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사이드
아마도 내가 100% 이해하지 못해서,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난 여행 중 이름 대신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나라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우리 문화에서는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아닌 이상 타인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경우는 드물다.
이름 대신 나이나 직함, 직책에 따른 호칭을 부르거나 성별, 사회적, 관계적 상하 위계를 나타내는 오빠, 사장님, 선배님, 도련님 등의 호칭을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럽다. 마땅한 무언가가 없다면 필요한 호칭을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심지어 '저기요'라고 부르기도 하니까. 만약 친구의 어머니 이름도 "OO 어머니" 이렇게 부를 일을 "OO 씨"라고 불렀다간 욕먹거나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일. 이러한 호칭은 높임말과 보통 말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들 한다.
여행 전만 해도 '왜 우리나라는 이름 대신 다른 호칭으로 부를까?' 하는 궁금함은 여행을 하면서부터 '호칭과 이름이 갖는 의미'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했다.
'세계일주를 하면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색적이고도 좋은 기억으로 언급하는 나라가 있다. 세계일주 중 내가 경험한 최고의 친절도로 꼽는 아랍의 낯선 나라, 오만(Oman)이다.
아랍 에미리트에서 생활할 당시 비자 클리어를 위해 오만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만에서 무비자를 내주는 단 세 개의 국가 중 자랑스럽게도 대한민국이 포함되어 있기에 비자 비용 없이 스탬프만 찍는 걸 보고 함께한 외국인들 모두가 신기하게 본 기억이 난다. 그 짧은 방문은 이유 없이 좋았는데, 실제 자전거 여행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기억에 남았다.
주변 나라들에 비해 부유한 데다 외국인들의 왕래가 잦아서일까? 내가 겪은 아랍 에미리트의 육로 및 공항 출입국소의 직원들은 하나 같이 불친절했다. 반면에 국경을 맞댄 오만 쪽 경찰들은 상반되는 분위기를 보였다. 오는 외국인이 별로 없어서인지 오만을 향해 가는 길에서 현지 경찰들은 친절한 미소로 자전거 탄 낯선 이방인을 맞아 인사해 주는 게 얼마나 반갑던지.
아랍 에미리트-오만 두 나라의 알 부라이미(Al buraimi) 국경은 차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자전거로 이동하는 내게 아랍 에미리트 출국 도장을 받고 오만 입국소 도장을 받는데 거리가 무려 약 90km, 이동에만 만 하루의 시간을 필요로 했던 내가 경험한 가장 긴 출입국 스탬프 찍기였다.
오만 입국을 한 때는 밤이었고 길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인의 초대로 하룻밤을 지냈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는 오만 사이클 커뮤니티에 한국인 여행자의 소식을 전했고 나도 모르게 내 소식이 그들에게 공유되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얼굴도 모르는 많은 오만 사람들로부터 환영의 메시지를 받았다.
길에서 현지인들로부터 음료와 식사를 대접받는가 하면 현지 신문사와 인터뷰할 기회도 가졌다. 자칫 지루할만한 라이딩을 매일 나타나는 이벤트로 채워나갈 수 있었다.
자기의 집으로 꼭 와달라며 자기의 집으로 초대하려는 '압둘라'라는 친구가 있었다. 수도 무스카트로 향하던 길, 그의 거듭된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마침내 만났다.
압둘라 : 성원~ 며칠 동안 꾸준히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면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실망인데?
나 : 야야~ 압둘라라고 이름만 쓰면 어떻게 알아. 압둘라 킴인지, 압둘라 팍인지, 압둘라 초이인지 얼굴도 모르고 죄다 압둘라라고 하니까 헷갈릴 수밖에 없잖아. 내가 아랍어도 못 읽고 처음 들어본 외국인들 목소리를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오만 입국 후 많은 싸이클리스트로부터 메시지가 있었지만, 압둘라라는 사람의 이름만 해도 무려 손가락 수를 넘었다. 압둘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자기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며 웃어넘겼다.
