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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Sep 06. 2023

20230906

가끔




  가끔 생각한다. 그냥, 아주 가끔.


  하고 싶은 게 많아야 우울에 젖지 않고, 바쁘게 지내야 그리워할 시간이 없다. 가끔 이불도 깔지 않은 맨바닥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보고 있으면, 냉장고가 보채는 소리와 윗집 의자가 바닥에 세게 긁히는 울림이 나를 짓누른다. 빈틈없는 하루가 겨우 끝나야만 내일의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비록 찰나일지언정.


  불행과 행운은 비눗물 섞인 물과 기름같다. 피할 수도 없게 머리 위에 쏟아져 한 걸음도 떼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


  이번엔 웃음만 났다. 1년 전 나는 울음을 참고 화장실로 가 소리 죽여 울었는데. 그새 또 어른이 됐나보다. 어렴풋이 느꼈다. 내내 괴로웠던 이유가 이거였던 것 같아서. 고통을 토로한 곳에서는 다들 하나같이 말했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래서 나는 그저 내가 예민한 건줄 알았다. 있는 힘껏 둔감해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느 살인사건 이야기를 들으며, 당연히 범인이 딸인 줄 알았다. 어쩌면 딸의 살인은 정당방위였을지도 모른다. 천륜을 저버린 딸을 모두 욕했지만, 나는 이해했다. 가끔 나도 엄마를 죽이는 상상을 했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나는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칼을 휘두른다. 존재 자체가 사라지길 바라면서.


  상담을 받았다. 상대는 내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밤마다 죽고 싶어 발버둥 치는 내가,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죽어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처럼 느껴졌다.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병원 목록을 건네 받으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루에도 몇 명이나 나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 그러다 결론에 다다랐다. 책상 건너편에 앉은 저 사람은 나를 돕지 못한다는 걸. 과거의 시간를 뒤적일 때마다 내가 몇 번 죽었는지 헤아려보았다. 너무 많아 도중에 멈춰버렸다. 죽은 내 시체는 까만 글씨가 되어 일기장 구석에 처박아졌다.


 다들 나에게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매일 괜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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