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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Oct 23. 2021

뮤지컬 HADES TOWN 하데스 타운 20211023

어쩌면 우리가 에우리디케일지도 몰라요












  1. 오늘을 기다린 이유가 있다.


  <하데스 타운>의 모든 캐스팅은 오늘 관극으로 클리어 했다.(오르페우스 역은 시우민으로 고정한 상태임 주의. 다른 분들도 궁금하긴 한데... 제가... 네.... 이런 덕후라서 기회가 없네요ㅠ) 극을 보러 다니게 된 지 근 한 달 만의 일이다. 다른 이유로도 오늘을 기다렸는데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찐 부부 페어"로 극을 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본격적으로 보러 가기 전 유투브 검색을 통해 김선영 배우님과 김우형 배우님이 부부라는 걸 알게 되었고, 운이 좋으면 한 번 정도는 찐 부부 페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 날이다! 물론 다른 캐스팅으로도 극은 충분히 재미있고 실력도 다들 엄청나셔서 따로 선호하는 캐스팅은 없지만,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진짜 부부로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에 기대를 엄청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저께 김선영-김우형 페어 꿈까지 꿀 정도였다. 


http://naver.me/GHEyMbVZ


  생각보다 김우형 배우님이 엄청 젊어 보이셔서 하데스 역을 어떻게 소화하실지 궁금하기도 했다. 김선영 배우님의 페르세포네는 디테일이 엄청나셔서 공연을 재밌게 봤었고, 김우형 배우님의 하데스는 처음이었다.


  먼저 세 하데스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양준모 배우님은 마왕, 지현준 배우님은 회장님, 그리고 김우형 배우님은 강한남자다. 휘어지지조차 않을 정도로 강한 하데스의 느낌이 물씬 났다. 지하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 같달까.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페르세포네가 지상에 가 있는 동안 외로움과 걱정에 휩싸여 위의 세계와 닮은 모습(뜨겁고 환한) 지옥을 만들어 그녀에게 선사한다. 의도와 달리 페르세포네는 지옥of지옥을 보고 기함했지만.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곁에 두기 위한 방법을 노래한다. 목에는 순금으로 본모된 사슬을 걸고 손목에는 번쩍이는 은 족쇄를, 주머니는 보석과 다이아로 꽉 채워 황금 줄로 옭아 매라고. 상대는 그걸 기꺼워 하지 않았지만, 그건 아마 표현에 서투른 하데스가 최선을 다해 페르세포네를 사랑하는 방법 아니었을까. 이제껏 본 극 중에서 페르세포네를 향한 사랑이 뿜뿜 잘 느껴졌던 건, 오늘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래도 진짜 부부라는 배경이 있으니 과몰입 될수밖에... 그리고 두분 넘 잘 어울렸다. 자잘한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더 많이 녹아 들어 있어서 극적인 화해, 화합 대마당이 더 행복하게 보였다.


  오르페우스가 <EPIC Ⅲ>을 부른 후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극적화해를 하게 되는데! 그리고 나서 둘은 함께 춤을 춘다. 서로 손을 잡고 팔랑팔랑 박자에 맞춰 같은 방향으로 걷다가,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의 손을 잠깐 놓아주면 페르세포네가 무대를 작게 돌고 다시 하데스의 품으로 돌아오는 구간이 있다. 오늘따라 이 부분이 마음에 오래 남았는데, 1년 중 반은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보내주어야 하고, 나머지 반만 자신과 함께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이 녹아 들어간 춤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가 어두운 지하세계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봐 걱정 했지만, 얼어 붙었던 '사랑'의 감정이 오르페우스의 노래로 녹아 내리면서 6개월 동안 페르세포네가 자신을 떠나 있더라도 꼭 다시 돌아온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페르세포네도 작게 무대를 돌며 나긋나긋한 손짓으로 주변을 따스하게 만들고는 다시 하데스의 손을 잡는다. 부부가 확실하게 화해하고 서로를 향한 감정을 되찾은 모습이 춤에 반영된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혹시 꿈보다 해몽이 아닐까... 싶었지만, 뭐 어때요. 제가 그렇게 봤어요.


  <하데스 타운>을 보러 가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그리고 날짜가 맞는다면 꼭 찐부부 페어 보아주세요. 분명 무대 위의 노래이고 배우들의 연기이지만 둘의 관계성이 배경에 깔려 있어 마음에 더 와 닿는 것 같다. 4차 티켓팅 때 일부러 두 분 페어 또 보고 싶어서 날짜 맞춰 예매 했는데, 그 날도 기대 된다.




