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밥은 되고 싶지 않아
내 아프리카 종단의 시작은 짐바브웨였다. 아프리카로 가기 전 아프리카의 인프라가 과거에 비해 훨씬 발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내가 흙먼지나 진창길을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좋은 소식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짐바브웨의 주요 도시 간의 도로는 대부분 아스팔트 포장길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에 잘 포장되어 있어 보이는 도로를 달리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 인프라 건설에도 디테일한 손길이 중요하다는 것을.
짐바브웨 수도인 하라레 국제공항에서 나오는 길은 해외 국빈들도 사용하는 도로이기에 주변과 도로 상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그 외 지역의 도로를 달려보면 약간의 꼼수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그럴싸해 보이는 도로는 자세히 보면 듬성듬성한 아스팔트의 조밀도 때문에 틈이 많았다. 많은 짐을 싣고 달리는 내 자전거와 짐받이 모두 위아래로 자주 요동치게 만들었다.
자전거 바퀴가 울퉁불퉁한 지면과 닿을 때마다 상하로 받는 불규칙적 저항과 짐 무게까지 더해진 하중으로 인해 결국 짐받이는 부러졌다. 타이어는 금방 너덜너덜해졌고 준비해 간 새 타이어조차 며칠이 안돼서 종이처럼 찢어져버렸다. 포장된 아스팔트 틈 사이로 숨어있는 철심이나 뾰족한 가시는 볼 수도 없었기에 피하려야 피할 수가 없었고, 만나기만 하면 타이어를 뚫고 튜브에 구멍을 냈기에 더욱더 안 좋은 상황이었다. 덕분에 펑크 수리로 몇 번이나 멈춰 서야 했다.
짐바브웨에는 게임 파크(Game Park)라는 곳이 있다. 게임이란 말을 현지 말인 스와힐리어로는 사파리(Safari)라고 부르는데 그 속 뜻은 야생동물을 보는 것을 넘어 사냥까지 하는 개념이다. 고로 게임 파크는 그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공원을 뜻하는 곳이다.
게임파크를 끼고 있는 도로는 낮에 차가 다녀서 별 문제는 없지만 밤이 되면 오가는 차는 줄어든다. 그리고 그곳은 사자나 코끼리 등의 야생 동물들이 움직이는 곳으로 변한다.
문제는 짐바브웨에 오기 전 내가 이것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 도로 상태에 대한 대비를 한다고 해 왔는데 예상한 환경보다 나빠서 대비한 새 타이어마저 전부 찢어져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게임 파크 지역의 야생동물들은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여기저기로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게임 파크를 지나칠 땐 해가 저물어 갈 때였고 그때 펑크가 또 나는 바람에 결국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의 계획보다 몇 시간이나 이동이 늦었다. 해가 지기 전에 그 야생동물 구역을 빨리 벗어나야 했지만 언덕길까지 나오는 바람에 이동속도는 더뎠다.
도로에서 펑크는 또 났고, 지나가는 운전자가 "Hey! Are you crazy? This is Game park!"이라고 외쳤다.
'말만 하지 말고 좀 도와주기나 하지!!'
계획대로 되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해는 저물었고 위험 때문에 라이딩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잠시 서기라도 하면 사자가 달려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동네 이름에도 사자굴(Lion Den)이라는 곳이 있을까. 무려 어둠 속에서 2시간여를 쉬지 않고 달렸다. 식수 구하기조차 힘든 곳이었지만 가득 채워놓은 물병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을 보면서도 차마 줍기조차 두려워 계속 달리기만 했다.
전날 만났던 현지인 친구 가족이 해준 말이 기억났다.
타테 : 지난 몇 년간 야생동물에 사람이 죽은 적이 몇 번 있는데 다행히 밤이었어. 낮엔 딱 1명만 사고가 났거든. 그러니까 낮 시간엔 거의 문제가 없을 테니 괜찮을 거야. 그렇지 엄마?
타테 엄마 : 그래, 맞아 뉴스에도 났었어. 그런데 밤에 정말 조심해야 해. 절대! 절대! 마을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라고.
신문까지 찾아서 내게 보여줬고 단호한 표정과 어조로 말한 기억이 났기에 무서웠다. 정말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멕시코 강도를 만난 이후 그렇게 열심히 페달을 밟아본 적은 없었다. 아프리카에 언덕길이 그렇게 많다니. 그날따라 그 언덕길이 왜 그렇게 화가 나던지.
어둠 속을 달리며 반대편에서 혹은 뒤쪽에서 화물 트럭의 불빛이 보이면 그 차가 지나가는 동안만이라도 안정감을 느꼈다. 그때만이라도 야생동물이 도로로 달려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둠 속 저 멀리 보이던 불빛을 따라가니 나름 지도에도 표시된 동네, 마쿠티(Makuti) 검문소가 보였다. 나는 엄청난 땀에 절어 지친 채 이곳에 도착했고 사람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했다. 어둠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외국인 여행자의 자초지종을 들은 검문 경찰들은 나보고 미쳤다면서 깔깔댔다.
멕시코에서 권총 강도를 만났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공포의 시간이었다. 사람에게 빌면 목숨이라도 살려줄 가능성이라도 있지, 사자에겐 팔 하나만 주겠다고 협상 가능한 일이 아니니까. 사자가 나를 만났다면 적어도 한국산 사람 맛 도시락 하나 맛있게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죽지 않아서 이런 기억도 추억할 수 있고, 글로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다시는 그리고 절대로 경험하고 싶지 않다. 낯선 경험을 하려면 낯선 곳으로 가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그곳이 좋은 경험을 하게 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경험해보고 나서야 말할 수 있는 그 기억. 지금에서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