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클럽, 히잡, 이슬람
사람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는 과학이론처럼 직접 겪기 전까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사람의 세계관은 이상과 현실을 분명히 겪으며 형성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믿음이 현실에 맞지 않음을 알면 결국 2가지의 방향으로 나타난다. 자신을 바꾸든 세상을 바꾸든.
매스컴의 영향 때문이었을 거다.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을 여행하기 전만 해도 내게 이 문화권은 엄격함, 융통성 없음, 진지함을 넘어 과격함과 극단적이란 이미지 또한 갖고 있었다. 특히 우리 문화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이슬람 문화는 일부 오해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차이는 과장되기 쉽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극도의 친절함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불편함을 둘 다 겪은 이슬람교 국가들의 여행. 그곳 여행은 내가 세계일주를 떠난 이유 중 하나인 인생의 종교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는 튀르키예는 2002년 월드컵 3-4위전의 감동적인 경기, 6.25 전쟁 때 참전한 것 말고 개방된 이슬람 국가 정도로 알고 있었다.
입국 후 며칠 뒤 촐루(corlu)로 들어설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나서였다. 마침 로드 바이크 라이더 한 명이 옆을 지나며 내게 따봉을 날리던 차 그에게 캠핑할 만한 곳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텐트 치기에 적당한 공원을 안내해 줬고 고맙다는 인사와 작별을 하려고 했는데, 그의 친구인 것 같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큰 덩치에 돌깡패 같은 인상을 한 그는 내게 호텔로 가자고 했다.
나 : 지붕만 있으면 나에겐 호텔이나 다름없으니 괜찮으니 염려 안 해도 돼.
덩치남 : 내일 비가 오니까 여기보단 호텔이 나을 거야.
나 : 걱정하지 마 지붕 있는데 뭘. 여기 보니까 아주 넓고 두꺼워서 비와도 끄떡없겠다.
정확히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해하던 차 그 덩치남이 영어를 할 수 있는 현지인에게 전화를 걸고 내게 전화를 바꿔줬다.
전화 속 현지인 : 튀르키예에 온 걸 환영한다!!! 여긴 튀르키예야, 우리의 환대를 받아. 호텔로 가시게 친구~!
나 : 나 때문에 괜히 안 그래도 된다. 나 하루만 묵고 내일 바로 이동할 건데?
전화 속 현지인 : 우리가 그러고 싶어 그러는 거니 괜찮아. 내일 비 온대. 호텔로 가.
갑작스럽게 이해가 잘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난 그들이 잡아준 호텔로 갔다. 너무 추운 날씨에 비는 눈으로 변했고 많이 내린 탓에 며칠을 머무르며 튀르키예 현지인의 모습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다.
날 도와준 친구의 이름은 뷜렌트. 그를 통해 현지인 친구를 사귀며 시간을 보냈다. 밥을 먹고 그와 함께 쿵쾅대는 음악 소리를 따라 잠시 들렀던 곳은 바로 클럽이었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춤추던 사람들, 그리고 술 마시는 모습을 목격했다.
클럽이 있다는 것에 놀랐지만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부분은 클럽 안과 밖을 왔다 갔다 할 때 히잡을 벗고 쓰던 여성들이었다. 문 앞에선 미간에 주름을 꽈악 담아가며 담배를 시원하게 빨아대고 있었다.
'응!?!?!? 이거 뭐지!?!?!! 우하하하하!!!!'
각인된 선입견 속 긴장이 풀린 채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선 내 앞의 광경을 계속 바라보았다. 내가 알고 있던 뉴스 속 이슬람과 현재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의 차이가 커서. 이게 개방된 이슬람인 건가? 히잡은 안 쓰면 끝인걸, 클럽을 오갈 때 벗고 쓰는 건 또 뭐람?
뷜렌트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튀르키예 술을 내게 대접했다. 처음 마셔본 라키(Raki)라는 술은 보통 알코올 도수가 40도 정도 되는 투명한 원액이다. 보통 물에 섞어 마시는 이 라키는 물을 섞음과 동시에 하얀 밀키스 같은 색깔로 변한다. 술을 나눠 마시며 앞선 클럽 방문에서 든 생각이 다시 났다. 나야 무슬림이 아닌 데다 이들의 문화니 그러려니 하지만 이슬람교 하면 갖고 있는 '금주'라는 이미지 때문에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선지자 무함마드는 10살도 안된 어린아이와 결혼했어. 술도 마셨고. 무슬림인 우리는 그걸 다 알고 있지. 믿고 있는 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튀르키예에서 만난 현지인들에게 이슬람과 술, 할랄과 하람(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허락된 것과 허락되지 않은 것)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이 대답했던 부분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답이었다. 다른 중동의 무슬림들이 튀르키예에서 들은 것과 같은 대답을 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대답에 과한 해석을 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본 이슬람이란 종교를 대중매체를 통해 새겨진 대로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노릇이고 겨우 여행하며 본 게 전부였으니. 한편으론 다른 나라의 해석이 정말 옳은지는 나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튀르키예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나라다. 오스만 제국 시절을 지나 공화국이 되면서 튀르키예의 국부라 일컫는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이슬람을 "낡고도 극복해야 할 이데올로기"로 여겼다. 튀르키예를 여행하다 보면 세속화된 모습을 찾기 어렵지 않다. 이슬람 국가임에도 어렵지 않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각종 범죄도 존재한다. 심지어 이슬람 국가에는 없을 것 같은 매춘도 공공연하다.
원래 이슬람의 모습이 그렇지 않은데 후대에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인지, 원래 종교는 엄격한데 사람들이 그 가운데 비집을 틈을 찾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앞서 내가 들었던 대답처럼 둘 사이의 합의점을 부지런히 찾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벌써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랍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종교 이슬람. 과거와 같은 전쟁이 없는 지금 튀르키예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왕래하며 그 가운데 새로운 문화와 가치들도 오간다.
튀르키예는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슬람 국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은 생경한 나라로 남아있다. 엄격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문화가 내가 생각하던 느낌의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딱딱하고 융통성 없을 분위기라 여겼던 곳에서 오히려 인간다운 모습 덕분에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더욱이 튀르키예에서의 경험 덕분에 더 보수적인 중동 국가들을 여행할 때 이해심을 갖고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여행을 출발했을 때, 무엇보다 나의 종교관에 대해 대한 명확한 관점이 서길 바랬다. '내가 믿는 종교나 믿음에 대해 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 누구도 피해나갈 수 없다. 신이 없다고 믿는 것도 또 다른 믿음이니까. 튀르키예를 보면서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문하면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난 내가 믿는 대상을 내가 제대로 이해는 하고 있긴 한 걸까? 진실이 아닌 사람들이 합의한 대상을 믿고 있는 건 아닐까? 난 도대체 뭘 믿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