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찾는 단순한 방법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2021년 지금, 이 말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10년 전 만해도 이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20대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30대가 되고 나서는 메시지의 무게감이 달랐다. 정말 일을 해야 할 시기였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하는 것에 나도 예외일순 없었다.
장기 여행 중 누구에게나 온다는 자아성찰의 시간이 내게도 왔다. 이 질문은 남이 한 질문이 아닌, 내가 필요로 해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이었다. 몇 달 동안 생각이 이어졌다. 이 말에 뭔가 빠진 게 있다고 느낀 건 나뿐인 걸까?
나로선 이 질문을 먼저 해야 했다. "먼저 좋아하는 일부터 찾으세요!"라고. 나 역시 궁금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도 몰랐으니까.
여행에서 겪는 것들은 상당 부분 개인적이면서 경험적인 것이라 제한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주는 경험을 작게만 볼 수는 없다. 사람이 배우고 느끼는데 경험만큼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은 기본적으로 동적인 여행이다. 나 자신을 살피기 위한 목적 있는 관찰을 위해선 의지적으로 조용히 내 마음을 살필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 관찰을 통해 여행 경험을 디딤돌 삼아 더 멀리 나아가야 했다. 경험에만 매몰되어 단편적인 결론만 내렸다면 내가 길에서 보낸 시간은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했을 테니.
난 뭘 좋아하는 사람일까? 파스칼이 말한 대로 '가만히 앉아 조용히 생각하기'를 실천해 보기로 하고 여행 중 그 시간을 자주 가졌다. 제일 먼저 한 것은 내 욕망을 눈에 보이도록 종이에 적는 일이었다. 하고 싶어 하는 것과 되고 싶은 것을 가리지 않고 썼다. 나름의 기준은 있었다.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할 수 있는 것, 범죄가 아닐 것, 오래 즐길 수 있는 것, 돈을 벌 수 있을 것을 현실성 있게 구분했다.
의식의 흐름대로 마구 쓰고 보니 자잘하고도 겹치는 것들이 많았다. 적어놓은 욕망은 인생의 제한된 시간 속 어떻게 여러 기준의 교집합을 찾고 적용해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다시 삶의 우선순위를 돌아보게 했고 얼마 안 가 선택을 위한 한 장면이 떠올랐다.
10살도 안되었을 때 주한미군방송 AFKN에서 나온 프로레슬링 경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근육질의 남자들이 나와 화려한 기술이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체력을 고갈시켜 탭 아웃을 받아내는 경기는 영어를 모르는 한국인 꼬마도 이해할 수 있었다.
20대가 되어서도 즐거움은 계속되었다. 어릴 땐 미처 몰랐던 레슬러들의 환상적인 경기가 프로레슬링 밖 치밀한 각본에 의해 만들어진 연기임을 알았음에도 재미있었다. 프로레슬링은 선수들의 연기와 스토리, 관중의 반응 요소 등으로 합이 잘 짜인 진짜 같은 가짜였지만, 사실은 가짜 같은 진짜이기도 했다.
재미를 위한 프로레슬링에도 그 수준을 넘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 내겐 외국 투어 경기를 할 때 선수와 관중과 교감하며 즐거워하는 때인데, 언어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아도 시합의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관중은 선수에게 박수를, 선수는 그들에게 특유의 제스처로 감사를 표한다. 경기 후의 동작으로 서로 교감하는 모습은 내게 강하고도 긴 여운으로 남았다. 그 장면에서 느낀 감정을 일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다.
호주에서의 경험으로 다짐한 것이 있다. 쓸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내 자산이라곤 몸뚱이가 전부였고 생산 수단이라곤 몸 하나밖에 없으니 단순 노동만으로 살기엔 내 미래가 쉽게 그려져서 관성대로 살고 싶진 않았다. 기술이든 뭐든 어떻게는 활용할만한 능력을 갖고 싶었다. 차(茶)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관심이 많았고, 음료 중 하나인 커피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다.
레슬링에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그 현장의 모습 속 선수와 관중이 서로 호흡하는 것처럼, 음료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미각의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도구를 사용하면 즐거울 것 같았다. 종이에 적어 놨으니 실행만 남았었다. 내가 여행하던 시기는 스타벅스가 한국에 상륙한 지 몇 년이 지나서였고, 국내에서는 본격적인 원두커피 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때였다. 아메리카 대륙 여행의 시작점인 캐나다 밴쿠버에서 출발해 미국 서부 해안도시를 다니면서 유명하다는 스페셜티 카페를 방문했다. 그러면서 최소한의 트렌드를 살펴나갔다.
2013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커피 공부를 했었다. 덕분에 여행기간 동안 관련 업계에서 일도 경험했고, (비록 망했지만) 사업 시도했었고, 작은 프로젝트와 비즈니스를 완성해보기도 했다.
꽤 경험한 커피를 어떻게 좋아하는 차와 연결해 볼 수 있을까 고민하다 2018년 네덜란드 여행 중 중국 윈난 성으로 날아가 보이차를 공부를 했다. 그렇게 쌓인 경험으로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나눠 마셨던 수천 잔의 커피는 더 이상 단순한 경험과 음료로 남지 않았다. 식상하지만 확실한 것! 현장에는 확실히 특별한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장소의 특별함이 아닌 '행동을 통한 깨달음' 그 자체였다. 해보면 안다. 그리고 그걸 길게 자주 해보면 더 잘 안다.
그 과정의 어느 수준에서는 난관에 봉착한다. 거기에서 내 욕망의 실체가 드러난다. 단순한 걸 하는 것은 쉬워도 오랫동안 하는 것은 어렵다.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의무감에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을 욕망으로 착각하는 것인지, 남들 눈에 좋아 보여서 선택하는 것인지는 스스로 해보지 않으면 몰랐던 것들이었다. 진짜 하고 싶으면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아니라면 그만둘 명분을 만들 터.
그제야 알았다. 여행 속 경험이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다고 나 스스로 느낀다는 것, 그리고 이걸 좀 더 길게 해도 되겠구나 라는 사실을.
나의 커피 경험과 그것을 통해 배운 사실은 단순히 음료를 파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준 가치와 비슷했다. 나 역시 음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필요를 기대 이상으로 채워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나 또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것을 한 가지나 혹은 고정된 형태로 봤었고, 모르는 걸 시도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 경제적 기회비용을 날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한 내 행동의 시기가 늦었다.
꿈이든 좋아하는 일이든 찾기가 쉬울까? 삶에 그런 방법이 존재한다면 인류 역사에 이미 밝혀졌을 테다. 길 위에서 보낸 시간 동안 느낀 것은 행동해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행동이 100% 결과를 보증하진 못하지만, 하지 않으면 알 수 있는 방법을 나로선 알지 못한다.
하고 싶은 욕망이 많다고 간접 경험을 직접 경험과 같은 수준으로 둘 순 없다. 나 또한 해 보지 않았더라면 알았을까? 안 해봤으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차의 의미를 단순 음료로만 보는데 그쳤을 거다. 관심에만 머물렀다면 누군가에게 들려줄 내 이야기는 폭이 좁은 경험으로 남아 그냥 바퀴만 굴리다 집으로 돌아온 모양새로 남겨졌을지도 모른다.
지금 알게 된 것도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변한다. 이러한 삶 가운데 나를 살피기 위해, 다르면서도 같은 질문을 앞으로도 계속 나 자신에게 필요한 질문인 것 같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