내가 세계 여행 중 만나본 사람들 중 단연코 수다왕으로 꼽을 정도의 압둘라와는 장난까지 칠 정도로 금방 친해졌고, 그 덕분에 오만 현지인을 좀 더 가까이 살펴볼 시간이 생겼다.
압둘라와 함께 오만 전통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갔다. 배에 꼬부랑 칼을 차고 한 껏 멋을 낸 신랑은 수많은 칸두라(아랍에서 입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남성들 사이에 둘러싸여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진행한다.
나를 이 현장에 데려간 압둘라는 신랑과는 안면이 없고 자신도 초대의 초대를 받고 온 거라 했다. 압둘라 또한 신랑이 누군지 잘 모른단다. 오만은 고대부터 부족 문화를 갖고 있었고 결혼식 참여는 문화적으로 있는 거라 설명해 줬다. 그 결혼식에 참여해 줌으로써 신랑의 축복을 빌어 준다고 한다.
엄숙한 분위기 속 식의 절차가 끝나고 여러 사람이 한 쟁반을 두고 둘러앉아 식사시간을 가졌다. 난 자연스럽게 그들처럼 손으로 밥을 먹는다고 생각했지만 찰기가 없는 밥을 제대로 쥐지 못해 밥알을 흘리는 내 모습을 보며 주변 친구들은 웃어댔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뷔페식 식사가 지금처럼 비즈니스로 자리 잡기 전까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결혼식을 참여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했었다. 심지어 지나가는 손님이라도 뭐라도 먹여서 보냈다는데, 이젠 더 이상 우리나라에선 보기가 힘들다.
오만 전통 결혼식의 깊은 의미는 잘 몰라도 그들의 결혼식을 보면서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우리의 옛 가치를 이 나라에서 보게 되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 어릴 적만 해도 있었는데!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현장이었다. 앞으로 쉽게 경험하지 못할 기회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압둘라와 다른 친구들에게 오만의 결혼식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함께한 그들도 한국의 결혼식에 대해 궁금한 게 있는지 이것저것 물었다.
며칠간 날 지켜본 친구들은 이 자리에서 내 모습에 따른 아랍식 이름을 하나 지어줬다. 그 이름은 사이드. 행복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사이드, 넌 지금 좋은 자리에서 즐거운 에너지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어.”
아랍어로 만든 내 이름을 듣고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발음해 보았다. 영어단어 Side가 자꾸 생각나서 발음이 썩 맘에 들진 않았지만 의미가 좋아 받아들이기로 했다. 멸망 킴, 좌절 킴, 불안 킴 같은 이름 보단 나으니까. 이름을 좋은 뜻으로 담지, 나쁜 뜻으로 담는 사람이 어딨겠어.
결혼식에 갔다가 멋진 이름 하나를 얻었다. 하하하!!!
우리들 사이에서 다른 호칭은 없었다. 우린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지나온 모든 나라가 그랬다. 스페인어 권에서 나는 현지인들이 이름 발음과 소리가 가까운 Huan(스페인어 'H'는 묵음)으로, 중국에서는 한자 발음 그대로 셩위앤(Sheng yuan)으로, 그리고 아랍어 이름으로 행복이란 뜻을 담은 '사이드'로 불렸다. 영어를 포함한 다른 언어권이라면 순수한 내 이름으로 불렸다.
나를 부르는 호칭과 이름에 따라 상대와의 관계가 구분되는 우리나라 문화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이름 그대로 불러주는 사람이라면 격의 없거나, 가까운 소중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서 우리말은 호칭에서 관계의 거리와 높이가 측정되기 때문이다.
세상 많은 것들의 이름이 기본적 속성을 품고 있듯이 사람의 이름도 지은이의 뜻이 담겨있다. 명명하는 것이 곧 그 대상의 특징을 나타낸다고 하는 보통의 상식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인데, 우리나라는 왜 이름을 이름 그대로 부르지 않을까? 여러 이유들이 있다지만 난 호칭의 대상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담는다는 생각을 믿고 싶다.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만나는 사람 중 직함, 직책을 떠나 날 이름 그대로 불러주는 주변 사람이 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