  2. 볼 때마다 다르니 또 봐야죠


  똑같은 걸 또 보냐는 머글들의 질문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 볼 때마다 보이는 게 다르고 갈 때마다 느끼는게 다른데. 그리고 지나간 내 최애의 무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솔직히 시우민이 오르페우스 역에 캐스팅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냥 좋다기보다는 걱정도 됐다. 잘 한다, 못한다로 판단하기도 전에 아이돌이 뮤지컬 배역을 땄다는 사실만으로도 부정적인 시각이 뒤따르기 때문이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시우민 팬이고 팔은 안으로 굽으니 내 새끼는 잘 하겠지, 열심히 하겠지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격은... 정말 화가 난다. <귀환>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고. 그래도 내새끼만 생각하면서 덕질하자 마인드로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한 달 전의 나는 확신했다. 시우민은 분명 어마어마한 성장을 오르페우스로 보여줄 것이라고. 저번 주부터 그게 느껴졌다. 긴장이 반으로 줄고 여유가 배로 늘어 무대 위에서 완벽한 오르페우스가 되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노래로 극을 이끌어 가는데도 거기에 연기와 감정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있어 보는 내내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언제 이렇게 컸니...) 즐기며 사는거야! 하며 발을 쿵쿵쿵쿵쿵 구르는데 90년대 청춘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줄 알았다. 신이 나는데 그걸 드러낼 수 없으니 내적 댄스만 뿜뿜 하느라 힘들었다.


  <Wait for me> 넘버에서 초반에는 간절함이 느껴졌었는데, 점점 그 간절함은 강인함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에우리디케가 지하로 가는 기차에 타게 되며 오르페우스는 사랑을 잃는다. 밝아질 세상을 노래하며 뒤틀린 계절을 원래대로 돌려두기 위한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부를 줄만 알았던 순진한 청년이, 처음으로 상실을 겪게 된 것이다. '사랑'을 잃고 남은 사람의 아픔과 슬픔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오르페우스는 절망하며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가기로 한다. 그 절망이 밑바탕으로 깔린 채 부르는 노래가 <Wait for me>다.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기 위한 간절함을 담아 불렀던 노래는 점점 꼭 그녀를 데리고 오겠다는 강인함으로 변한다.절박하면 무너지기 쉽지만 강인하면 용기가 생긴다. 그 용기가 오르페우스를 멀고 험한 길을 걷게 된 에너지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EPIC Ⅲ> 부를 때 왜 그렇게 하데스 눈치를 보는지ㅋㅋㅋ 귀여워서 죽을 뻔 했다. 앞 한 번 안보고 하데스랑 기타만 번갈아 보며 '저... 이 노래 아세요?', '멜로디... 기억 나세요?' 하며 하데스의 추억을 살살 자극하는 오르페우스. 노래를 만들었다고 만들었는데 이 노래가 아니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멜로디 어디서 들었지? 하는 하데스의 말을 듣고 난 후에야 어깨에 가득 얹어져 있던 부담감과 걱정을 훌훌 털어내고 나비처럼 에픽을 부르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절정에 달하는 곳에서 오르페우슈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퍼진다. 보러 갈 때마다 최대 넘버가 달라지니 이를 어쩌면 좋나. 그냥 좋아해야지! 다음 공연에서는 어떤 넘버로 내가 눈물 글썽하게 될까?



  3. 할 수 있는 한, 미루고 싶었던 에우리디케의 이야기



출처 : http://www.segye.com/newsView/20211017507903?OutUrl=naver




  만약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가 마지막에 자신을 불렀던 걸 바로 깨달았다면 어땠을까. 에우리디케가 지옥을 향하는 기차를 타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주림과 추위를 버티고 싶지 않아 도망갔을까.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이제껏 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에서 사랑을 두고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던 에우리디케. 김환희 배우님의 인터뷰를 보며 이번 후기에서는 꼭 에우리디케 이야기를 써야지 생각했다.



  스스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강인하면서 독립적인 영혼을 지닌 오르페우스의 뮤즈 에우리디케



  <하데스 타운>을 본 후, 에우리디케의 소개 글을 읽었을 때 '뮤즈' 말고는 와닿는 단어가 없었다. 내가 극을 잘못 이해 한 걸까 아니면 한국어로 번역되며 에우리디케 캐릭터가 조금 바뀐걸까 고민했다.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지옥가는 길을 택하는 모습을 저렇게 표현한 거라면 잘못 된 문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김수하 배우님, 김환희 배우님 두 분의 에우리디케는 다르지만 닮아 있었다. 왜 다른 배역에서는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특성이 에우리디케 배우에서는 비슷함이 더 많게 느껴졌을까. 김환희 배우님의 인터뷰를 보고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나를 지켜야 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조차 나를 지켜주지 못하니 '나를 지키기 위해'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자.


  여자가 살기 힘든 세상이다. 분명 이 문장에 여자가 살기 좋아졌다,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천국이나 다름 없다며 반박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그 힘듦을 좀 더 쉽게 토로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이다. 전에는 이 문장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분위기였으니까. 하루가 멀다하고 뜨는 '여자'가 피해자인 소식에 매일매일 참담하다. 기사에 뜨지 않고 사라지는 여자는 얼마나 더 많을까? 기댈 곳은 없다. 불어오는 바람을 혼자 버티지 않으면 휩쓸려 멀리 밀려나거나 쓰러진다. 세상의 고달픔을 아는 에우리디케의 모습은 오늘까지 아등바등 살아남은 여자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이 삶에 대한 미움과 허망함. 이처럼 에우리디케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에우리디케가 봄이 오고 여름이 와도 도망치지 않고 오르페우스의 곁에 남았다는 건, 그만큼 그를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세상에 익숙하고, 바람에 익숙한 에우리디케가 힘껏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거다.


