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묘>의 정치학 : 도덕적 단죄를 넘어 구조적 분석으로
친일을 긍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판단이 가볍고 단정 지어지는 순간, 역사는 평면화된다. 독립운동과 매국 사이에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라는 중간 지대가 존재했고, 그곳에 다수가 있었다. 침묵이 면죄부는 아니지만, 영웅과 배신자라는 이분법만으로 그 다수를 해석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때 나라면 당연히 독립운동을 했을 것”이라 단정하는 태도는, 결과를 이미 안다는 특권 아래에서 과거를 재단하는 행위다. 영화 <암살>의 염석진(이정재)처럼 해방이 정말 올지 알 수 없었던 그 시절, 사람들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불확실성 속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치기 어린 확신보다 먼저 필요한 건 자신의 취약성을 인지하는 일이다. 고통에 약한 인간이라는 자각이 스며드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도덕적 단죄가 아니라, 구조적 분석이 시작된다.
친일은 개인의 일탈만이 아니라 제도와 전망이 만들어낸 선택의 집합으로 봐야 한다. 해방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혹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이, 어떤 이들에게는 권력과의 결탁으로, 어떤 이들에게는 침묵으로,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저항의 포기로 이어졌다. 이 셋을 도덕의 한 축에서 줄 세우면 순서는 분명하지만, 역사적 설명으로는 불충분하다. 선택지는 열려 있지 않았고, 비용은 비대칭이었고, 보상은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구분은 필요하다. 생존을 위한 수동적 협조와, 지위·이익을 위해 능동적으로 일본 제국의 일부가 된 행위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이 구분이 무너지면 청산은 분노의 방출이나 정치적 호명으로만 소비된다.
문제는 청산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광복 직후 3년간의 행정 경험이 보여주듯, 독립군과 친일 세력의 구도는 좌와 우의 구도로 재서술되었고, 친일 협력층은 전후 국가 재건의 유용한 인력으로 편입됐다. 제도의 필요가 과거의 책임을 앞질렀고, 이 과정에서 정당성의 서사가 새로 쓰였다. 임시정부 법통과 건국 시점의 논쟁이 장기간 지속된 이유는, 역사 인식의 차이라기보다 미완의 청산이 오늘의 권력 구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무덤은 땅속에만 있지 않다. 족보, 문서, 재산의 출처, 직함의 계보가 봉분 역할을 한다. 봉분은 시간을 덮는 장치이자, 현재의 위계를 떠받치는 토대다.
영화 <파묘>가 유효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파묘'는 주술이 아니라 절차다. 은폐된 과거를 현재의 구조와 접속시키는 물리적 행위다.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지연된 정의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저주는 “왜 지금”이라는 질문으로 번역된다. 후손은 조상이 남긴 자산과 지위는 전유하면서도, 조상이 남긴 오욕은 유보하거나 거부하려 든다. 이 욕망의 비대칭이 파국을 부른다. 후손에게 법적 죄를 묻는 대신, 유산이 현재의 불평등을 어떻게 재생산하는지를 따져 묻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여기서 나온다. 책임의 귀속을 혈연으로 확장하는 대신, 권력과 자산의 계승 경로를 투명화하고, 부당 축적이 확인되면 사회적 환원을 제도화하는 방향. 참회적 선언은 제스처가 아니라 설계여야 한다.
대중문화의 재현 양식은 이 지연을 비춘다. 일본을 절대악으로, 우리는 영원한 피해자로 배치하는 서사는 소비가 쉽고 해소가 빠르다. 폭로를 가장하지만 반복되는 은폐다. 반대로 감정 거름망을 걷어낸 건조한 서술은 불편하고, 시장은 이 불편함을 번거로워 한다. 그래서 실패한다. <파묘>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선악의 대립을 단순화하지 않고 은폐와 폭로 사이에서 흔들리는 후손의 욕망을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장르가 분석의 도구가 된다. 호러는 판타지가 아니라 미결 과제의 반복적 귀환을 모듈화한 포맷이다.
실행의 좌표는 명확하다. 첫째, 계보. 권력과 자산의 흐름을 문서로 추적하고 공개한다. 개인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평등의 경로를 보이기 위해서다. 둘째, 환원. 부당 축적이 확인되면 사회적 환원 장치를 강제한다. 단발성 기부가 아니라 구조적 장치. 셋째, 표식화. 공간·기관·기념물의 기원을 투명하게 표기한다. 제거가 아니라 의미의 재배치. 넷째, 서사 다변화. 국뽕과 분노 소비의 회로를 벗어나 불편한 텍스트의 비중을 늘린다. 시장의 실패를 공적 편성·교육·기금으로 보완한다. 다섯째, 후손 비난의 자제. 혈연을 책임의 매개로 삼는 대신, 현재의 행위와 선택을 기준으로 삼는다. 후손이 환원·공개·표식화에 참여하는 한 과거 선대가 저지른 죄를 오늘의 죄로 전이하지 않는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절제다. 감정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사용처를 제한한다. 분노는 규범을 움직이는 힘이지만,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은 아니다. 분노는 호출할 수 있으나 설계는 계산이 해야 한다. <파묘>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그 계산의 시작이다. 덮여 있던 것을 열고, 무엇이 어디로 이어졌는지 경로를 그리는 일. 그 경로 위에서야 환원과 표식화가 설득력을 갖는다. 책임은 혈연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성에 붙는다.
여기서 개인의 취약성은 변명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 “나는 아마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자각은, 역사에 대한 오만을 줄이고 현재의 책임을 늘린다.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면 영웅 서사의 과도한 이상화도, 배신 서사의 과도한 낙인도 동시에 줄어든다. 대신 구조에 시선이 고정된다. 구조에 집중하는 글쓰기는 교조를 피한다. 교조는 빠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구조는 느리지만 지속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친일을 긍정할 수는 없다. 이 부정은 선언이 아니라 분석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친일을 단죄하는 말이 오늘의 배제 기술로 전용되지 않게 하려면, 그 말이 겨냥해야 할 좌표를 좁혀야 한다. 좌표는 과거의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재생산이다. 과거가 현재를 떠받치는 방식, 불평등이 대물림되는 경로, 무덤이 도시의 인프라로 바뀌는 과정. <파묘>는 그 인프라의 단면을 드러내는 절차다. 무덤을 여는 일은 죽은 자를 불러내는 일이 아니라, 산 자의 체계를 재배열하는 일이다.
결론은 간단하고, 실행은 어렵다. 과거를 덮지 않는다. 후손을 단죄하지 않는다. 경로를 공개한다. 환원을 설계한다. 공간을 표식화한다. 서사를 다변화한다. 감정을 절제한다. 이 일련의 조치를 반복한다. 반복은 관성을 만들고, 관성은 제도가 된다. 제도가 만들어지면, 친일이라는 말은 과거를 향한 도덕적 낙인이 아니라, 오늘의 구조를 교정하는 도구가 된다. 그때 비로소 청산은 끝이 아니라 일상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 일상이 안정될 때, 역사적 공포는 더 이상 호러의 장르를 빌리지 않아도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