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가 좋아?

성소수자들 위한 작은 이해심

by 아스팔트 고구마

2000년 9월, 유명 연예인이 커밍아웃을 했다. 당시엔 엄청난 이슈였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일을 개인의 '취향' 정도로 여기는 정도가 되었다.


내가 느끼는 바는 우리나라는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해 표면적으로 관대한 척 하지만, 속마음과 사회분위기는 우호적이지 않다. 갑작스레 자기의 연인이, 자식이나 남편, 아내가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다며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본인이 받는 충격은 어느 정도 될까? '취향'이라는 말로 전부 설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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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바에서 친구와 설정샷을 찍던 중 바로 앞 할아버지가 내 손을 만지며 'You are so sexy' 라 말했다. 노인 공경차 자리를 피했다. 캄보디아 프놈펜


여행 중 만난 외국인들 중엔 자기의 성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화나 행동으로 은근히 상대에게 표현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외모를 스캔만 하면 또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는데 여행 초기 나로선 쉽게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소수자들(이 단어도 후에 바뀌지 않을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왜 남자가 남자를 좋아할까?'






세계 어디를 가든 동성애자는 꼭 한 명씩은 만났다. 가장 놀랐던 곳은 바로 중동에서의 기억들이다. 이슬람을 믿는 그들이라고 동성애자가 없을 거라 생각한 내가 고정관념 속에 있었던 게다.



P1520616.JPG 낙타 농장에서 캠핑한 다음 날. 날 초대한 그 사람을 의심 없이 믿었다. 오만 소하르


오만 소하르 여행 중 낙타 농장에서 캠핑을 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낙타 밥을 주려는 한 남자가 왔다.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고 오만에 오고 나서 자주 겪은 것처럼 초대에 의심 없이 응했다. 그의 집에 들어섰을 때 싸한 느낌이 스쳤다. 방에는 누군가 자고 나서 정리해놓지 않은 이불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옷가지들이 보였다. 오만에서는 집안 여자를 손님에게 보이지 않는 문화이기에 손님을 위한 공간은 보통 따로 구분해 놓는다. 그의 집엔 여자가 보이지 않았기에 다른 곳인가 싶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묘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그 사람.


전날의 피로함이 여전히 있었기에 잠시 누워 있고 싶었는데 나를 초대한 그가 내 옆으로 바짝 붙어 물었다.


"더운데 샤워할래? 옷 좀 벗지 그래?"


아침은 선선했던 데다 오는데 땀도 안 흘렸는데 뜬금없이 무슨 소리? 그의 재촉에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바로 물었다.


“Are you gay?"


방금 전까지 대화를 잘 주고받던 그는 갑자기 영어를 잘 못한다는 헛소릴 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내게 마사지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일그러지는 내 표정을 의식도 하지 않았던 걸까? 갑자기 자기에게 좋은 마사지 오일이 있다며 바로 눈앞 주방에 놓여있던 식용유를 가져왔다. 이 오일 정말 최고라면서 엄지를 추켜올리며 마사지를 해주겠다는 소리에 순간 그의 면상을 갈기고 싶었다.


'이 XX가 돌았나?'


똥 씹은 얼굴로 이곳을 떠나겠다고 했더니 그의 집으로 오기 전에 찍었던 낙타와 본인의 사진을 모두 지워 달랜다. 탈출하듯 그의 집을 떠난 후 다른 오만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겪은 일이 사실이라면 그는 죽은 목숨이라고 했다. (오만을 비롯한 아랍지역 대부분은 동성애가 불법이며 최소 징역 감이다.)



P1520626.JPG 내 모양새가 이런데... 그 사람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군


사실 사진 하나를 남겼는데, 사람 목숨 한 명 살린 셈 쳐야지. 그는 목숨을 내놓고 내게 그의 성욕을 풀고 싶었을까? 그가 말할 때의 눈빛을 묘사하려니 퇴폐스러워 설명하기가 거리낀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상상도 못 한 일을 경험했다.






이란 페르세폴리스 여행을 마치고 초대받은 친구 알리의 집으로 가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갑작스럽게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서더니 덩치 좋은 남자 몇 명이 차에서 내렸다. 쫙 달라붙은 티셔츠,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동작과 말투로 전해지는 느낌은 100% 게이였다.


내 얼굴 가까이 대고 페르시아 말을 하는데, 알아듣지도 못한 말에 뭐라 반응을 해야 하나. 상대의 느낌이 좋지 않아서 두 팔과 어깨를 들어 올리며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니 주저 없이 입에서 외치는 소리!


“sex! sex! sex!"


거침없는 그들의 말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더군다나 이란은 이슬람 국가인데 이렇게 애들이 막 들이대도 되나 싶어서.


'아쒸, 깜짝이야! 뭐야, 이 미친놈들은?'


그 남자들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많이 쫄았다. 덩치가 나보다 더 컸던 데다 복실한 털로 덮인 팔뚝 근육은 날 금방 제압할 것 같아서. 그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 시치미를 떼면서 카메라를 꺼냈다. 몇몇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댔더니 금세 얼굴을 피해 돌리고선 차를 타고 가버렸다.



P1540957.JPG 남자들이 이렇게 무서웠던 적이 있었을까? 이란 페르세폴리스


오만에서 겪은 사건이 지난 지 불과 한 달도 안돼 벌어진 일이다. 상황이 무사히 마무리되긴 했지만 내겐 마치 내겐 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가 이랬을까 싶었다.






자신의 경험대로만 세상을 보면 문제겠지만 내가 겪은 경험들은 강력하게 불쾌한 것들이라 색안경을 쓰고 볼 수밖에 없었다. 여행 중 다행히도 매너 좋은 성소수자 남자들을 여럿 만났다. 양해를 무릅쓰고 질문을 했다.


“나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왜 남자가 좋아? 이해를 좀 해보고 싶어서.”


그들의 대답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자의식이 생길 때부터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대로 살아온 사람,

자기 주변 환경이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환경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 자연스럽게 접한 사람,

어릴 때 가까운 친척이나 동네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해서 이쪽 세계에 대해 알게 된 사람,

나이가 들면서도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다가 남자와 여자를 다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양성애자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사람,

자기가 동성애자임을 알기 전엔 혼란스러웠다가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져서 이후 완전히 자기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


상당히 많은 수가 그 과정을 지나칠 때 인생의 힘든 시간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경험만으로 판단했다면 이런 부분의 이야기는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중동에서 겪은 경험만으론 엄청난 혐오감만 있었을 테지만, 그렇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과의 대화는 나의 경험 지식을 넘어선 실제 당사자들의 이야기였다.




P1240167.JPG 그들의 감정은 자연스러움일까, 계발된 욕망일까. 그 사람이 보내준 한잔의 음료를 두고 생각에 빠진다.


한참 시간이 흘러 한국인 남자 친구를 파트너로 둔 외국인 친구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한국에서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많은 성소수자들이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 문화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커밍아웃이라도 하면 사회적 불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해."


그의 말에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의 행동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성소수자나 아닌 사람들이나 모두 이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쉬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 주제에는 종교, 인권, 정치, 사회 규범 등의 여러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고 있다. 혐오 대 인권의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음도.


이걸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천성일까 아닐까? 과학으로 전부 설명이 될까? 안 좋은 경험을 겪은 나로선 그들의 입장을 대변은 못하지만,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보니 작은 이해심을 갖고 성소수자들을 대할 이유는 생긴 것 같다.


경험이 선명한 결론을 갖게 해 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번만은 예외인 듯싶다. 내게 이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하고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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