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쌌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로 '산을 가는 이유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던가. 내가 중미의 마지막 나라 파나마를 가는 이유는 산을 가는 사람과 비슷한 이유였다. 그냥 거기 있어서. 남미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한 나라여서다. 이전 중미의 나라들을 아무 문제없이 지나왔는데 파나마에서는 입국부터 나의 생김새로 문제가 생겼다. 여권을 받고 내 얼굴을 두어 차례 확인하더니
"중국... 아니 필리핀 사람 아니에요?"
"여권에 사진 있잖아요. 잘 보면 몰라요?"
"아니, 같은 사람 아닌 것 같은데...?"
"........."
나 스스로 호기롭게 대답했지만 그들의 반응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여권에 찍은 사진과 무려 8년 가까이 차이가 났었던 데다 중미의 강한 태양을 얼굴로 받아내며 왔으니 시커먼 내 모습이 사진과 같을 리가 없었다.
파나마는 여행지로 선호도가 높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나라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들이 오면 대부분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파나마 운하!
사실 운하는 16세기부터 대항해시대 무역을 위해 개통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프랑스가 1880년 즈음 첫 삽을 뜨기 시작했지만 수에즈 운하를 성공한 그들의 경험이 무색할 만큼 공사의 난이도가 어려워 진행은 굉장히 더뎠다. 파나마 운하는 프랑스인들이 만들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그 뒤를 미국이 받아 공사를 진행, 완공했다. 이 가운데 사고와 모기로 인한 말라리아 발생으로 공사가 끝날 때까지 무려 3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다.
30여 년이 넘는 공사 기간 중 이때 수많은 노동력이 공사에 투입되었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상당수는 그곳에서 죽었다. 당시 중국인들도 많은 공사에 투입되었는데 일부는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나마에 남았다. 현재 파나마에 중국인들이 많이 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파나마 라이딩은 땀을 흘린 게 아니라 '땀을 쌌다.'는 느낌으로 기억하는 여행이다. 북반구의 가을 날씨라 괜찮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달려보고 나서야 적도로 내려간다는 뜻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몸무게에 육박하는 짐을 지고 조금은 시원한 사우나를 달리는 느낌? 등으로 흐르는 땀은 엉덩이 골로 흘러들어 갔다. 머리와 이마로 터져 나오는 땀은 닦아 내도 줄줄 흐를 정도였다. 땀을 닦아 냈음에도 일부는 눈썹의 끝으로 모여 눈으로 내려왔고 따가움을 느끼며 페달을 밟아야 했다.
언덕길이 보인다 싶으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되기 전부터 페달을 강하게 밟기 시작했다. 평균속도를 높여 그 가속도를 이용해 언덕길의 높은 부분까지 쉽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도마저 죽어버리고, 페달질의 힘도 떨어지면 결국 안장에서 내려서 끌면서 올라가야 했다. 비록 그 시간이 힘들어도 땀방울이 뺨과 턱을 지나 바닥에 뚝뚝 떨어질 때마다 내 노력의 흔적을 방울방울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던 파나마 여행. 지루한 라이딩 중 바닥으로 떨어진 땀을 볼 때마다 상념에 잠겼다.
'지금도 이렇게 땀을 흘리는데, 앞으론 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나?'
'나이가 들면 또 삶이 얼마나 힘들까?'
'지금의 고생이 나에겐 어떤 도움이 될까?'
여행 당시엔 어렸던 데다 감상적이어서 사람의 노동으로 대변되는 땀의 가치는 동일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방식은 공산주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행 당시의 감상적인 관점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와 변하지 않은 소망이 있다.
'지금의 흘린 땀을 미래에 흘릴 눈물과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
자발적으로 나선 이 여행을 고생이란 단어 자체로 포장해 퉁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이 여정의 수많은 경험이 미래에 꼭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현재의 노력이 미래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길 소망했다.
파나마 운하는 노동자들이 흘렸던 땀과 피로 완공되었다. 그들 덕분에 누군가는 무역으로 돈을 벌고, 또 다른 이는 인생의 시간을 벌었다. 세상의 물류는 그들의 땀으로 수십억 시간 절약되었고 지구 상의 발전의 속도를 앞당겼다. 앞으로도 배가 존재하는 한 파나마 운하는 그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너무나 빠른 세상이다. 반드시 거쳐야 할 시간마저 요약으로 퉁치는 시대, 보이지 않는 노력의 과정을 가볍게 보는 세상으로만 변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점점 땀의 가치가 가벼워지는 것만 같고, 땀의 본질마저 가볍게만 보는 것 같다. 현실은 내가 흘린 땀이 미래의 내가 원하는 상황을 언제나 보장하지 않는다. 효율성을 따져가는 시대에 다만 그 땀, 성실함과 꾸준함이 주는 가치가 무시되는 세상에 나는 거부감이 생긴다.
누군가 처음 지나간 길을 그다음의 누군가가 따라가고 혜택을 본다. 잘 만들어진 길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 말 그대로 '길'이 된다. 실패하면 그것 또한 남아 타인의 시행착오를 줄여준다.
파나마 운하에 비하자면 겨우 자전거 여행이다. 그럼에도 파나마 운하를 보면서 저 거대한 건축물을 만든 사람들처럼 내가 여행에 쏟는 시간과 노력들이 미래의 나와 비슷한 길을 여행해보려는 누군가에게 낭비될 시간과 에너지, 고생을 아껴주었으면 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함이 아님을 느낄 때는 자신이 그 땀을 흘리는 당사자 일 때다.
남이 흘린 땀을 생각해보며 내 땀의 의미도 생각해 봤다. 앞으로 흘릴 땀을 생각해 보며 나도 조금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한 바퀴 굴렸다고 느낄 때가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