  에우리디케의 넘버 <Flower>는 하데스 타운에서 오르페우스를 그리워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오직 사랑하는 사람 오르페우스 뿐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던, 꽃이 가득한 화사한 세상으로도 볼 수 있다. 지옥의 고통에서 누군가 구해주기 기다리거나 바라기보다는 그저 그리워하는 마음을 노래한다. 하지만 꽃과 남자는 모두 변한다. 피고 썩어 떨어질 때까지. (노래를 하며 손짓으로 꽃이 피고 죽는 모습을 연기하는 에우리디케의 모습은 눈으로 꼭 봐야 합니다. 이렇게 글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님. 그리고 김환희 배우님이 여기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넘버 부르시는데 그 절절함이 말로 다 못해....)


  기댈 곳이 나밖에 없는 세상에서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가 유일하게 마음을 연 존재이다. 험난한 폭풍우 속에 노래를 만드느라 자신을 잊어버린 오르페우스였지만, 장벽을 넘어 자신을 데리러 온 오르페우스의 모습을 본 에우리디케는 다시 믿음의 싹을 틔우고 시들어버린 사랑의 꽃에 물을 주었을 거다. 하데스가 오르페우스에게 윽박지를 때도 에우리디케가 그 앞을 막아서며 그를 지키려고 하는데, 에우리디케에게 오르페우스는 저의 마지막 희망이지 않았을까. 삶이 밉고 허망할지라도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존재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이 오르페우스였을 것 같다.


  에우리디케는 <하데스 타운>을 보며 자꾸 '나'를 투영하게 되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좀 더 생각해보고 싶었고, 좀 더 에우리디케를 만나고 싶었다. 한 번 만나서는 상대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 특히 닮을수록 더 어렵고 힘들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에우리디케를 미루도 또 미뤘던 게 아닐까. 삶에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고 모질지라도, 운명의 여신의 장난에 놀아날지라도 '나'는 '나'를 지켜내고 또 지키고 싶은 '세상' 혹은 '오르페우스'까지 품에 안을 수 있을 것이다. <하데스 타운>의 에우리디케가 세상의 여자들에게, 혹은 극을 보는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 아닐까.



  4. 지옥에도 사랑의 붉은 꽃은 피어요.


  <하데스 타운>의 모든 등장인물은 힘껏 사랑한다. 극을 볼수록 그 사랑이 깊어진다. 가볍게 즐기고 왔던 초반과 달리 언제부턴가 나는 극 안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찾으려 애썼고, 그러기 위한 고찰의 과정이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다. 보고 오면 또 다른 사랑의 형태를 발견하고 혼자 좋아하며 브런치에 글을 쓰러 오겠지. 모든 장르에서 사랑은 절대 빠지지 않는, 질리지 않는 소재이다. 그리고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소재기도 하다. 붉은 꽃은 곧 그들의 사랑을 의미한다. 꽃은 어디든 피어 오른다.


  오늘도 5열에 갔다. 또오오5열(또 오열하러 오른쪽 5열에 갔다.) 오른쪽으로 극 치우친 중블이었는데, 역시 <하데스 타운>은 왼블이 진리다. 저번주에 확실히 느꼈다. 배우들의 표정과 동선을 더 생생하게 볼 수 있는 방향은 중왼블. (극 왼블은 11월이 되어야 가니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 해보겠다.) 물론 오블은 오르페우스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위치긴 하지만, 이제 비슷한 조건이라면 왼블에 갈 것 같다. 거기에 가면 시우민의 귀염뽀짝잘생긴 표정을 더 세세하게 볼 수 있거든요. 그리고 왼블이 좀 더 극에 집중할 수 있고 정신을 확 휩쓸어 가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다음 주에는 왼블이다. 이러다 엘아센 모든 좌석 모든 위치 다 찍고 올 거 같다. 내가 이렇게 뮤지컬에 진심이 될 줄이야. 정말 몰랐다. 매번 말하지만 진짜 몰랐다.


  그리고 오랜만에 최재림 배우님의 헤르메스! 자첫 이후로 처음이었다. 오르페우슈와의 호흡이 그 때보다 훨씬 좋았고 유머러스한 애드립이 늘어서 즐겁게 그의 깃털 아래에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배우분들 균형 맞춰서 골고루 보고 싶은데ㅠㅠ 일 때문에 마음처럼 쉽지 않아 속상하다. 로또 1등은 언제 되는걸까.



  5. 오늘의 캐스팅


  - 오르페우스 : 시우민

  - 헤르메스 : 최재림

  - 페르세포네 : 김선영

  - 에우리디케 : 김환희

  - 하데스 : 김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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