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다이빙이지!

외로움 활용법

by 아스팔트 고구마

난 학창 시절 세계지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구의 모양도 지도와 같다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유럽 여행 중의 일이다. 다음 목적지인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서 아프리카 여행 일정을 계획했다.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이동 루트의 거리와 도시는 필수 확인 요소다. 특히나 아프리카에서는 생존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정보 확인이 중요했다. 막상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보니 지도로 봤던 길이는 짧았지만 실제로 달렸던 거리는 유럽에 비해 길었다. 구의 형태인 지구를 지도라는 평면에 표현하느라 생긴 왜곡이 있다는 것이 당연한 상식임에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메르카토르.jpg 우리가 흔히 보는 메르카토르 도법 세계지도, 적도 대비 고위도(유럽)의 땅이 크게 나온다.


우리가 흔히 보는 지도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지도에는 왜곡이 존재한다. 하지만 막상 여행 중엔 망각하고 있었고, 지도와 실제 모습이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다.




구드 도법.jpg 비교적 땅 크기를 잘 구현한 구드 도법 지도, 아쉽게도 깔끔한 모양은 아니다


메르카토르 지도에서 얼핏 보는 것과 달리 아프리카의 실제 크기는 유럽의 약 3배에 해당한다. 같은 100Km를 달린다 하더라도 유럽에 비해 아프리카의 지도상 표시된 길이는 상대적으로 더 짧다.


왜 우리 사는 세상이 3D임을 알고도 2D인 지도에 표시하면서 왜곡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왜 지도와 실제 지구 모습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었으면서도 여행을 위해 대비하지 않았을까? 그전까지 난 그 둘의 차이를 머리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고생하고 나서야 지도상의 왜곡을 은연중에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지 않았을까? 나라는 존재와 평생 함께 살아온 나, 그리고 마음. 매일 나를 만남에도 내가 보는 나도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었다. 상당수가 이전보다 상황이 좋아졌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내가 여행한 2017년의 아프리카는 내 생각보다 훨씬 안 좋았다. 열악한 여행 인프라, 소득 대비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싼 현지 물가, 그리고 치안 문제는 과연 아프리카가 여행자들에게 최고 난이도임을 실감하게 했다.


여행한 아프리카의 대도시는 형태는 유럽의 나라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작은 단위의 도시로 내려갈수록 규모와 형태를 보면 도시라 부르기보다는 차라리 촌락 또는 가옥 몇 채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초라했다.



P1150096.JPG 도심이었으면 쳐다도 안 볼 만든 지 10일이 지난 식빵에다 고추장 발라먹기. 탁한 식수는 정수제로 거른 우물이다. 잠비아


길에서 재미있는 걸 누리기는커녕, 먹고 자는 걸 해결하는데 우선순위를 둬야 할 정도로 열악했다.




P1120901.JPG 짐바브웨 구권 달러. 잠시나마 200억 달러 부자가 되었다. 짐바브웨 - 잠비아 국경


내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한 나라 짐바브웨였다. 자국 화폐 가치의 하락 속도가 너무 커서 지폐 뒤에 붙는 숫자의 0 숫자만도 어마어마했던, 화폐만으로는 금방 억만장자의 대열에 들게 만들어 주는 나라 이기도했다.


짐바브웨로 오기 직전 여행했던 이탈리아에 비해 생필품 가격은 무려 2배나 비쌌고, 치안이 나빠 하우스 보안 경비 시스템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도착 후 겨우 하루가 지나고 나서 느낀 지배적인 감정은 심심함이었다. 관심을 끄는 게 없었고, 그래서 이동할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은 내게 심심함이란 단어로 새겨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심심함은 이자가 복리로 붙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의 라이딩은 무료함과의 싸움이었다. 여행하면서 이렇게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었을까?


잠비아 수도를 출발해 며칠간 캠핑을 하며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숙소를 잡고 문명의 이기인 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갖고 있던 모든 전자 장비가 방전되었고 나 또한 지쳐있어 충전이 필요해 연박을 했다. 그렇게 남아도는 시간에 일기를 쓰면서 과거의 기록을 읽어보았다. 그것은 몇 년 전 중남미에서 겪던 힘들고도 조절할 수 없는 감정, 바로 외로움에 대한 것이었다. 때마침 느끼고 있었던 심심함은 다른 감정임을 보면서 이 둘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내게 심심함이 마치 수면에서 바닷속을 보는 스노클링이라면, 외로움은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다이빙이다. 다이빙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생경했던 첫 느낌을 기억할 것이다. 스노클링을 하며 본 바다는 마치 스크린 속 영상처럼 느껴졌다면, 다이빙으로 경험한 바다는 온몸으로 경험한 4D 영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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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을 하다 보면 보지 못한 이에겐 존재하지 않는 심연의 세계가 있음을 깨닫는다.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키커 락 섬


심심함과 외로움의 차이는 스노클링과 다이빙처럼 그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심심함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다. 내가 수면에서 마음대로 숨 쉬는 타이밍을 조절하듯 물과 공기층의 경계에서 재미를 찾아왔다 갔다 할 수 있다. 그것은 지금 일상에서 당장 손 안의 스마트폰만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 반면에 외로움은 마음만 먹는다고 쉽게 조절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미 다이빙처럼 바닷속으로 깊이 들어간 상태이기에 제한된 환경 속에 있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심심함을 살피다, 외로움이란 감정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이 둘을 바라보며 앞으로 살면서 다시 겪을 이 감정들, 특히 해결에 시간이 더 필요한 외로움이라는 녀석을 건설적으로 살펴보고 싶었다. 그것은 마치 다이빙처럼 외로움 속으로 깊이 들어가 나만의 고독한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삶의 많은 것들이 양면을 갖고 있듯이, 내가 오해한 외로움도 그러했다. '~으로부터의 자유(From)'보다 '~에로의 자유(To)'가 더 중요하다고들 한다. 전자가 대상으로 멀어지는 소극적 자유였다면, 후자는 대상으로 향하는 적극적 자유를 말한다. 내가 중남미에서 외로움이 싫어 관계로 도피한 것은 마치 외로움을 스노클링을 한 것과 같았다. 그러나 다이빙처럼 아예 깊숙이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면 상황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익숙함에 젖어 지도의 왜곡을 생각 없이 받아들였듯이, 외로움이란 감정도 자기가 평생 살아온 익숙한 것으로 여기고 그냥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나는 지도와 실제가 차이가 있듯이 나의 감정을 그대로 두는 것은 지도상의 왜곡을 그냥 두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대로 두든 말든 자각하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누군가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외로움으로 깊이 다이빙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G0220089.JPG 바다 속도 삶과 같다. 다이빙 버디와 함께 하지만 혼자의 시간이다. 이집트 후르가다


그 다이빙은 잠시 나와 바깥세상을 단절시킨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 자체로 몰입의 시간이 된다. 그렇게 외로움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를 볼 수 있는 적극적 '~에로의 자유'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