라 실제 팔다리의 관절이 무언가에 깨물린 듯 아팠다는 사실이다. 거짓말 같은 표현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외로움의 시간으로 인해 몸이 아팠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기가 힘들지만 진짜 그랬다.
외로움이란 걸 너무 만만하게 봤음을 인정하고 이 외로움이란 감정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필요했던 것은 내 마음속 동굴로 들어가 설명하기 힘든 이 감정을 제대로 해부해 보는 일이었다. 그 누구도 이걸 해결해 줄 사람은 없었으니까. 홀로 여행 중엔 내가 의사이자, 요리사이고, 자전거 수리공이며, 작가이자 디렉터가 되어야 한다. 외로움의 상황엔 심리 상담가로 변신을 해야 했다. 그 외로움이란 녀석을 해결하고자 셀프 상담가가 되어 내 마음의 동굴로 탐색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