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망하며 배운 것

상상하지 않으면 대비할 수 없다

by 아스팔트 고구마

2010년 자전거 여행을 시작할 무렵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Hugo Chavez)는 생전 막대한 석유 자원을 갖고 라틴 아메리카의 맹주이자 반 미국 세력의 선봉장으로 우뚝 서 있었다.



P1100251.JPG 차베스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던 베네수엘라 사람들. 멕시코 멕시코시티


2012년 멕시코 여행 당시 차베스 대통령이 암으로 죽어간다고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멕시코 시티의 주요 광장에서는 재멕시코 베네수엘라 교민들이 모여 그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내가 멕시코를 떠나기 전 그는 사망했다. 차베스 대통령 사후 그 어수선한 분위기에 니콜라스 마두로가 대통령이 되었고 베네수엘라는 점점 더 혼란스러운 상황, 흔히 말하는 폭망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가 베네수엘라를 여행할 때는 망하기 시작하는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할 때였다.






우리나라의 IMF 시절 중학생이었던 나는 당시의 기억이 조금 남아있다. 국가적 경제위기가 어떤 것인지 나이를 먹는 동안 경제를 공부하며 이해할 수 있었기에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IMF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이 겹쳐 보였다.


장기간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에게 환율은 여행의 상당한 변수다. 차베스 사후 베네수엘라 정치가 불안해졌다는 사실은 기존의 혼란에 악재로 겹쳤고, 안 그래도 나빴던 자국의 경제 위기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왔다. 내가 여행할 당시 베네수엘라는 당시 공시 환율과 암 환율이 무려 1:10 차이가 났고 외국돈을 지닌 여행자에겐 엄청난 호재였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에겐 경험하기 힘들 정도의 환율을 누릴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P1300051.JPG 돈을 조금만 바꿔도 당시 가장 고액권인 100 볼리바르 짜리를 다발로 줬다. 베네수엘라-콜롬비아 쿠쿠타 국경


경제 위기 전만 해도 베네수엘라는 남미에서 상당한 고물가를 자랑하는 여행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율이 변함과 동시에 외국 여행자들이 저렴한 물가로 인해 일부러 찾는 곳이 되기 시작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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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트레킹 명소, 로라이마 테푸이 / 카나이마 국립공원




P1260441.JPG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 베네수엘라 앤젤 폭포



아나콘다를 만나볼 수 있는 아또 엘 세드랄(Hato El Cedral), 베네수엘라


나 역시 환율의 마법을 누렸다. 베네수엘라에 있는 동안 암시장과 공식 시장의 환율을 활용해 비싼 로라이마 국립공원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엔젤 폭포를 경비행기로 여행할 수 있었다. 또한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여행까지 상당 부분 커버할 수 있었다.


당시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에콰도르 키토 → 갈라파고스 섬 → 에콰도르 키토 → 콜롬비아 보고타 이렇게 5번의 비행기를 타는데 겨우 한국돈 15만 원 정도 들었다. 비싸다는 갈라파고스 섬 왕복 비행기표를 15000원에 구입했으니, 내게 베네수엘라는 IMF 당시의 우리나라와 같은 모양새였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오고 나서부터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깊이로 커피 공부를 시작했다. 베네수엘라를 여행 후 콜롬비아에 돌아와 커피 학교에 입학했다. 왜냐하면 베네수엘라 여행을 다녀온 뒤 사업의 기회를 봤기 때문이다. 여행 당시 조사한 정보를 바탕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커피 수출 사업을 하려고 했기에 콜롬비아에서 의지적으로 공부에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메리다(Merida)에 머무르며 커피 사업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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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는 길에 있고 가로등을 꺾어 도로 통행을 막아버린 상황, 이런 걸 본적이 없다. 베네수엘라 메리다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 베네수엘라 나라 자체 분위기는 이전보다 더 살벌해져 있었다. 교통과 도로 일부는 마비가 되었고 시설물들은 박살 나기까지 했다. 시외버스 터미널 등 공공 인프라가 폐쇄되어 인근 작은 도시까지 가야 시외 터미널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커다란 영토를 가진 베네수엘라의 도시 이동에 버스 10시간 이상 타는 것은 기본, 너무 먼 곳은 국내선을 비행기로 이동하면서 시장정보를 모았다. 고단했지만 커피 수출을 하기 위해 그간의 노력을 이제야 돈으로 보상받을 때라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괜찮은 현지의 업체를 컨택할 수 있었다. 환율 덕분에 세계 어디를 가도 품질 대비 이곳보다 좋은 가성비 커피가 없었음을 확신했었고 수출 회사에 가서 계약을 하고 돈을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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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도 잠시, 며칠 뒤 우체국에서 엽서를 보낸 후에야 알았다. 법이 바뀌어서 나라에서 수출되는 모든 물품 등을 규제 및 금지한다고. 달러로 결제되는 모든 물건들이 반출 금지가 된 것이다. 10장 넘게 보낸 엽서는 단 한통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고, 커피 역시 마찬가지로 어디로 가게 된 건지도 모르게 묶여버렸다.


