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조직에서 성공하는 방법

- 내부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레슨 : 괴물의 언어를 먼저 배울 것

by Minseung Kang

영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 2015)은 표면적으로는 권선징악의 복수극처럼 보인다. 그러나 냉정히 들여다보면 이 이야기는 내부자가 되지 못한 외부자들의 실패담이다. 내부의 문법은 언제나 이해관계로 작동하며, 그 이해관계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위협으로 전환되는 순간 제거된다. 안상구(이병헌)와 우장훈(조승우)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내부 진입을 시도했으나 끝내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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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구는 장필우(이경영) 후보와 오 회장(김홍파)의 비자금을 전달하는 하부 실무자였다. 그러나 그가 비자금 파일을 무기로 내부를 협박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쓸모 있는 전달책이 아니라 체계 자체를 위협하는 존재로 분류되었다. 손목이 잘린 장면은 단순한 감정적 보복이 아니다. 그것은 위협을 제거하는 내부의 절차적 방식이다. 장필우, 오 회장, 이강희(백윤식)의 연대는 '냄새나는' 서로의 약점을 숨기기 위한 공포의 결속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익의 맞물림에 의해 유지된다. 장필우는 정치 권력을, 오 회장은 자본을, 이강희는 언론을 제공하며 서로를 보완했다. 그들의 결속은 위협 때문에 유지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실질적 이익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상구는 더 이상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이익이 없었다. 협박은 지속 가능한 거래가 될 수 없고, 위협은 언제나 제거 대상이 된다. 그의 절단은 불가피한 귀결이었다.


우장훈의 실패는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는 정의와 실력으로 내부를 설득하려 했다. 검사라면 사건을 철저히 파헤치고, 승진은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부의 문법은 달랐다. 내부는 탁월한 능력을 원하지 않는다. 탁월함은 언제든 독자적 판단으로 변질될 수 있고, 신념은 내부의 눈에는 불확실성으로 해석된다. 내부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예측 가능성과 순응이다. 필요할 때 침묵할 줄 알고, 위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며, 이해관계에 맞춰 움직일 수 있는 자만이 편입된다. 그래서 우장훈의 실력은 능력이 아니라 잠재적 불안으로, 그의 정의감은 불필요한 위험으로 간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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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영화 <더 킹>의 한강식(정우성)은, 마치 곁에서 우장훈이 듣고 있기라도 한듯, 신임 검사 박태수(조인성)에게 일갈한다. “그냥 권력 옆에 있어. 자존심 버려. (줄) 잡으라고.” 내부자의 조건은 단순하다. 강자 곁에 설 것, 자존심을 버릴 것, 필요할 때 침묵할 것. 흔히 능력이 성공을 담보한다고 믿지만, 능력은 내부가 인정할 때에만 가치로 환산된다. 따라서 핵심은 업무 능력이 아니라 관계의 기술이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나를 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안상구는 협박으로, 우장훈은 정의와 실력으로 내부를 설득하려 했으나, 둘 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들의 실패는 개인적 역량의 부족이 아니라 내부자의 문법을 잘못 해석한 결과였다.


어떤 조직이든 목표를 내세운다. 구성원들이 합심해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조직의 존재 이유라면,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 곧 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직의 거시적 방향은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정해지고, 개인의 역량은 언제든 주변화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가 아니라 각자의 사익을 추구하기 시작할 때, 조직은 더 이상 발전의 단위가 아니다. 내부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부자를 기능적으로 활용하고, 외부자는 내부자가 되기 위해 회사가 아니라 내부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힘쓴다. 누구도 조직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그 결과 내부자는 이익을 독점하고, 편입되지 못한 외부자는 복수심과 해사 행위로 대응한다. 또 다른 일부는 주관을 드러내지 않고 누구와도 각을 세우지 않은 채, 그저 불편을 남기지 않는 생존 전략으로 매 시대를 버텨낸다. 망해가는 조직은 다 이와 같은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친다.


출세와 몰락의 동학을 집단이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가운데,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자가 정치적 위기를 맞았던 작년 말부터 올해 초, 즉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헌재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거대한 베팅장으로 변했다. 내부 진입을 꿈꿔온 이들에게 이 상황은 동시에 기회이자 위험이었다. 무너져가는 권력에 몸을 던져 복권을 돕느냐, 아니면 새로 부상할 권력으로 환승하느냐. 전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고, 후자는 안전하지만 출발선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이 뒤따른다. 윤 전 대통령을 따르던 일부는 등을 돌렸고, 또 다른 일부는 평소보다 더 큰 목소리로 그를 비호했다. 계엄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거나 야당 책임론을 부각하는 발언은 우발적 돌출이 아니라 내부 편입을 노린 계산된 입장이었다. 민주주의라는 명분은 이 과정에서 침묵 처리되었다. 중요했던 것은 원칙이 아니라 각자의 생존과 출세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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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진짜 두려움은 비난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노출은 인지도로, 인지도는 표로 전환된다. 네거티브조차 자산으로 전환되는 이유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이 논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탄핵 정국에서 “윤 대통령을 손절하는 정치는 비겁하다”며 비호에 베팅했고, 표결을 앞두고 흔들리는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1년만 지나면 국민은 다 잊는다. 또 우리를 찍는다.” 이는 단순한 위로나 실언이 아니다. 유권자의 망각과 체념, 지역 이익의 우선성을 전제로 한 계산된 발화였다. 실제로 그의 지역 사무소 앞에는 항의 시위가 이어졌지만 그는 버텼다. 비난은 일시적이지만 노출은 자산으로, 기억은 망각으로 치환된다는 체계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같은 방식으로 버텼고, 여전히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법의 실효성을 입증한다.


과거에는 “저 사람, 조직에 들어간 뒤 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순서가 바뀌었다. 내부자가 되려면 애초부터 괴물의 언어를 익히고 있어야 한다. 괴물이란 흉측한 외양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양심을 속이는 태도다. 안상구의 절단, 우장훈의 좌절, 더 킹의 조언, 탄핵 정국의 언설, 윤상현의 계산, 직장의 순응은 모두 이 문법 위에서 작동한다. 결국 선택은 단순하다. 괴물의 언어를 습득해 내부에 편입될 것인가, 아니면 문 밖에 남아 불이익을 감수하며 양심을 지킬 것인가. 괴물은 내부에 들어간 뒤 변하는 결과가 아니라, 내부 진입을 위한 입장권이다. 문제는 하나다. 우리는 그 언어를 배울 것인가, 끝내 거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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