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심판 한방 먹이기
상식(常識)의 사전적 뜻은 '사람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인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를 포함한다.'이다.
일반적으로 상식은 같은 문화권에서는 어렵지 않게 통용이 되며 다른 문화권으로 가면 당연히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문화를 넘어섰다고 해서 이러한 상식이 크게 변하는 나라는 없다. 예를 들면 지나가는 사람이 맘에 안 들어 때려도 괜찮다거나, 어린아이를 학대해도 된다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식이 통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르완다는 '천 개의 언덕이 있는 나라'라는 별명을 가진 나라다. 자전거 여행을 하는 나에겐 평지가 아닌 수많은 언덕길을 원하지 않아도 즐겨야 하는 나라였다. 언덕이 많은 르완다 여행을 마치고 우간다로 넘어가기 전 가투나(Gatuna) 국경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주변 사진을 찍고 이동했는데 마침 사진을 찍었던 낡은 건물이 입출국 스탬프를 찍어주는 국경 검문소였다. 출입국 직원이 내게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내가 건물 사진 찍는 모습을 봤기에 사진을 지우라는 말이었다. 사진을 지우고 스탬프를 받으려 여권을 건넸는데 여권을 돌려주지 않았다. 나보다 뒤에 온 사람들은 전부 출국 도장을 받아 갔음에도 나는 혼자 계속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검문소 내부에서 직원들이 내 여권을 빙빙 돌려보는 시늉을 하며 스탬프를 찍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선 날 바라보며 낄낄대고 웃었다.
'어쭈, 이것들 봐라?!'
뇌물을 받고 싶었던 걸까? 기다려도 도저히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이곳 담당 보스와 말을 하고 싶다고 하니 그 사람이 더 가관이었다. 강압조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을 까닥이며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불러 나를 가두려고 했다. 눈치가 없었으면 아마 꼼짝없이 갇혔으리라.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막무가내식 일처리 방식을 여러 번 본 지라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일의 진행 방식을 보아하니 곧바로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서 세계일주 중 처음으로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두 차례의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국경에서 여권을 주지 않아 기다리고 있어요. 담당 보스와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더 문제입니다."
"현장 담당자 말로는 지금 전화 주신 분께서 난동을 피우며 말을 안 듣고 있다고 전해 들었어요. 현재 르완다 내 문제로 민감한 시기입니다. 그들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으니 국경에서 그들의 말에 잘 따르셔야 해요."
"여권도 주지 않고 빙빙 돌리고 시간을 뺏고 있어요.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고 심지어 지금 국경엔 사람도 없어요. 일처리가 안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출국 도장만 받고 나가면 끝인데 제가 여권을 달라는 것이 내정간섭입니까?"
"아무튼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어요. 저희 쪽에서 해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거짓말까지 해 놓은걸 보니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난 여권을 돌려받으려던 마음을 접었다. 하는 짓이 너무 못 돼 먹었다 싶었다. 도저히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모두 영상으로 남겨 유튜브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했더니 강압적으로 굴던 태도에서 갑자기 공손 모드로 바뀌기 시작했다. 깔깔대고 조소하던 다른 직원들마저 표정이 굳었다. 카메라를 끄면 (정말!) 미친개 마냥 굴던 모습에서, 카메라를 다시 켜면 공손 모드를 반복했다. 차마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울 정도다.
연기하는 게 너무 가증스러워 잔머리를 굴렸다. 행동이 바뀌는 그 보스를 두고 살금살금 약을 올렸다. 약을 바짝 올려놓으니 참지 못하고 마침내 그가 폭발했다. 쓸만한 영상을 건져간다 싶을 때 보스가 내게 나에게 달려들어 내 목을 조르고 팔을 비틀며 폰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 그는 나에게 폭력을 썼다.
몇 시간 뒤 우리나라 대사관 직원들이 왔다. 당시 갖고 있는 카메라만 4개였기에 한대의 카메라를 뺏기고 나서도 모든 상황을 영상으로 기록해 놓았다. 현장 보스가 거짓말하고 있는 모습이 영상에 남아있었고 대사관 직원에게 보여주고 거짓말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과를 받기엔 불충분했나? 그들은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다. 스스로 잘못한 건 아는 건지 세컨드 폰으로 촬영 해 놓은 영상과 인터넷 사용 여부까지 확인했다. 자기들이 찍힌 사진이나 영상은 절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리와 함께 모든 증거를 삭제했다. 그리고선 의미도 없는 종이 쪼가리를 갖고 와 서명을 요구했다. 혹시나 사진이 유출되면 내 책임이라며.
나처럼 당하는 사람이 단지 나뿐이 아님을 확인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날 함께 국경을 지나간 우간다 사람을 후에 다시 만났다. 그가 해 준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그들이 국경에서 권력을 어떻게 남용하는지.
아프리카 여행 중 위와 같은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내가 겪은 다른 나라들의 경험은 르완다의 상황에 비하자면 귀엽게 넘어갈 정도다. 르완다 국경에서 그들이 바로 잡고 싶은 건 무엇이었을까? 그 상황이었을까? 나였을까? 아니 애초에 바로잡고 싶은 게 존재하긴 했을까?
르완다에서의 사건과 비슷한 사례의 일들을 겪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법이란 얼마나 제대로 움직일까? 여기에선 상식조차 기능하지 않는데. 단지 여기뿐만이 아니다. 정도만 다르지 어느 곳이나 있다. 심판에게 공정하게 상황을 보라는 임무를 줬는데 그 심판이 반칙하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들의 에피소드로만 봤던 것을 내가 직접 겪으니 굉장한 분노가 치몄다.
그랬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는데, 이날 내가 르완다에서 겪은 주먹은 이 나라의 공권력이었다. 경찰이 폭력을 쓰다니.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상식을 넘어선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종종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도 겪는다. 대비할 수 없지만 만약에 그 일이 생긴다면 최대한 피해를 안 입도록 궁리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조심해도 생길 일은 언제나 생기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겪은 일로 법이라는 거대담론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내 여행이 삶에 도움이 되는 가치가 뭔지를 고민할 뿐이다. 당하고 나서야 머리로 생각한 것을 넘어선 감정이 개입된다는 것을 알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반칙당하는 순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명해 놓는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은 자기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안다. 상식이 있다면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피하는 게 좋다. 잡아뗄 때를 대비해 증거를 들이밀며 그때 빈정댄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비웃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