그동안 쓴 돈과 에너지, 시간은 그야말로 허공에 날아가버린 셈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나라 법이 바뀔지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악다구니를 쓰며 백방으로 문제 해결을 잡으려고 했으나 나라에서 정한걸 어찌 한 개인이 바꿀 수 있을까.


모든 걸 다 접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수도인 카라카스로 왔다. 도시 분위기는 더 살벌하게 변해있었고, 여행 중 들렀던 카라카스가 아니었다. 카라카스는 세계 살인율이 1-2위를 다투는 도시다. 밤이 되면 무서워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절망감과 무기력에 빠진 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자책하며 며칠간 호텔에 처박혀 울었다. 날린 돈도 당시의 여행자금으론 큰돈이었던 데다 그간의 노력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은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지금에서 보면 준비 과정도 어설펐지만, 당시의 절망감은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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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 중 발포에 의해 사망한 시민들과 학생들


2014년의 당시 베네수엘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에서 망가져가고 있었다. 반정부 시위로 인해 많은 민간인들이 죽었고, 나 또한 죽을 뻔했다.




20140421_131403.jpg 도시에선 경찰을 향해 총을 쏘는 일도 있었다. 내 눈앞에서 총을 쏘고 있음을 숨어서 지켜봐야 했다.


눈앞에서 총 쏘는 걸 몇 차례나 봤다. 무서워서 냉큼 도망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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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슈퍼마켓 앞에는 물건을 사려고 사람들이 긴 줄을 섰다. 그렇다 하더라도 슈퍼마켓 매대는 살 것이 없었다. 그마저 물건이 들어오면 배급제 형식으로 제한을 두고 신분증까지 확인하며 물건을 팔곤 했다.


쿠바로 넘어가려고 계획했지만 베네수엘라에 머무르던 그 해, 쿠바로 넘어가는 모든 비행기 티켓은 매진되고 없었다. 결국 난 쿠바로 가지 못하고 페루로 넘어온 뒤 베네수엘라에서의 힘쓴 부분을 정리해야 했다.






P1320095.JPG 베네수엘라는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마음은 정말 달랐다. 이걸 상상이나 했을까?


내가 바보 같아서인지, 생각이 모자란 탓인지, 운이 없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이때의 뼈아픈 경험은 정말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사업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과정은 정말로 순탄했다. 하지만 인생사 과정이 좋다고 해서 결과가 늘 좋을 순 없는 노릇. 잘 준비한다고 했지만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을까? 너무 순조로웠고 예상 가능했던 부분을 거치며 겪은 약간의 불편함이 전부였던지라 실패할 거라 상상조차 못 했다.


상상할 수 없으면 대비할 수도 없다. 준비를 열심히 하더라도 실패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난 받아들여야 했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은 종종 겪기 마련이니까. 여행 중 가장 힘든 시간이기도 했던 호주에서 일자리를 구할 때도 그랬다. 당시 마음에 새긴 바가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비슷한 상황을 또 겪었음에도 내 마음은 회복에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어쨌거나 나는 망했다. 하하하!!! 베네수엘라에서의 경험은 당시엔 견디기 힘든 실패였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잘 살핀 덕분일까? 이 경험은 2년 뒤 두바이에서의 도전에 강한 자신감을 주는 경험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전에는 전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 '운'의 영역으로 생각이 확장되었다.


여행 자금, 에너지와 시간을 전부 날리긴 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얻은 나름의 교훈이 있다. 사업을 시작하면 작게 시작하고, 망해도 작게 망해야 한다는 거다. 또한 삶에 벌어질 일에 대해 대비를 하더라도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철저히 준비해도 안될 수가 있다. 자신감도 좋지만 한 편의 다른 태도는 침착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과신을 내려놓게 한다. 그것은 실패로 인한 자책을 조금은 덜어준다.


힘든 상황과 감정이 이미 겪어 본 것이라 하더라도 아픈 건 아픈 거니까. 그럴 거면 최대한 덜 아픈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