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
언제부턴가 유튜브에서는 어떤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나 외국인의 리액션 영상이 인기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유독 한국인만 눈치의 민족이라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외국인들도 동일한 콘텐츠를 생산 소비하니까.
이렇듯 어떤 주제에 대해 특정 대상의 반응이 궁금한 것은 사람인 이상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러한 콘텐츠에 재미를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넘어선 의외성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평소 먹는 김치를 두고 한국 사람이 리액션하는 영상을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궁금해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반면에 그 대상이 외국인이라면 영상의 주목 정도는 전자와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의 반응을 볼 수 있다는 것, 곧 익숙한 생각을 넘는 의외의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여행은 틀에 박힌 곳을 벗어나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의외성이 넘치는 공간과 상황으로 날 데려가 리액션하게 만든다.
이란을 끝으로 중동국가 여행을 마쳤다. 이란 출국 도장을 받고 두 나라의 경계선에 발을 내디뎠다.
아, 마침내 아르메니아!
국경선을 넘자마자 그 자리에서 입고 있던 긴 바지를 벗어던졌다. 몇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란 군인들이 보고 있었음에도 난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정말 상쾌했다. 그 행동은 이란에서 침해받은 자유에 대한 내 나름의 시위이기도 했다. 소박(?)했던 시위 덕분일까? 무표정했던 이란 군인들은 날 보고 웃었고, 나도 군인들을 보고 웃었다.
아르메니아 역시 이란처럼 낮 온도가 40도를 넘었다. 그 더운 상황에 이란처럼 긴 바지만을 고수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아르메니아는 이란처럼 입을 옷을 강제하지 않으니까. 내가 치마를 입고 돌아다녀도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바지를 갈아입고 나서야 이슬람 국가 여성들이 외국에 와서 히잡을 벗어던질 때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여름 아르메니아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아르메니아 전체의 평균 고도는 1800미터. 곧 내가 겪어야 할 고생의 높이이기도 했다. 더위의 수준도 예상을 넘었다. 아르메니아가 무려 섭씨 60도를 여러 차례 넘은 지구 상 가장 더운 지역으로 신기록을 세우기도 한 곳임을 알았을 땐 입국한 지 한참이 지나고 나서였고 힘든 게 전부 끝나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아르메니아의 높은 산을 끼고 길을 오를 땐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이란-아르메니아 Nourdoz 국경은 그나마 고도가 낮은 해발 650미터였지만 꼭대기는 2200미터를 넘었다. 이보다 더 힘든 곳도 지나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리막길 없는 30km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80kg가 넘는 짐을 끌고 이동하는 것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내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해수면부터 시작해 한라산 꼭대기까지 이동하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엔 주변의 돌산과 하늘을 볼 여유라도 있었으나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온몸으로 악을 써가며 자전거를 끌어야 했던지라 발목과 종아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어깨와 목 뒷근육으로 이어지는 통증에 눈물이 찔끔찔끔 날 정도였고 곧 손목과 팔로 이어지는 힘줄에 엄청난 저림이 느껴졌다. 게다가 40도를 넘었던 낮 시간의 가혹한 햇빛은 피부를 찌르듯 쪼아댔으니... 자전거를 미느라 고개를 숙이며 아스팔트에 떨어진 땀방울을 세는 시간은 고생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세계일주 모든 기간 중 고통의 순으로 꼽자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이란에서 날 도와준 알리의 어머니가 병을 앓고 있던 터라 갖고 있던 강력한 진통제를 모두 주고 온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내가 먹을 진통제가 없어서 통증 때문에 이동은 더 느렸다. 결국, 하루 만에 정상에 다다르지 못하고 산 중턱에서 캠핑을 했다.
산 정상에 가까울수록 주변은 서늘해졌고, 얼마 안가 눈앞이 안개로 순식간에 흐려졌다. 방금 전까지 구름이었던 녀석들이 안개로 내 뺨을 스치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펄펄 끓었던 몸은 기분 좋게 식었고 그 짧은 시간은 정말 황홀했다.
고지대로 올라가면서 만난 비가 더 굵어졌다. 어디서 나타난지도 모를 양 떼 무리가 도로를 덮었고, 덕분에 나의 이동도 느려졌다. 어차피 길엔 비 피할 곳이 없어서 그냥 맞아야 했다. 몇 분 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박까지 내려 앞을 제대로 보기조차 쉽지 않았다. 하루 만에 날씨가 여름에서 겨울을 오갔다.
전날 텐트를 세차게 때린 비로 인해 수면 시간이 짧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로 이틀간 내 몸무게보다 더 많은 짐을 끌면서 산을 오르다 보니 지칠 대로 지친 몸은 땀으로 절어있었고 내린 비로 신발까지 몽땅 젖었다. 우의를 입었음에도 우박은 내 볼기짝을 사정없이 때렸다. 몸에서 쥐어짜 낼 힘이 없었다.
그런데 우박이 얼굴을 정신 차리라는 듯 친절하게 때려서일까? 고지대에서 급변하는 날씨 속 미묘하게 내 마음도 변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만 해도 힘 빠진 거지꼴 모양이었는데 우박에 맞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나니 웃음이 터졌다. 뭐가 재밌었던지 이 상황을 즐기며 킥킥대고 있던 나를 보았다. 그 순간 폭발하듯 느껴지는 생기에 살아있다 느꼈다. 그 느낌에 너무 생생해 예상치 못한 에너지가 솟았달까? 뺨을 우박에 내어주며 변하는 나의 감정을 관찰하며 반응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감정 속 감정을 본 느낌이랄까. 폭발하는 생기를 느꼈던 그때, 지금 이 순간의 고생에 살아있다고 느끼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극도의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외쳤다!
"으아~!! 내(나) 진짜 싸라있네!!!!"
내가 모르는 장소, 그 이틀간의 오르막 길에서 겪은 우박을 맞으며 느낀 나의 리액션은 그랬다. 내가 예상했던 폼나는 모습이 아니라 꼬락서니 초라한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다시 하라고 해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니까. 다시 한들 이때와 같은 감정을 똑같이 경험할까? 그렇지 않기에 이때의 경험이 값진 거라 생각한다.
아는 사람도 없고, 잘 모르는 곳에 날 두는 것은 때론 두려움을 품게 한다. 그러나 그곳에 날 두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나를 볼 수 있다. 사회적인 관계에서 쓰는 가면조차 필요 없는 그곳에서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생각하지 못한 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순간이다. 계산된 것이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롯이 내 모습 그대로를 알 수 있는 때다.
낯선 곳에 날 두면 안다.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나를, 모르는 나를 볼 수 있다. 난 처음 겪는 상황 속에서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나의 모습을 보았다. 별로 근사하진 않아도 분명 나의 모습이다.
그 낯선 곳을 두 바퀴로 지나며 나의 찐 모습 하나를 발견했고, 진한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