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 대한 두 개의 감정
자전거 여행자들이 아프리카 대륙 종단 중 최악으로 꼽는 나라, 에티오피아.
아프리카 종단을 계획하며 루트상 거쳐야 하는 나라였지만, 난 아프리카에 오고 나서도 고민을 했었다. 여행자들 특히 자전거 여행자들에게는 돌을 던지거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소매치기나 강도질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티오피아에서 사고를 겪은 사람을 만났기에 주저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커피에 대한 이유 하나만으로 에티오피아의 여행을 강행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도착한 지 며칠이 안된 날이었다. 복잡하고도 꼬질꼬질한 느낌을 주는 동네를 라이딩하고 있었다. 꼬마 하나가 뒤에서 접근하더니 내 핸드폰을 쏙 빼갔다. 바지 주머니에 끼인 핸드폰을 잡아당겼던 터라 나는 자전거와 함께 넘어졌고 그 꼬마는 핸드폰을 들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한 1초간 장난인가를 의심했지만 달아나는 모양을 보고 자전거 핸들을 돌려 꼬마를 잡으러 나도 뛰었다. 백업해 놓지 않은 수개월의 여행 기록들이 핸드폰 안에 담겨있었기에 난 그것을 반드시 찾아야 했다.
'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자전거를 끌면서 뛰어갔던지라 거리는 오히려 점점 더 벌어졌다. 이름 모를 동네로 들어섰다. 거리가 도저히 좁혀지지 않자 난 자전거를 내팽겨 치고 꼬마를 향해 뛰었다. 마침내 막다른 길로 들어섰다.
'잡아야 한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거리를 좁혀가면서 보니 하수구가 나왔고 그 꼬마는 고개를 돌려 날 스윽 살피더니 하수구 아래로 쏙 들어갔다. 난 내 눈앞으로 다가오는 하수구. 0.1초간의 주저함이 있었으나 짜증과 동시에 하수구로 뛰어들었다. 들어가자마자 눈앞에는 음식찌꺼기와 쓰레기 더미가 넘쳐나고 있었다. 똥냄새와 썩은 내가 진동하고 있었고 몇 걸음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내 손과 신발은 이미 오물에 푹 잠겨 있었다. 그 냄새를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하수구로 따라 들어갔을 때 벌써 저만치 앞선 꼬마는 시궁창의 끝을 통과하고 있었다. 내가 시궁창을 나올 무렵 그 꼬마는 이미 사람들 사이로 숨어버렸고 나는 결국 핸드폰을 찾지 못했다.
시궁창에서 나오자마자 동네 사람들이 내게 모여들어 둘러쌌고 알 수 없는 말을 해댔다. 난 극도로 짜증이 난 상태였다. 마침 꼬마와 비슷한 색의 옷을 입은 사람이 내 앞에 있던지라 그 사람을 오해해 몸싸움을 벌였다. 성급했던 나의 잘못이었다.
'아, 끝인가. 사진, 메모한 기록 등 몇 달 치의 기록들을 몽땅 도둑맞아버렸다.'
혼란한 상황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꼬마를 잡으러 간 곳은 빈민촌이었다. 집은 다 낡아 빠진 데다 사람들의 옷은 우리가 헌 옷 수거함에 넣는 옷보다 못한 넝마의 수준 것들을 걸치고 있었다.
'아차! 자전거!!!'
그곳을 둘러보는 것도 잠시, 주변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시궁창으로 뛰어드느라 자전거를 던져 버렸던 곳으로 다시 급히 돌아왔다. 해발 2000미터대의 아디스 아바바에서 뛰었으니 힘든 것도 당연지사. 가쁜 숨을 몰아쉬며 땅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그제야 내 모습이 보였다. 하수구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내 모습은 정말 더럽고 불쌍했다.
작은 동네에 갑작스럽게 외국인이 나타나 짧은 시간 우당탕 하며 벌어진 일에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와 나를 감상하듯 둘러앉았다. 그리고선 내게 말을 거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난 전혀 대화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상황을 직감한 듯한 한 노인이 다가와 환타 한 병을 건네주면서 내 어깨를 다독였다. 고마움과 동시에 짜증과 분노가 가득한 마음으로 그 음료를 손에 쥐었다. 절망적인 표정으로 앉아있는데 동네 사람 몇몇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동네 사람이 손에 낯익은 물건을 들고 왔다. 그것은 바로 내 핸드폰! 알고 보니 소매치기가 도망가던 중에 어딘가에 던져놓고 간 것을 그 사람이 가져왔다.
동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난 안도감을 느꼈다. 그 핸드폰이 없었다면 내 아프리카 여행 기록의 절반 이상은 제대로 남아있지 못할 터였다. 그 마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짜증이 솟구쳤다. 도대체 이 상황이 뭐란 말인가?
놀라운 것은 앞선 사건을 겪은 당일 날에 또 한 번 소매치기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아디스 아바바에서만 여러 차례 소매치기를 만났다. 경험을 했음에도 믿기지 않는 것은 소매치기를 시도한 사람이 대부분 10대 초반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 또래 아이들이 길에서 본드통을 드러낸 채 흡입하거나 마약성 식물인 차트를 씹는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환각제에 취해있는 사람이 어린 꼬마라니. 그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10살 언저리의 아이가 '돈과 욕망에 미쳐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 태어나 그런 눈빛을 한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영화에서 조차도 없다. 너무 거짓말 같은 그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고 얼굴을 긁다가 손톱에 끼여 남아있던 하수구 냄새를 맡고 토할 뻔했다. 손발톱에 잔뜩 낀 똥 지린내를 박박 씻어냈지만 냄새가 빠지는데 이틀이 넘게 걸렸다. 사람 몸의 냄새 보존력이 그렇게 좋은지 그 하수구 냄새가 그렇게도 지독한지 나도 처음 알았다. 그 냄새가 역해서 그리고 내 몸 구석구석에 찌들어 있는 냄새를 씻어내며 짜증과 동시에 피식거리는 내 모습에 또 한 번 웃음이 나왔다.
에티오피아는 자국의 상황이 좋지 않았음에도 6.25 전쟁 때 우리나라에 지상군을 파병한 유일한 아프리카 나라다. 내게 에티오피아는 세계일주 중 좋은 기억이 가장 적은 나라였다. 사고 후에도 한참 동안 마음이 안 좋았고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좋은 감정은 별로 없다. 그러나 이 경험을 곱씹어가며 생각이 바뀐 부분은 있다.
이 나라의 문제와 그 배경을 생각하다 에티오피아의 역사와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들여다봤고 생각지도 않은 연민이 생겼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우리나라에 전투병을 보낸 아프리카의 유일한 나라 에티오피아. 사고 당시엔 미움만 가득했었고 이 나라 자체에 대한 비전 없음이 그저 이들의 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처지에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나의 경험은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사건을 잘 마무리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시궁창으로 점프한걸 원치는 않았지만 그 덕분에 에티오피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날 이후 불편한 마음이 생겨 길에서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구두 닦는 소년과 대화를 했다. 카페에 데려가 케이크와 음료를 먹이고 닦을 필요도 없는 새 검은색 운동화를 닦고 돈도 더 줘 보냈다.
이 여행은 쓸데없는 경험이 없다는 걸 알려줬다. 시궁창에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비위가 강한 녀석이란 걸 알았으니까. 그리고 어떤 경험은 평소라면 납득하지 못할 부분도 약간의 이해심을 갖게 만든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