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처 목록이 지워지는 걸 보며
얼마 전, 단톡방에서 싸움이 났다. 싸움의 주인공은 나와 어떤 친구였다.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상대에게 내 분노가 더는 참아지지 않는 게 문제였다. 인스타그램에 여행을 전시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찍은 사진을 올리는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미운 소리를 톡 쏘았기 때문이다. 싸움이라기보다는 나의 일방적인 비난이었다. 백신 부작용이 무서워 맞지 않을 거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주말과 연휴를 이용해 국내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나는 놀러 다닐 줄 몰라서 다니는 줄 알아?
거리두기 4단계로 뒤숭숭한 상황임에도 제주도에 다녀왔다며 자랑스럽게 단톡방에 여행기를 늘어놓는 모습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할머니를 못 본 지도, 가까이 사는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하는 것도, 공기 좋은 곳에 나가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언제가 마지막인지 모를 정도인데. 일과 집, 집과 일, 심지어 커피도 매번 테이크아웃. 누구는 조심하고 누구는 조심하지 않고. 공평성을 따질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전체적으로 규제해야 할 거면 똑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지 않으니까 다들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 같고.
저기, 너 제주도 다녀온 지 일주일도 안 됐어. 규제를 하는데도 그걸 지키지 않는 건 너잖아?
개인의 자유라는 말로 포장하며, 방역을 잘 지켜 다녀왔다는 말로 자신을 변호하는 모습에 질려버렸다. 내가 아는 친구는 이런 애가 아니었다. 잘못된 일에 대해 분노할 줄 알고, 그런 사람들에게 과감히 일침도 날릴 줄 알았다. 그래서 내 친구였고, 그랬기에 오랫동안 연락하며 지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상대는 변했고, 나는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다. 모든 게 변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는 그렇지 않을 거라는 내 바보 같은 생각이 뒤통수를 휘갈기는 순간이었다.
이런 애랑 내가 굳이 알고 지낼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 너는 그렇게 살아라 생각하며 싸움을 찝찝하게 마무리했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전처럼 자유롭게 여기저기 다녀도 괜찮을 때가 오더라도 이 친구는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추억을 공유하고 시간으로 숙성된 관계이기에 어떤 상황이 와도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바보같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내가, 이상한 건가?
화가 다 사그라들기도 전에 또 다른 친구가 SNS에 여행 사진을 올렸다. 날이 좋다며, 마스크가 답답하다며. 안 그래도 친구 없는데 여기서 더 쳐내야 하다니. 삭제해야 할 연락처가 오늘도 하나 더 생겼다. 코로나로 사람의 밑바닥까지 보게 될 줄이야. 날아간 부메랑이 빨리 돌아오면 좋겠다. 제 손으로 힘껏 날린 부메랑이 얼마나 강하게 부딪힐지 모르는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